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이들은 응급대기실에서 경기 준비를 한다. 볼보이들도 1루쪽은 홈 유니폼을 3루쪽은 원정 유니폼을 입는다.

볼보이들은 응급대기실에서 경기 준비를 한다. 볼보이들도 1루쪽은 홈 유니폼을 3루쪽은 원정 유니폼을 입는다. ⓒ 최부석


"야! 가서 볼보이나 해라~"

동네 야구나 축구를 하다 보면 편한 마음에 이런 저런 야유를 던질 때가 있다. 그 중에 가장 흔한 야유가 바로 "볼보이나 해라"다. 사전에 적힌 볼보이는 공을 줍는 소년, (배구에서) 서브하는 선수에게 공을 빨리 건네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 '볼보이'가 왜 선수를 낮잡아 부르는 말이 됐을까? 그 이유는 볼보이 역할이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하찮은 역할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동네야구에서 볼보이를 한다면 이만큼 지루한 일이 없다. 그런데 과연 프로야구에서도 볼보이가 하찮고 비중 없는 역할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인터넷을 검색해봐도 짧은 글 외에는 볼보이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직접 해보는 수밖에. 기자는 두산베어스 구단의 허락을 받아 4월 28일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SK 와이번스와 두산베어스의 경기에 볼보이로 참여했다.

흔쾌히 볼보이 체험을 허락한 두산이지만 아무래도 경기 중에 '사고'를 우려했는지 경력 있는 볼보이와 함께 참여하도록 했다. 대학 휴학생인 김의진(25)씨는 2006년부터 잠실야구장 볼보이 생활을 했다. 처음엔 선수들을 보는 게 신기했다는데,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는지 무덤덤한 표정이다. 경기 시작 전에 안면 있는 선수나 코치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다.

결코 공만 줍지 않는 볼보이의 '하루'

 경기를 시작하기 전 연습용품을 외야 구석에 보관한다. 볼보이를 연습부터 하면 3만원, 경기만 하면 2만원의 일당을 받는다.

경기를 시작하기 전 연습용품을 외야 구석에 보관한다. 볼보이를 연습부터 하면 3만원, 경기만 하면 2만원의 일당을 받는다. ⓒ 최부석


사회인 야구를 10년 가까이 하면서 유니폼은 많이 입어봤지만 볼보이용 유니폼을 입으니 느낌이 새롭다. 이날은 프로야구 경기에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닌가. 옷이 좀 끼어도 어쩔 수 없다. 볼보이는 3루쪽 통로에 있는 응급조치실 한켠에서 대기한다. 옷도 갈아입고 경기 준비를 하는 곳도 이곳이다.

이날은 SK의 이만수 코치가 불쑥 찾아왔다. 누구에게나 밝은 웃음을 선물하는 이만수 코치의 모습이 멋있다. 선수나 코치도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이곳에서 종종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볼보이는 경기 중에 공만 줍는 것이 아니다. 연습 보조를 하게 되면 일당을 더 받는데 경기 시작 너댓 시간 전부터 나와 망과 배팅케이지를 꺼낸다. 오후 6시 30분에 경기가 시작될 경우 홈팀 선수들은 2시 30분부터 연습을 시작한다. 볼보이는 틈틈이 공을 모으고 번트 연습을 돕기 위해 피칭 머신에 공을 넣는다. 4시 30분을 전후해 원정팀이 오면 간단한 준비를 해준 뒤 식사를 한다.

경기 시작 전 안전 교육을 받았다. 26일에 발생한 김태균 선수의 충돌 사고가 적지 않은 부담이다. 이날 사고가 발생하면 1루 외야의 볼보이가 구급차를 경기장 안으로 유도하기로 사전 교육을 받았다.

경기 시작 50분 전. 양팀이 타순표를 교환하고 전광판에 명단이 떴다. 볼보이들의 주요 관심사 중에 하나가 바로 양팀의 외야수를 확인하는 것이다. 외야수들은 공수교대 때 캐치볼을 하면서 어깨를 푸는데 동료와 하는 경우도 있지만 볼보이와 캐치볼을 하는 선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캐치볼을 잘해주는 선수가 배치되면 조금 더 즐겁다.

