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중심 인물인 방효태 할아버지

<길>의 중심 인물인 방효태 할아버지 ⓒ 시네마 달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 그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것만으로도 마을 사람들은 행복했다. 그들에게 농사는 삶을 지탱시키는 중요한 행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농부들에게 농사를 짓지 말라는 정부의 명령이 떨어진다. 미군 기지를 확장한다는 이유였다. 대대로 물려받은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불법이라니,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어디 있는가?

 

평택 대추리의 시련은 그렇게 찾아왔다. '여명의 황새울'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진 경찰의 무자비한 강제 철거 속에서도 대추리 주민들은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러던 중 결국 마을 사람들이 이주를 했고 예정대로 미군 기지가 들어섰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대추리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다고 생각한 언론들은 대추리 이야기를 다시 하지 않았고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속에 잊혀져갔다.

 

김준호 감독의 <길>은 한동안 잊혀진 대추리의 비극을 다시 환기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는 치열했던 투쟁의 모습을 담지 않는다. 단지 농사지으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대추리 주민들의 모습을 담았을 뿐이다. 영화는 대추리 문제에 대해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대체 평화롭게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농민들을 왜 국가가 죄인으로 모는지, 그리고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자국민을 괴롭히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를 탄압을 가하는 자들은 정말로 모르는지.

 

자국민의 평화를 짓밟은 '국익'

 

 평화로운 대추리의 운동회. 이것이 결국 대추리 주민들의 마지막 운동회가 되고 말았다

평화로운 대추리의 운동회. 이것이 결국 대추리 주민들의 마지막 운동회가 되고 말았다 ⓒ 시네마 달

70의 나이에도 여전히 부지런히 자신의 땅을 일구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방효태 할아버지는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고 길을 가로막는 경찰들이 못마땅하다. 대체 내 땅에서 농사를 짓는 이들을 왜 죄인으로 모는 것인까? 타들어가는 논을 보며 할아버지는 분노한다. 경찰이 주위에 서 있고 미군 기지에서 나오는 행진곡이 울려퍼지는 상황에서도 할아버지의 농사일은 계속된다.

 

<길>은 방효태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강제 철거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삶을 유지하려는 대추리 주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강제 철거 장면과 경찰과의 몸싸움 장면 등이 나오기는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냥 '이런 일이 있었다'는 식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터전을 잃어버렸다며 울부짖는 할머니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미군 기지 확장 당시 정부는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익을 위해 정부가 한 일은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자국민의 평화를 깨버리는 것이었다. 국가가 자국민의 평화를 깨뜨리는, 정말 있을 수 없는 상황. 김준호 감독은 그것이 바로 대추리 사태의 핵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벼를 죽이는 피를 계속 뽑으며 '센 나그네'가 있으면 안된다는 방효태 할아버지의 말은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다. 남의 나라를 위해 자국민의 평화를 깨뜨리고 이것을 '국익'이라고 부르짖는 국가의 행동은 정말 좋은 땅의 곡식을 다 버리고 쓸모없는 피로만 논을 채우는 짓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비극이 터져도 달라지지 않은 대한민국

 

 떠나는 방효태 할아버지와 논길을 가로막은 경찰들. 이 영화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떠나는 방효태 할아버지와 논길을 가로막은 경찰들. 이 영화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 시네마 달

길고 긴 투쟁이 이어졌지만 결국 주민들의 강제 이주가 결정되고 대추리 주민들은 400여일간 계속하던 촛불집회를 종료한다. 그리고 주민들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땅 대추리를 미군에게 넘겨 주고 떠나게 된다.

 

방효태 할아버지도 살림살이를 트럭에 싣고 원치않는 이주를 하게 된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항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은 마치 대추리가 제 땅인양 농토를 가로막고 서 있다. 이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슬픈 표정 뒤로 대추리의 평화로운 모습이 다시 펼쳐진다.

 

비록 늦은 개봉이긴 하지만 <길>의 주제는 지금도 유효하다. '대추리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같은 단순한 주제가 아니다. <길>은 이런 비극이 펼쳐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를 개선하지 않는 위정자들을 꾸짖고 있다.

 

대추리를 기억하지 않는 한 이 나라에는 제2, 제3의 대추리가 생길 수 있다. 미국의 압력에 무조건 고개숙이며 자국민을 괴롭히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현 정부에서도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 참여정부냐 실용정부냐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를 이끄는 이들이 계속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길>은 가장 감성적인 방법으로 대추리의 비극을 사실감있게 전하고 있다. 단지 농사지으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들을 '폭도'라고 생각했다면, 대추리 사태를 보며 집단이기주의라고 생각했다면, 보상받는 것으로 투쟁이 끝났다고 생각했다면 반드시 이 영화를 보길 바란다. 우리가 포장된 이야기에만 집중한 동안 순박한 농부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었는가를, 그리고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무기력하고 잔인한 나라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009.05.18 18:54 ⓒ 2009 OhmyNews
김준호 방효태 대추리 미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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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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