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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두비>는 직설적이다. 영화의 시대적 좌표도 '이명박 정부 시대'로 명확하게 방점이 찍혔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 카림(마붑 알엄)과 여고생 민서(백진희)가 만나서 우정 혹은 사랑을 키우는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해 가는 시간적 공간은 'MB 시대'다.

그리고 신동일 감독은 이 시대에 대단히 비판적이다. 영화 곳곳에는 이 시대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각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고등학생들을 태울 학원 버스에는 'MB(학원)'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고 편의점에 로또를 사러온 취객은 "명박이 믿고 뉴타운 믿다가 좆돼 버렸어"라며 행패를 부린다. 또 미국인 영어강사가 학원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의 텍스트로 강의를 하다가 쥐가 나오는 대목에서 생각이 난 듯 "근데 왜 이명박 대통령은 쥐라고 불리지?"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압권은 민서가 카림의 1년치 월급을 떼먹은 악덕 사장 집에 찾아가 작정하고 깽판을 치는 장면이다. 사장의 집 대문에는 교회 성도임을 나타내는 십자가가 선명하다. 감독이 클로즈업해서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원래 십자가에는 권력과 친밀한 모 대형 교회의 이름이 박혀 있었단다.

집에 들어간 민서는 "신만수씨? 만수야 언제 인간 될래?"라고 쏘아붙이고는 거실 탁자에 놓인 신문을 집어들고 "이딴 걸 보니까 니가 개같이 살잖아"라고 거침없는 대사를 내뱉는다. 물론 민서가 집어든 신문이 어떤 신문인지는 관객의 상상에 맡겼다.

신동일 감독이 유독 'MB 시대'에만 비판의 날은 세운 것은 아니다. 전작 <방문자>(2005)에서는 '부시의 시대'와 '노무현의 시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거침없는 풍자를 선보였다. 그런 그에게 베를린국제영화제는 '한국의 우디 알렌'이라는 별명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약자에게 따뜻하다.

전주영화제에서는 12세 관람가로 상 탄 작품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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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는 별다른 노출신이나 폭력신이 없는 <반두비>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결정을 내렸다. "여고생이 안마시술소에서 일하는 장면 등의 묘사가 구체적이며 그 외 욕설과 비속어도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영등위는 미국인 영어강사의 대사 등을 문제 삼기도 했다. 물론 등급 결정에 정치적 이유는 없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영화계 일각에서는 <박쥐>와 <사랑한 후에 남겨진 것들> 등 남성과 여성의 성기 노출이 허용되거나 수위 높은 욕설과 비속어 사용은 물론 폭력성이 짙은 '조폭 영화'들도 15세 관람가를 받는 추세에 비추어 <반두비>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또 이명박 정부 들어 표현의 자유가 급격히 위축되는 흐름을 들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이 짙은 <반두비>에 대한 영등위의 결정이 정치권과 '코드 맞추기'라는 의혹도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반두비>는 지난 달 막을 내린 제 10회 전주영화제에서 12세 관람가로 상영됐고 관객평론가상과 CGV 장편영화 개봉지원상을 받았다. 다음 달 열리는 청소년영화제에도 초청받은 상태다.

신동일 감독도 3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답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신 감독은 "<반두비>는 처음부터 10대에게 바치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준비한 것인데 영등위의 결정으로 청소년들의 영화 볼 권리가 박탈당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방문자>는 사회비판적 내용이나 성적 표현의 수위가 <반두비>보다 훨씬 높지만 2005년 당시 15세 관람가를 받았다"며 "그 보다 표현 수위가 낮은 <반두비>가 청소년 관람불가를 받은 것은 영등위의 인적 구성이 보수화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명박 정부 들어서 미네르바가 구속되고 집회 시위의 자유가 줄어들고 언론의 자유도 침해 당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코드 맞추기라는 지적에 대해) 영등위 위원들의 머릿속을 들여다 볼 수 없으니 쉽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만 표현의 자유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흐름 속에서 이번 등급 결정을 바라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부모와 자녀들이 이 영화를 함께 보고 성에 대해서 교육문제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함께 맘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영등위도 일방적으로 청소년을 규제하고 통제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들과 소통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주노동자와 한국 고등학생의 로맨스라는 설정 때문에 개봉 전부터 한국의 인종차별주의자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충격을 많이 받았고 개봉이 다가올수록 이들의 안티 활동이 기승을 부릴 것 같다"며 "이들을 초대해서 영화를 같이 보고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내기도 했다.

