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담배회사의 탐욕과 방송의 이중성에 맞서 진실을 알리기 위한 두 남자의 양심과 신념을 생생하게 그린 <인사이더>는 언론의 존재 가치와 기자 정신이란 무엇인지를 되돌아 보게 한다.

미국 담배회사의 탐욕과 방송의 이중성에 맞서 진실을 알리기 위한 두 남자의 양심과 신념을 생생하게 그린 <인사이더>는 언론의 존재 가치와 기자 정신이란 무엇인지를 되돌아 보게 한다. ⓒ 터치스톤 픽처스

지난 12월8일 MBC PD수첩에서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공익제보자들의 현실을 심층보도 했습니다. 기억 하시는지요? 감사원 감사 비리를 폭로했던 이문옥 전 감사관,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을 고발했던 윤석양 이병, 14대 총선에서 군부재자 부정투표를 폭로한 이지문 중위, 삼성 비자금 사건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 등등.

그러나 세상을 바꾼 용기 있는 목소리 끝에 이들이 되돌려 받은 것은 민형사상 소송에 따른 경제적, 정신적 부담은 물론 파면과 해임과 구속 그리고 세상으로부터의 '왕따'를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PD수첩과 KBS 추적 60분의 원조는 미국 CBS 방송의 간판 탐사보도 프로그램 '60분(60minutes)'입니다. 1968년 기자들이 취재하는 탐사 방송으로 시작한 '60분'은 당시 뉴스 저널리즘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지금까지도 미국 TV의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방송계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60분'은 에미상만 73개 수상한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8월에 타계한 돈 휴이트는 '60분'의 제작자이자 PD로도 활동한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오늘 읽을 영화에서는 CBS 이사회의 입장에 섭니다. 그리고 또 한명의 전설적인 PD가 있으니 로웰 버그만입니다. 

이들 공익제보자와 언론이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조직 내부의 부정과 비리를 호루라기를 불어 세상에 알린다는 뜻에서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Whistle blower)'으로 불리는 공익제보자와 정론직필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이 만나 세상을 뒤바꾼 사건이 실제 있습니다. PD수첩에서 소개한 미국의 3대 담배회사 중 하나인 브라운&윌리암슨(B&W)의 연구개발부사장이었던 제프리 와이건 박사와 '60분'의 PD 로웰 버그만이 B&W와 CBS 이사회의 거대한 음모에 맞서 싸운 실화를 날것 그대로 스크린에 담은 영화 <인사이더(1999년작, 마이클 만 감독, DVD, 12세이상관람가)>입니다.

자본의 탐욕과 언론의 이중성에 맞선 두 남자의 양심과 신념

여느 날처럼 출근한 제프리(러셀 크로우)는 뜬금없이 '의사소통 능력 미달'을 이유로 해고통지를 받습니다.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막대한 금액의 소송에서 "담배엔 인체에 치명적인 암모니아 화합물이 들어 있다"며 불리한 증언을 한 게 화근이 된 것. 한편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필립 모리스와 관련된 전문용어 투성이의 논문을 받은 로웰(알 파치노)은 전문가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제프리를 만나고 그의 해임 배경에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직감합니다.

 60분 스튜디오에서 제프리는 “니코틴을 폐에 신속하게 흡수시키기 위해 암모니아를 첨가함으로써 뇌와 중추신경계에 직접 영향을 준다”며 “담배회사 CEO들이 청문회에서 위증을 했다”고 증언한다.

60분 스튜디오에서 제프리는 “니코틴을 폐에 신속하게 흡수시키기 위해 암모니아를 첨가함으로써 뇌와 중추신경계에 직접 영향을 준다”며 “담배회사 CEO들이 청문회에서 위증을 했다”고 증언한다. ⓒ 터치스톤 픽처스


제프리와 로웰의 접촉을 감지한 B&W는 그가 입사할 당시에 서명했던 비밀엄수 서약서를 들이대며 "기밀 준수를 하지 않으면 퇴직연금과 의료보험을 끊고 소송하겠다"고 협박하고 살해 위협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분노한 제프리는 B&W의 비리를 폭로하기로 결심하고, 로웰은 '60분' 스튜디오에서 담배가 얼마나 중독성이 강하며 흡연자의 건강에 치명적이고 담배회사 CEO들의 청문회 증언이 위증임을 폭로하는 그의 증언을 녹화합니다.

그러나 그가 폭로한 인터뷰는 담배회사의 막강한 자본력과 결탁한 CBS 이사회의 압력으로 결국 전파를 타지 못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B&W의 협박을 견뎌내지 못한 아내로부터 이혼당하고, 그의 생애 전체를 이 잡듯 샅샅이 뒤지며 언론 플레이를 하는 회사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제프리는 자살을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마침내 로웰은 "한번 더럽혀진 명예는 다시 회복할 수 없다"며 CBS에 사표를 내고 제프리의 인터뷰를 보도하기 위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집니다.  

