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 포스터

<타인의 삶> 포스터 ⓒ Buena Vista International

나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감시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나도 모르게 누군가 나를 하루 종일 감시하고 있다면 어떨까?

내가 하고 있는 공개적인 행동은 물론이고, 사적인 공간에서의 지극히 개인적인 행동에서 전화하는 내용과 먹는 음식물의 종류까지 모두 감시당하고 있다면?

감시카메라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영국 런던에서 1인당 하루에 감시카메라에 노출되는 횟수는 약 300번이라고 한다. 그 어느 곳에서나 나의 모습이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감시의 문제는 범죄를 예방한다는 효과가 있지만 사적인 영역을 침해할 수 있다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의 감시가 우선일까? 아니면 개인적인 삶의 존중이 우선일까?

독일이 분단이 되고, 동독에서는 국가 체제에 반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러한 위험성이 있는 인물에 대해서는 남모르는 감시가 이뤄져왔다. 동독 국민이라면 이러한 감시의 대상은 누구나 될 수 있었고, 비밀 경찰이라고 부르는 슈타지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었다. 그리고 그 감시 내용은 철저하게 모든 것이 기록되었다.

동독에서 행해졌던 이러한 철저한 감시 체제를 소재로 하여 지켜보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의 특별한 인연을 그린 영화가 있다. 소재에서 받는 느낌과 다르게, 어딘지 모를 안타까움과 함께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타인의 삶>이다.

지켜보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의 묘한 이야기

동독의 최고 극작가인 드라이만과 배우인 그의 아내 크리스타를 감시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슈타지의 일원으로서 동독 체제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감시하는 것에 있어서는 최고의 능력을 보유한 비즐러는 드라이만을 체포하기 위한 단서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비즐러는 도청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가는 곳을 모두 따라다니며 그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드라이만이 동독 체제에 반하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사랑에서는 물론, 그들의 대화를 통한 생각 등을 도청하면서 비즐러는 알게 모르게 그들의 삶에 동화된다. 그들의 삶 자체에서 묘한 동화감을 느낀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반국가적 행위를 숨겨주게 되고, 국가에서는 드라이만에 대한 보고를 하라고 재촉하기에 이른다.

긴장감 있는 스릴러와 감동이 있는 드라마의 만남

영화 <타인의 삶>의 장르는 복합적이다. 감시라는 자극적인 소재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에 충분하다. 지켜보는 자가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에서부터 감시당하는 자가 감시에 대한 눈치를 전혀 채지 못하고 모든 것을 누설하는 것까지, 영화는 꾸준히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보통의 영화가 여기에 그친다면, <타인의 삶>은 여기서 더 나아간 긴장감을 부여한다. 지켜보는 자가 감시당하는 자에게 동화되어 변화하기 시작하고, 이제는 국가와 지켜보는 자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형성되면서 영화는 삼중의 긴장을 관객에게 부여한다.

영화 <타인의 삶>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삼중의 긴장을 통해 관객에게 억압적인 감정 상태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감동적인 이야기 흐름으로 적절한 시기에 관객의 긴장 상태를 풀어주는 것이다.

즉, 영화는 영리하게도 긴장감 있는 스릴러와 감동이 있는 드라마의 형식을 복합적으로 취하면서 관객에게 적절한 긴장과 감동을 동시에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관객은 안타까움과 공포와 긴장 그리고 슬픔 등의 다양한 감정을 영화 한 편에서 모두 느낄 수 있다.

 <타인의 삶>의 한 장면

<타인의 삶>의 한 장면 ⓒ Buena Vista International


과하지 않은 이야기와 연출

신기하게도 영화 <타인의 삶>은 이런 특징을 지니면서도 과하지 않은 느낌이다. 자칫하면 많은 욕심을 부린 탓에 영화 자체가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는 적절한 선에서 자제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긴장감을 부여할 수 있는 감시라는 자극적인 소재이지만 연출은 적절한 선에서 무난하게 영화를 이끌어나간다. 화려한 앵글이나 빠른 속도의 컷을 자주 이용하는 편집 등의 기술은 보이지 않는다. 무난한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 하면서도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힘을 지닌 영화가 <타인의 삶>이다.

덕분에 영화는 무척이나 간결하다. 간결한 영화 속에서 다양한 메시지와 감정이 들어가 있어서 풍성한 느낌마저 있다. 결말에 이르러 드라이만이 자신의 저서를 통해 비즐러에게 전하는 한 줄의 메시지는 영화의 이러한 점을 모두 함축시켜 주는 좋은 예다. 드라이만의 이 메시지를 통해 묘한 감동과 짜릿한 전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타인의 삶>을 제대로 본 것이다.

무엇보다도 빛나는 비즐러의 역할

그렇다면 영화에서 지켜보는 자는 왜 변하는가? 감시하는 것에 있어서는 비즐러를 따라올 자가 없고, 학생들에게조차 냉철한 모습을 유지하는 그가 드라이만 앞에서는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주의깊게 봐야할 하나의 중요한 점은 비즐러의 변화다. 울리히 뮤흐가 연기한 비즐러는 영화 초반에 매우 냉혹한 인간으로 표현된다. 얼굴에는 전혀 표정이 없으며, 혼자 집에서 TV를 보며 식사를 하고, 돈으로 여자를 불러 성관계를 가지는 등 매우 개인적인 인간이다.

그러나 영화 속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비즐러는 변화한다. 그의 얼굴에는 어느 순간부터 표정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혼자인 것에 대한 외로움과 불안이 교차하는 그의 표정은 불행하게 보이지만 훨씬 인간적이다.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를 감시하면서 그들에게 동화된 비즐러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어딘지 모를 안타까움을 느끼며 그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주목받은 영화, 놓쳐서는 안 될 영화

영화 <타인의 삶> 이후에 2007년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울리히 뮤흐의 연기를 더이상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타인의 삶>을 통해 비즐러로 기억될 울리히 뮤흐에 초점을 두고 본다면 영화는 더욱 더 빛날 것이다.

런던 비평가 협회, 뉴욕 비평가 협회에서 수상한 바 있으며, 영국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뿐만 아니라, 유럽영화상에서 각본상, 남우주연상, 작품상을 수상하고 벤쿠버 영화제에서도 국제영화인기상을 수상할 만큼 영화 <타인의 삶>은 큰 주목을 받았다.

분단된 독일을 그리고 있지만 2006년작으로써, 비교적 최근 영화인 것도 놀라울 따름이다. 계속되는 장마로 인하여 하루 종일 비가 오는 요즘, 영화 <타인의 삶>은 비교적 잘 어울리는 영화가 될 것이다. 독일영화 중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타인의 삶 독일영화 다이어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