한국영화 아카데미 25기생 실습작품 모음집 DVD사진

▲ 한국영화 아카데미 25기생 실습작품 모음집 DVD사진 ⓒ 무비조이(MOVIEJOY.COM)


최근 필자 개인적으로 한국 독립영화 혹은 실험영화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면서 이런 작품들을 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단편독립옴니버스영화 <사사건건>을 통해 <남매의 집> 연출가 조성희 감독이 한국영화아카데미 25기 실습생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는 지인을 통해 한국영화아카데미 25기생 강연하 감독의 <수진들에게>란 단편영화에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배우 이채은이 출연하고 있음을 알았다.

처음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연락을 하게 된 것은 <수진들에게>란 작품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과연 이 작품에서 이채은이란 배우가 어떤 연기를 보여주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영화아카데미 교육연수팀 대리로 계신 박민철님의 도움으로 25기생 실습작품이 모두 담겨져 있는 DVD를 구할 수 있었다. 처음 단순하게 한 작품 보기 위한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커져버린 것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2009년 25기생 실습 작품은 단편영화 8편, 단편애니메이션 5편해서 총 13편의 작품이 담겨 있다. 각 작품을 간단히 소개하면 단편영화로는 <남매의 집>(조성희 감독), <세컨드 서클>(박우기 감독), <밀과 보리>(이한나 감독), <수진들에게>(강연하 감독), <바람만 안 불면 괜찮은 공기>(정재웅 감독), <야수와 동정의 밤>(박수민 감독), <바람아 불어라>(최영석 감독), <여행극>(윤성현 감독)의 작품들이 있으며, 단편애니메이션으로는 <다카포>(박미선 감독), <새 이야기>(이재호 감독), <띠띠리부 만딩씨>(홍학순 감독), <토굴속의 아이>(박은영 감독), <로티>(박정서 감독)이 있다.

DVD에 들어 있는 각 단편영화와 단편애니메이션들은 촬영, 편집, 연출 등이 세련되어 보였다. 물론 실습 작품집 DVD에 담겨 있는 영화들은 프로가 아닌 아직 설익은 그리고 더욱더 성장해야할 감독들의 작품임이 틀림없다.

한국영화 아카데미 25기생 작품 DVD DVD사진

▲ 한국영화 아카데미 25기생 작품 DVD DVD사진 ⓒ 무비조이(MOVIEJOY.COM)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실습 작품집 DVD에 들어 있는 단편들은 분명 세련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런 세련됨이 오히려 다른 것을 기대했던 필자에게 당혹스러움을 안겨주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이미 무비조이에서 리뷰한 <사사건건>에 포함된 <남매의 집>과 다른 작품들을 비교해보면 이런 당혹스러움은 더 커진다. 첫 작품에서 실험적인 모습, 남과는 다른 색다른 개성, 기존 상업영화에서 느낄 수 없었던 참신함을 기대했기 때문에 이런 당혹감이 생긴 건지 모른다. 첫 작품에서 보여주는 세련됨이 오히려 거부감 같은 것을 필자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DVD에 포함된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분명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기억에 남을만한 것들 역시 많았다. 위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토로한 것은 한국영화아카데미 25기생들이 더 좋은 영화인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개인적으로 그들은 아직 젊고 분명 더 발전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또한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이다.

DVD에 포함된 많은 작품 중에 눈에 들어오는 영화가 한편 있었다. 바로 박수민 감독이 연출한 <야수와 동정의 밤>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 단편영화가 작품성이 아주 뛰어나거나 특출 난 실험정신으로 똘똘 뭉친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 마음에 들었던 것은 영화를 보면서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이 작품에 여주인공 채이 역으로 나온 김태정씨가 기억에 남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2월 11일 박수민 감독과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박수민 감독 야수와 동정의 밤 연출자

▲ 박수민 감독 야수와 동정의 밤 연출자 ⓒ 무비조이(MOVIEJOY.COM)


*이 인터뷰는 영화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스포일러성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박수민 감독님 안녕하세요. 우선 자신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먼저 제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이렇게 인터뷰까지 청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전 1981년생 남자고요, 특별히 더 소개할 이력은 없습니다. 대학에서는 문예창작을 배웠고 연출전공으로 한국영화아카데미(25기)를 졸업했습니다."

-김태정씨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태정씨는 최근 결혼으로 루마니아로 건너가 살고 있는 관계로 제가 대신 대답하자면, 일단 1981년생 여자고요, 저와는 대학 동기이자 친구입니다. 대학 때부터 연극동아리 활동을 했고 이후에는 극단에 있었습니다."