실존 인물의 실명을 그대로 화면에 옮긴 <인사이더>는 1997년 미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담배의 유해성과 자본의 탐욕과 미디어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들춰내며 한 편의 스릴러물 보다 더 긴박하게 전개됩니다. 또한 영화는 진실을 증언하는 '인사이더(내부자)'의 험난한 과정을 사실대로 보여주는 한편 그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자본과 권력의 외압에 맞서 싸우는 '기자정신'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줍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아웃사이더'가 아닌 진정한 '인사이더'가 되기 위해 우리의 양심과 신념은 어느 쪽에 서야 하는지를. 그리고 또 묻습니다. 감춰진 탐욕과 위선의 미디어에 맞선 로웰을 통해 언론 본연의 역할은 무엇이고, 표현의 자유와 진실한 기자정신이란 무엇인지를.

언론의 공익성을 붕괴시키는 시대에 언론의 존재가치는?

기업이든 기관이든 단체든 진실을 있는 그대로 고발했다는 이유만으로 왕따시키는 배타적인 조직이기주의가 판치는 한국사회에서 <인사이더>는 공익제보자의 진정한 용기가 고자질과 배신으로 낙인찍히고, 정론직필의 신념으로 사실을 보도한 기자와 PD를 해고하고 구속시키는 등 '언론의 공익성'이 붕괴되는 시대에 명색이 기자라면 그리고 정의를 한 번이라도 생각한 독자라면 이런 암울한 시대와 어떻게 조우해야 하는 지를 성찰케 합니다.

또한 민주당이 18일 국회의장의 미디어법 시정 의무 불이행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청구소송을 함으로써 '미디어법 전쟁'이 개전된 상황에서 <인사이더>는 한나라당의 장기집권과 조중동의 족벌경영을 공공이 다지는 수단으로 전락한 미디어법 시대에 언론의 존재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케 합니다.

 담배회사의 전 방위에 걸친 공격 속에 CBS 이사회가 제프리의 증언을 보도하지 못하게 하자 로웰은 감시당하는 가운데 뉴욕 타임즈 기자에게 전화로 전 과정을 폭로하고 뉴욕 타임즈는 1면 톱으로 보도한다.

담배회사의 전 방위에 걸친 공격 속에 CBS 이사회가 제프리의 증언을 보도하지 못하게 하자 로웰은 감시당하는 가운데 뉴욕 타임즈 기자에게 전화로 전 과정을 폭로하고 뉴욕 타임즈는 1면 톱으로 보도한다. ⓒ 터치스톤 픽처스



이 대목과 관련해 영화는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집니다. CBS 이사회의 압력에 굴복한 제작국장과 이사들을 상대로 언론의 독립과 양심을 주장하며 일전을 불사한 뒤 사직한 로웰은 제프리의 증언을 둘러싼 B&W와 CBS 이사회의 숨은 음모를 송두리째 뉴욕 타임스 기자에게 전하고 다음 날 신문은 1면 톱으로 특종 보도합니다. 그리고 제프리 박사의 증언도 마침내 CBS 방송을 타게 됩니다. 즉, 영화는 제프리의 증언이 단순히 로웰이나 뉴욕타임즈 기자만의 진실이 아니라 미국 시민 즉, 독자들의 알 권리라는 보다 큰 진실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는 것입니다. 또한 영화는 서로 경쟁하면서도 신뢰했던 이들 언론인들의 연대가 있었기에 진실을 향한 투쟁이 승리를 일궈낼 수 있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인사이더>가 미국에서 개봉 중이던 1999년 7월7일 플로리다 주 법원은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의 유족 등 흡연피해자 50만 명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B&W와 필립 모리스 등 굴지의 미국 담배회사들에게 2천억 달러(약 240조 원)를 배상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립니다. 판결의 요점은, 담배회사 경영진들이 니코틴의 유해성을 알고 있었냐는 것인데 이에 대해 결정적인 증언을 한 사람이 바로 제프리 박사였습니다. 기막힌 뒷얘기도 전해집니다. 당시 담배회사들은 영화 <인사이더>가 평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배심원들이 이 영화를 보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고, 법원은 이를 승낙했음에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었던 셈입니다.

