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는 이미 나올만큼 나왔다. 특히 멜로영화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더 이상 새로운 제재를 내놓는 것은 어렵다. 중요한 것은, 이미 나와있는 제재 중에 하나를 골라 그 하나를 어떻게 독창적으로 소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조건은 박진표 감독의 신작 <내 사랑 내 곁에>에도 해당된다. <내 사랑 내 곁에>는 '시한부의 사랑'이라는 이젠 뻔하디 뻔한 제재를 가지고 시작하는 영화다. 개봉 전부터 20kg 감량의 연기 투혼으로 화제가 되었던 김명민은 루게릭병에 걸린 법학도 박종우를 연기한다. 남은 인생은 기껏해야 3년. 여태껏 나온 시한부의 사랑 영화들을 봤던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의 이야기 전개도 당연히 예상할 수 있다. 뻔하고 뻔한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독특한 장치가 하나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바로 종우를 사랑하게 되는 여자 이지수(하지원)의 캐릭터. 이 여자의 직업은 장의사다. 시체 닦는 일을 하며 항상 죽음을 맞이하는 여자다. 이 장의사가 시한부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남자와 죽음을 맞이하는 여자가 맞는 사랑은 상당히 독특한 설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설정을 어떻게 살려 어떻게 이끌어 나가냐는 것.

 

 참신한 두 캐릭터,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참신한 두 캐릭터,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 내사랑내곁에

 

 바로 말하자면, <내 사랑 내 곁에>는 이 설정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죽음의 경계에 한두 발 차이로 서 있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로서 좀 더 깊이 접근했다면 영화는 훨씬 묵직한 분위기를 풍길 수 있었을 것이다. 더욱 독창적인 발전이 될 수 있었을 테고. 죽음의 경계를 탐색하는 것은 멜로영화에서는 흔치 않은 제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죽음에 대한 성찰보다는 시한부의 사랑이라는 이미 뻔한 제재에 영화는 초점을 맞춘다.

 

이랬을 경우에 결과는 하나다. 결국 시한부가 죽음을 맞이할 때 그를 사랑했던 여인은 그저 울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를 보는 관객도 함께 울어달라는 것이다. 물론 서로 절실히 사랑했던 주인공의 사별은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젠 눈물보다는 한 단계 더 높은 것을 원하는 관객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박진표 감독은 이미 <너는 내 운명>에서도 수많은 대한민국 관객들의 눈물을 쏙 빼놓지 않았는가.

 

 또한 김명민의 캐릭터 박종우도 아까운 것이 많다. 루게릭 병이란 특이한 죽음의 과정을 가지고 있는 영화다. 온 몸의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며 그 죽음의 속도를 직접 알게 한다. 영화에서도 종우의 루게릭 병 진행을 몇 단계로 나누어 알게 했지만 거기에서 깊은 진정성이 느껴지게 하지는 않는다. 슬플 수 있는 장치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영화에서 죽음에 대한 탐색을 해보고자 한 시도는 잠깐씩 보인다. 종우가 인터넷 검색을 할 때 실시간 검색어 1순위가 '존엄사'인 것, 종우와 같은 병실을 쓰고 있는 식물인간 환자의 형제가 환자를 안락사 시키고 싶다고 울부짖는 장면 등은 진정한 죽음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보도록 한다.

 

그러나 이런 장치가 약간은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웠다는 점은 지나칠 수 없다. 주인공들이 서로의 만남을 통해 성장해가는 과정 속에서, 또는 주인공의 병실 식구들과의 긴장·갈등 관계 속에서 이런 점이 녹아들어가 있었다면 훨씬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이렇게 캐릭터의 정체성과 그 구도를 잘 살리지 못해 죽음에 대한 탐색의 기회를 놓쳐버린 점도 아쉽지만, 두 주인공의 이야기 자체도 아쉽기는 마찬가지.

 

 우선 두 주인공이 만나는 계기는 너무 억지스럽고 급작스럽다. 옛날에 알고 지내던 서로를 종우 모의 장례식을 계기로 갑자기 만나, 종우가 지수에게 갑자기 교제를 신청한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종우가 불치병에 걸렸고 자신의 곁을 지켜줄 여자가 필요하다지만 왜 하필 왜 갑자기 지수에게 그런 부탁을 할까?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두 사람이 그렇게 급작스럽게 만나 급작스레 교제를 진행하는 것도 의뭉스럽다. 두 사람의 사랑에 별 공감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뭔가 부자연스러운 둘의 만남, 왜 특성을 살리지 못했을까

뭔가 부자연스러운 둘의 만남, 왜 특성을 살리지 못했을까 ⓒ 내사랑내곁에

 

 종우는 불치병에 걸린 남자고, 지수는 항상 죽음의 곁에 있고 그 때문에 두 남자에게서 이미 버림을 받은 여자다. 삶의 경계선에 서 있는 두 사람의 공통점을 잘 살려 서서히 만나는 과정을 그렸다면 영화는 더욱 진정성이 있었을 거다. 그렇게 급하게 사랑에 빠질 이유도, 꼭 서로 사랑에 빠진 이후에 병의 진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야 할 이유도 없다. 둘의 사랑을 여러 행각들로 꼭 겉으로 드러냈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서로의 사랑을 절제해가며 그려나가는 것이 나중에는 더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같은 병실 식구들의 모습을 그려낸 것은 좋은 시도였다. 이마저 없었다면 영화는 대책 없는 신파멜로가 되었을 텐데, 지수 말고도 사랑하는 이를 시한부로 두고 있는 남편, 형제, 부인, 부모를 그려내며 영화는 시한부의 사랑이라는 제재에 조금 더 객관적으로 접근해보려는 시도를 한다. 또한 병실의 모습을 마냥 슬픈 모습이 아닌 서로 의지하며 웃음을 찾고자 하는 희망의 공간으로 그려내며 영화의 분위기를 더 밝게 하는 역할도 한다.


 <내 사랑 내 곁에>는 시한부의 사랑이라는 흔한 신파형 제재를 택하기는 했지만 캐릭터의 설정과 사건이 진행되는 공간과 주변인물들을 보았을 때, 독창적인 영화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그런 가능성을 포기한 채 결국 영화는 신파형 멜로로 흘러가버렸다는 것이다.

 

왜 그의 죽음 뒤 그녀는 그렇게 오열해야만 하는 것인가? 정말 감동으로 가슴에 오래 남으려면, 종우의 죽음에 오열하는 지수의 모습에서가 아니라 종우의 시신을 정성스레 닦아주며 장례준비를 하는 지수의 성숙한 모습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했다. 영화가 후자를 포기하고 전자를 택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아까운 일이다.

2009.10.03 11:53 ⓒ 2009 OhmyNews
영화 리뷰 내사랑내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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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인 거북목 때문에 힘들지만 재밌는 일들이 많아 참는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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