-단편영화 <야수와 동정의 밤>은 우선 재미있었습니다. 영화 보면서 지루하단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첫 작품으로서 가지고 있어야할 실험적인 면은 상당히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첫 작품이 꼭 실험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과연 어떤 것을 실험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능력이 일천하여 좀 더 과감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안정적이거나 유려한 작품도 아닌데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야수와 동정의 밤 스틸컷

▲ 야수와 동정의 밤 스틸컷 ⓒ 무비조이(MOVIEJOY.COM)


-시놉시스와 감독의 연출의도를 보면 남성이 군대 가기 전에 꼭 총각딱지를 떼고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생기는 성적 폭력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재미는 있지만 이게 과연 남성이 군대 가기 전에 가지게 되는 성적 폭력성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마지막 극적인 장면을 통한 자기반성을 보여주는 것인지 모든 것이 애매모호했습니다. 그냥 단순히 재미있단 생각만 들었습니다. 더 가혹하게 이야기하면 코믹액션활극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박수민 감독님이 연출하고자 했던 기획 의도에서 완전히 벗어난 느낌을 주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요?
"연출의도가 잘못 전달된 것 같습니다. 사실 영화에서 강박관념이나 성적 폭력성, 자기반성 등은 주된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남자들끼리의 그룹에서 어떻게 폭력이 발생하는지를 주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제 장황한 연출의도를 다시 옮겨보면, '남자가 여자에게 품는 성적 판타지와 동정의 적극적인 상실이라는 보편적인 욕망의 폭로 위에, 비틀리고 그릇된 폭력적 남성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학습되어지는지에 대한 메커니즘 연구를 얹어, 궁극적으로 21세기 수컷들의 주관이 파편화될 위기에 처했음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입니다.

주인공 민준은 자신의 욕망에 대해 능동적으로 반응하거나 뚜렷한 주관을 가진 인물이 아닙니다. 욕망이 있어도 옆에서 누군가 부추겨야만 겨우 시도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를 부추겨 일을 만드는 택권과 형래에게 민준의 동정 떼기는 명분에 불과합니다. "남자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식의 이상한 논리를 "무조건 형 말을 들어라"는 식으로 무식하게 내세우는 폭력적 남성성의 우스꽝스러움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잔인한 성범죄의 계획이 겨우 '아는 형'의 꼬드김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우습다는 거죠.

인물들은 물론 보는 관객들도 안 진지한데 주인공만 혼자 진지한 이상한 코믹활극이 되는 건 기저에 깔린 문제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영화의 애매모호함은 주인공 민준의 애매모호한 태도에서 오는 것이니 그게 바로 파편화된 주관이다, 이렇게 말하면 쉽겠지만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좀 더 명확히 드러나는 영화를 만들지 못한 것은 제 모자람입니다. 연출의도라도 좀 알아먹기 쉽게 쓸 걸 그랬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채이가 장검(일본도?)으로 형래와 택권을 처단하는 장면들은 일본 공포영화와 만화들을 생각나게 한 장면이었습니다. 분명 보면서 통쾌한 쾌감을 얻기는 했지만 일본공포영화나 엽기영화를 많이 본 관객들이라면 모방했다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본래가 총이나 칼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70년대 일본 영화나 만화에도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여자애가 칼을 쓰면 다 모방이라 하기엔 좀 그렇지만 일단 제가 그런 걸 좋아해서요. 통쾌하게 봐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멋있게 잘 찍지 못해 부끄러운 부분입니다." 

야수와 동정의 밤 스틸컷

▲ 야수와 동정의 밤 스틸컷 ⓒ 무비조이(MOVIEJOY.COM)


-마지막 장면에 민준이 여고생 혜지의 빨간 피로 물든 양말을 하얀 라커로 색칠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 장면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특별히 이렇게 연출한 의도가 있는지요?
"이미 일어난 일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없다는 건데요. 저는 그걸 일종의 자위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은폐나 망각도 자기위안을 위한 거니까요."

-김태정씨 같은 경우에 <야수와 동정의 밤>에서 상당히 강렬한 인상과 기억을 남겼습니다. 이 작품이 첫 출연작 인지요? 아니면 다른 출연작품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야수와 동정의 밤>에 출연하게 되었는지요?
"다른 출연작이라 해봤자 저하고 대학 때 찍은 습작 정도가 있는데요, 지금은 봉인된 상태입니다. 습작에서는 사랑하는 남자를 총으로 쏴 죽였으니 주로 남자를 죽이는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대학 때부터 제 영화의 히로인으로 쓰겠다고 꼬드겨 밑도 끝도 없이 전속계약을 했고 이 작품에서 서로 그 약속을 지킨 셈입니다. 스타로 만들어주겠다고 큰소리쳤는데 그게 잘 안 되어 결국 한국을 떠난 것처럼 되어버렸긴 합니다만. 어떻게 제가 카메라 들고 루마니아에 가서 태정씨 주연으로 흡혈귀 영화를 하나 만들어 올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게 잘 되면 돌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 앞으로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은지 포부를 듣고 싶습니다.
"별 쓸모없는 작품으로 폐를 끼치지 않는, 필요한 연출자가 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 최초 송고된 후 순차적으로 http://www.moviejoy.com 에 발행될 예정입니다.
야수와 동정의 밤 박수민 한국영화아카데미 무비조이 MOVIE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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