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29라운드에서 루빈 카잔이 우승을 확정 지었다. 이로써 루빈은 지난 시즌에 이어 두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러시아 축구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11월 21일(현지시간)에 열린 29라운드 홈경기에서 루빈은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불러들여 0:0 무승부를 기록, CSKA 모스크바에 3:2 역전패를 당한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 5점을 앞서 남은 한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챔피언 타이틀을 지켰다.

루빈 카잔은 2009-2010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인터밀란과 무승부, 바르셀로나와 1승 1무를 거두며 유럽 무대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활약과 김동현 선수가 잠시 뛴 적이 있어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한 팀이다.

2009 시즌 내내 승승장구를 하다가 시즌 종반 10게임을 남겨두고 CSKA 모스크바, 제니트,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맹추격을 받기도 했지만, 경쟁 상대들이 중요한 경기 때 마다 자멸하며 루빈의 우승에 기여를 해주었다.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시즌을 시작한 루빈은 우승후보들의 발목을 잡을 다크호스로 지목 되었을 뿐이었다. 그 이유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빅클럽들보다 경험이 적고 상대적으로 네임밸류가 높은 선수들이 적다는 이유였다. 중앙 미드필더에 세르게이 세막이라는 출중한 베테랑과 제니트에서 돌아온 도밍게즈가 있었지만, 그 둘로 러시아의 강자들을 상대하기 벅차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도밍게즈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데뷔를 루빈에서 했고, 최고의 폼을 선보이며 제니트로 이적했으나 적응 실패로 루빈으로 돌아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해줄지 미지수였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도밍게즈는 공격에서 신예 공격수 부하로프와 짝을 이루어 도합 32골(루빈의 시즌 골은59골)을 합작하며 루빈의 공격력에 커다란 힘이 되어준다.

루빈의 우승에는 리그 득점 공동 2위를 기록하고 있는 두 공격수의 화력과 그 화력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미들필더진, 그리고 수비진의 그물망 수비 없이는 불가능 했다. 29경기 동안 단 21골만(실점 2위 스파르타크는 26실점)을 내준 튼튼한 수비능력은 화려함보다는 탄탄한 기본기와 조직력을 중심으로 한 루빈만의 팀 철학이 빚어낸 결과이다.

루빈 카잔의 우승은 러시아리그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다. 1992년 러시아리그 출범 이후 모스크바 연고 클럽을 제외한 다른 팀이 우승한 경우는 이번까지 단 4번(스파르타크 블라디카프카즈, 제니트, 루빈)이었고, 모스크바 팀을 제외한 어떤 팀도 2회 이상 우승, 더더군다나 연속 우승을 기록한 적이 없었다.

2007시즌 제니트의 우승을 시작으로 2008, 2009시즌을 루빈이 가져감에 따라 다음 시즌 러시아리그의 판도는 '모스크바 –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모스크바 클럽들의 잃어버린 왕좌 되찾기'가 됐다. 이는 러시아 축구의 지역적 균형차를 해소, 지역들간의 균형적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루빈의 선수 층만 본다면 우승을 장담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역대 러시아리그 우승팀 중 블라디카프카즈를 제외하면 이처럼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팀은 없었다. 러시아리그 최초의 비수도권 챔피언인 제니트도 그 당시 각 포지션마다 리그 A급 선수들이 버티고 있었으니까.

최근 타타르공화국이 오일머니를 앞세워 하키, 농구, 축구 등 스포츠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한다지만, 루빈의 멤버 중 그나마 검증된 선수는 세막과 도밍게즈 뿐이었다. 네임밸류가 높지 않은 대신 실력 있는 다른 국가들의 유망주들을 영입하며 조직력이 탄탄한 팀을 만든 베르디에프 감독과 루빈 스태프들의 노력은 호시탐탐 상위권을 노리지만 선수층이 얇아 중위권에 머무는 팀들에게 좋은 힌트가 될 수 있다.

아직 조별예선을 통과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는 루빈의 경기력을 보면 러시아리그에서만 통하는 국내용은 아닌 듯 하다. 두 차례의 경기 동안 단 승점 1점을 가져간 바르셀로나의 캡틴 푸욜이 루빈은 진정 강한 팀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을 보면 유럽 무대에서도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 분명하다.

러시아 클럽들이 최근 5년 사이 UEFA컵을 두 번 가져온 적은 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활약은 미비했던 것도 사실이다. 루빈의 활약은 러시아리그의 경쟁력을 유럽무대에서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2003년에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에 승격하자마자 3위를 기록, 2008, 2009 챔피언이 된 루빈 카잔의 성공 스토리는 비단 러시아 축구의 발전만을 위한 지침서는 아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을 앞둔 대한민국 대표팀이 참고해 볼 만하다.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르며 더 이상 축구의 변방이 아님을 증명했으나, 사실 이번에 본선행이 확정된 32개국 중 한국보다 한 수 아래인 팀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박지성을 제외하고는 세계 축구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선수가 적지만 재능이 풍부한 유망주들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이 루빈과 많이 닮아 보인다. 이제 루빈에게 남은 숙제는 2009-2010 챔피언스리그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과 프리시즌 기간 동안 전력보강을 통해 다음 시즌을 대비하는 것이다. 만약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주축 선수들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 벌써부터 프리메라리가의 에스파뇰이 도밍게즈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

또 도밍게즈와 득점 2위를 나누고 있는 부하로프의 화력도 결정적인 순간 마무리 부족을 호소한 제니트나 CSKA 모스크바의 구미를 당길 수 있다. 그리고 터키 대표팀 미드필더 코그데니스와 수비에서 든든한 모습을 보여준 노보아, 나바스 선수들도 러시아프리미어리그 강호들의 러브콜을 받을 재목들이다.

그리고 선수 보강과 함께 루빈의 팀 목적 설정을 높게 잡고 그 목적을 향해 하나가 될 수 있는 동기 부여를 설정해주어야 한다. CSKA와 제니트가 시즌 3연패를 이루고 난 뒤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것과 블라디카프카즈가 하부리그를 전전하는 이유는 더 이상 이룰 목적이 없다는 선수들의 안이한 멘탈이 한몫 했다.

루빈이 다음 시즌에도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에서 이번 시즌 보다 더 좋은 성적을 목표로 힘차게 나아간다면 러시아리그를 넘어서 유럽의 신흥 명문이 되는 것도 꿈이 아닐 것이다.

루빈카잔 러시아프리미어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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