한국 언론의 희망을 닫는 언론인들과 여는 언론인들

반면 한국사회는 영화와는 달리 역류하고 있습니다. 조중동의 족벌경영에 필적할만한 새로운 메뉴도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공영방송 KBS의 김인규 사장입니다. KBS 기자협회 블로그가 폭로한 그의 전력은 화려합니다. 1982년 5공화국 초기 김 사장이 직접 제작한 기획리포트(다큐) '특별 입체 기획, 제5공화국 1년'에서 "개혁의 한 해, 창조의 한 해, 안전의 한 해, 도약의 한 해 그리고 화합의 한 해 이 다섯 가지가 합해진 한 해가 바로 제 5공화국 1년"이라며 전두환의 영도력을 찬양했습니다. 전두환에 이어 노태우에 대한 노골적 미화까지 기자시절 김 사장의 보도행태는 열 손가락으로 꼽기도 부족합니다.    

<인사이더>에는 이사회의 외압에 굴복한 제작국장 돈 휴이트에게 로웰이 "당신은 비즈니스맨이냐, 뉴스맨이냐?"라고 묻는 대목이 나옵니다. 로웰의 이 말은 기자정신을 상실하고 자신이 비판해야 할 대상과 야합해 권력을 챙기는 기자는 '비즈니스맨'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입니다. 이는 한 때 '사회적 목탁', '역사의 기록자'로 불리던 기자가 김인규 사장이나 제왕적 사주에 맹종하는 기자들처럼 권력과 사주와 짬짜미가 되어 펜을 창처럼 휘두르거나 진실을 가리는 눈가리개로 악용하면서 일개 장사치로 전락한 한국 언론의 현 주소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뉴욕타임즈 보도 후 로웰은 돈 휴이트에게 “담배회사가 제프리를 매장시키는데 협조해 이익에 눈 먼 언론사라는 명예를 얻은 것은 자업자득”이라며 거세게 질타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뒤 CBS 이사회는 일괄사직 한다.

뉴욕타임즈 보도 후 로웰은 돈 휴이트에게 “담배회사가 제프리를 매장시키는데 협조해 이익에 눈 먼 언론사라는 명예를 얻은 것은 자업자득”이라며 거세게 질타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뒤 CBS 이사회는 일괄사직 한다. ⓒ 터치스톤 픽처스


그렇다고 미국 언론을 한국 언론과 도매금으로 싸잡는 결례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언론의 공익성이 붕괴될 때, 미국의 언론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앞서 로웰을 통해 봤습니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모습은 그 다음입니다. 뉴욕 타임스를 통해 제프리의 증언이 폭로되고 난 뒤 CBS 이사진들은 B&W 등 담배회사와의 결탁에 대해 책임을 지고 일괄 사직합니다. 쿨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언론 풍토에서는 꿈도 못 꿀 일입니다. 족벌 사주의 계열사의 부정과 관련한 기사를 썼다고 그 기사를 쓴 언론사와 해당 기자의 비리를 파헤치라고 지시하는 적반하장의 풍토에서는 더더욱.

우리나라 기자윤리강령은 진실을 추구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국기자협회윤리강령에 따르면,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진실을 알릴 의무를 가진 언론의 핵심 존재입니다. 또한 기자는 공정 보도를 실천할 막중한 책임과 사명을 가진 만큼 어느 누구보다도 투철한 직업윤리가 요구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찬양했던 기자가 공영방송의 사장으로 득의양양 행세하는 하수상한 시절이 도래했습니다. 조중동의 종합편성채널 진출을 위해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과 야당의 미디어법 재입법 요구를 묵살한 채 방송광고 판매체계 바꾸기 등 판다지기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 언론에 어두운 그늘만 짙게 드리운 것은 아닙니다. 최시중, 이동관, 김인규, 김은혜처럼 국민과의 소통을 단절하는 폴리널리스트들이 있는 반면에 비록 밥은 굶을지언정 쓸 글은 쓰고, 할 말은 하는 것이 진정한 언론이고 기자정신의 중심이라는 것을 실천하는 기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사이더> 말미에 제프리의 증언을 보도한 뉴욕 타임스는 CBS의 내부검열을 비판하며 사설에서 'CBS가 에드워드 머로의 정신을 스스로 부정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질타합니다. 1950년대 매카시 광풍에 맞서 CBS에서 '뉴스다큐'를 진행하며 '정론직필의 기자정신'을 온 몸으로 보여줬던 머로와 로웰 같은 언론인들이 한국 언론에도 있습니다.

송건호, 리영희, 김중배, 정경희, 정연주, 손석희… 그리고 경향에서 한겨레에서 오마이뉴스에서 프레시안에서 민중의소리에서 YTN에서 MBC에서 현장을 지키며 그들을 존경하고 학습하는 젊은 기자들과 이름 없는 시민기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한국 언론의 희망은 거기서 비롯됩니다.

인사이더 미디어법 기자정신 공익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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