신동일 감독과의 인터뷰는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2시간 정도 진행됐다. 영화 <반두비>는 오는 25일 개봉할 예정이다. 다음은 신 감독과의 일문일답.

"영화를 본 관객 90%는 '15세 이하' 등급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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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다른 노출이나 폭력 등이 없는데도 <반두비>가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로부터 청소년관람불가등급을 받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일 텐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10대에게 바치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준비한 것이다. 다행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평론가상과 CGV장편영화 개봉지원상을 받았고 영화제에서는 등급이 12세 관람가였다. 그래서 관객들 중 고등학생들이 꽤 있었는데 많은 호응을 보내주기도 했다. 또 영화 상영회 등을 통해 관객들을 대상으로 이 영화의 적절한 등급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90%정도의 관객들이 '15세 이하'도 볼 수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7월에 열리는 청소년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그럼에도 소수의 영등위 위원들의 결정에 의해 많은 청소년들이 영화를 볼 권리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 재심의를 신청했는데.
"청소년들에게 꼭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몇 군데 손을 봐서 재심의를 신청하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내 스스로 부정하는 것 같아 원래 작품 그대로 다시 재심의를 넣었다. 영등위 지적대로라면 10군데 이상 수정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영화가 누더기가 된다. 도저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

- 영등위가 문제 삼은 것은 어떤 장면들인가.
"미국인 영어 강사가 한국의 대통령은 왜 쥐라고 불리는지 묻는 장면과 한국인 여성을 비하하는 장면, 또 주인공 민서가 카림의 월급을 떼먹은 악덕 사장에 맞서 싸우는 장면, 민서가 스포츠마사지 업소에서 일하는 장면과 전반적으로 욕설과 비속어의 수위가 높다는 점을 지적받았다."

- 고등학생인 민서가 스포츠마사지 업소에서 일한다는 설정은 어쩌면 논란이 있는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부담스러운 장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적인 장면이 아니다. 오히려 이중적인 기성세대들을 부끄럽게 하는 장면이다. 청소년들이 그것을 보고 자극받거나 모방한다는 것은 고루한 생각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더 세심하게 연출했다. 관음적인 시선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끔, 과장하지 않고 리얼하면서도 그 장면 자체에 빠지지 않게 그렸다. 그래서 그 장면을 보면 불편하고 거리감을 두게 되지 몰입하기는 힘들다. 청소년을 성인업소에까지 내모는 잔인한 현실을 보여주는 장치로 생각해 주면 좋겠다. 특히 이어지는 장면은 민서가 업소를 찾아온 담임선생과 만나는 해프닝을 통해 잘못을 깨닫고 그만두게 된다. 그게 포인트다."

"이명박 정부 들어 표현의 자유 급격히 위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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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조폭 영화와 비교해 봐도 욕설과 비속어 부분은 형평성의 문제를 지적할 수도 있겠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고등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실제 그들이 쓰지 않은 말들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들은 실제 고등학생들이 생활하면서 사용하는 말들이다. 그리고 제 첫 작품인 <방문자>는 사회비판적 내용이나 성적 표현의 수위가 <반두비>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2005년 당시 15세 관람가를 받았다. <방문자>보다 표현 수위가 낮은 <반두비>가 청소년관람불가를 받은 것은 영등위의 인적 구성이 보수화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지만 그 기저에는 청소년들을 규제하고 통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방 위험도가 높다는 지적은 청소년들의 판단력을 무시하는 것이다. 작년 촛불 시위의 주체가 여고생들이었다. 고등학생들의 정치, 사회의식을 기성세대가 배울 점이 많다. 그들은 이해관계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에 정의감도 더 강하다. 이런 청소년들에게 현 정부를 풍자하고 세태를 비판하는 것들을 못보게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 영화를 보면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 주인공이 청소년이라는 점을 빼면 15세 관람가를 받은 다른 영화들과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다. 그래서 영화계 일부에서는 영등위가 현 정부에 '코드 맞추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데.
"영등위 위원들의 머릿속을 들여다 볼 수 없으니 쉽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미네르바가 구속되고 집회 시위의 자유가 줄어들고 언론의 자유도 침해 당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영등위는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고 하지만 이 정부 들어서 표현의 자유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흐름 속에서 이번 등급 결정을 바라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반두비>를 청소년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이유는?
"이 작품을 처음 구상하게 된 것은 2001년 당시 서울대에 가게 해주겠다는 입시학원 부원장에 꾐에 빠진 어느 여고생이 자퇴까지 하고 고액의 학원비 마련을 위해 부모와 갈등을 벌이다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에 충격을 받아서다. 왜 꽃다운 젊은 소녀가 그렇게까지 인간성이 파괴된 잔인한 행위를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래서 꼭 10대들에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자기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는 드라마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또 기성 세대들에게는 반성의 계기를 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었고 화법도 유머와 풍자 등을 동원해서 대중적이고 친근한게 접근한 것이다.

강준만 교수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치열한 계급 투쟁은 입시 경쟁이라고 했는데 100% 동의한다.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다른 세계를 꿈꾸는 삶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들이 이 영화를 함께 보고 성에 대해서 교육문제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함께 맘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등위도 일방적으로 청소년을 규제하고 통제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들과 소통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청소년들은 보호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배워야할 대상이다."

- 만약 재심의에서도 '청소년관람불가'가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끝까지 노력은 하겠지만 만약 변화가 없으면 지금 청소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장기 상영되도록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웃음)"

"우리가 사는 시대는 영화의 뒷배경이 될 수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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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이름이 'MB학원'이거나 민서의 집에 쥐가 나타나 욕을 얻어먹는 장면, 취객이 뉴타운 공약을 원망하는 등 현 정부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는 켄 로치 감독의 작품들이다. 영화 속에서 대처 총리는 물론 노동당의 정책들에 대해서도 대단히 비판적이다. 비판의 방식도 유머와 결합된 풍자라서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환호를 보낸다. 그리고 영화를 계기로 사회의 모순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한다. 당연히 한국 영화, 특히 내 영화에서도 우리가 사는 시대가 자연스런 뒷배경으로 자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방문자>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재취임하는 시기여서 택시 안에서 부시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벌이지는 것이고 그 부분은 국제영화제에서 미국 관객들이 더 반가워하고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 민서가 악덕 사장 집에 쳐들어가 작심하고 깽판을 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터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웃음)
"그 장면에서는 재미난 난동을 연출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촬영 막바지였는데 제작비 문제, 장소 섭외 문제가 원할이 해결되지 않아서 비주얼로는 원하는 임팩트를 만들어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대사를 고민했다. 촬영 하루 전에 그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리허설을 하면서 최종 결정했다.

그리고 원래 사장의 집 탁자에 4개의 신문이 놓여있는 장면을 잡은 컷이 1초 정도 있었다. 근데 잘라냈다. 보여주지 않아도 영화의 맥락을 이해하면 어떤 신문들인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오히려 보여주지 않아서 관객들이 머릿속에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되고 더 많은 폭소를 터뜨리는 것 같다."

- 영어 강사가 "왜 한국의 대통령을 쥐라고 부르느냐"고 묻는데 학생이 답을 하는 장면이 없다. 일부러 잘라냈다고 들었는데 같은 맥락인가?
"학생의 발언이 좀 세서 요즘 같은 분위기에선 '국가원수모독죄'로 트집을 잡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심의도 걱정했지만,(웃음) 그 대사가 없어도 질문만으로 충분히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명박 대통령, 한국의 인종차별주의자들도 이 영화 봤으면"

- 영화 곳곳에 이런 정치적인 메시지를 집어넣는 이유는?
"대학교 1학년 때 6월 항쟁을 경험했다. 그 때 가졌던 세상에 대한 열정과 시대 정신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다. 그래서 관심이 사회적 약자 등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하는 부분인데 놓치고 있는 쪽으로 간다.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시대의 공기와 호흡하고 싶다. 그래야 영화도 시대적 의미 속에서 생동감을 갖고 세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내 영화로 인해 조금이나마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게 작은 바람이다. 그럴 리 없겠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꼭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 이주노동자와 한국 고등학생의 로맨스라는 설정 때문에 개봉 전부터 한국의 인종차별주의자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남자 주인공 마훕씨는 살해협박까지 받고 있다고 하는데.
"충격을 많이 받았다.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정말 안타까운 상황이다. 개봉이 다가올수록 안티 활동이 기승을 부릴 것 같은데 어떻게 대처할까 고민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은 영화를 보고 이야기 해보자는 것이다. 이들을 초대해서 영화를 같이 보고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싶다."

반두비 신동일 영등위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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