경기 시작 10분 전. 마운드에 올라가 로진백(송진가루주머니)을 올려놓는 것으로 모든 준비를 마쳤다. 마운드에 올라갔다 오는 사이 부끄럽고 긴장되어 앞만 보고 달렸다. 애국가를 부르고 선수 이름이 불리면, 경기는 시작한다.

초짜 배트보이 정신없이 달리다

 타자가 방망이를 내던지면 바로 가져오는 것이 배트보이의 임무다. 프로선수들의 방망이는 송진이 찐득하게 묻어있기 때문에 잡을 때 조심해야 한다.

타자가 방망이를 내던지면 바로 가져오는 것이 배트보이의 임무다. 프로선수들의 방망이는 송진이 찐득하게 묻어있기 때문에 잡을 때 조심해야 한다. ⓒ 최부석


"1회는 제가 하는 것을 보시면 어떻게 하는지 충분히 아실 겁니다. 2회부터 5회까지 제가 했던 대로 따라하시기만 하면 돼요."

오늘 맡은 임무는 1루쪽 배트보이. 원래 한 명만 앉아 있던 자리에 두 명이 있자 두산 김광림 타격코치가 고개를 갸웃한다. 체험기사를 위한 취재라고 설명하자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바로 옆에 섰다.

공이 뒤로 빠지거나 바닥에 튄 공은 부정투구를 막기 위해 새 공으로 바꾼다. 타자가 1루로 나가면 방망이를 줍고 장비를 가져오면 된다. 공격할 때는 송진막대와 연습방망이를 밖에 내놓고 수비할 때는 경기에 방해되지 않게 치운다. 크게 세 가지 일만 하면 1루 배트보이의 일은 끝이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떨리는 걸까?

2회초가 되자 가슴이 쿵쾅쿵쾅 한다. 혹시나 실수를 하면 어떡하지? TV 중계에 내 얼굴도 나오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SK가 공격할 때는 별로 할 일이 없다. 그러다 2회말이 돌아왔다. 이제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2회말 두산의 공격. 첫타자 손시헌은 삼진으로 물러났다. SK 외국인 투수 가도쿠라의 포크볼이 예사롭지 않다. 사실 투수전이 되면 볼보이나 배트보이는 별로 할 일이 없어진다. 그러나 투수전이 될 것 같다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3회말 두산의 타선은 말 그대로 폭발했다. 신인 중견수 정수빈의 2루타로 시작한 두산의 안타행진은 최준석의 3점 홈런을 포함해 8점을 뽑아냈다. 4회 1점, 5회 3점. 배트보이를 하기로 한 3회부터 5회의 단 3이닝에 나온 점수가 12점. 안타가 10개, 사사구 5개.

웬만한 한 경기에 나올 기록이 다 나왔다. 그덕에 달리고 줍고 또 달렸다. 덕아웃에서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하지만 선수가 안타를 치면 방망이를 줍고 1루로 가서 보호대를 받는다. 그리고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온다. 수십 미터 달리기를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보며 의진씨가 한 마디 한다.

"여름 되면 살 쭉쭉 빠져요. 다이어트가 따로 없다니까요."

5회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교대했다. 헬멧을 벗으니 머리가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경기는 두산의 15대 2 대승. 다리가 저리고 숨이 가빴지만 프로야구 경기에 직접 참여했다는 뿌듯함에 기분이 묘했다.

 김민호 주루코치에게 방망이와 보호장비를 건네받고 있다. 이날 김민호 코치와 많은 만남(?)을 가졌다.

김민호 주루코치에게 방망이와 보호장비를 건네받고 있다. 이날 김민호 코치와 많은 만남(?)을 가졌다. ⓒ 최부석


볼보이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1루 배트보이들은 1루 덕아웃 옆에 자리잡는다. 바로 옆에 타격코치가 있기 때문에 선수와 하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재미가 있다.

1루 배트보이들은 1루 덕아웃 옆에 자리잡는다. 바로 옆에 타격코치가 있기 때문에 선수와 하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재미가 있다. ⓒ 최부석


볼보이가 앉아 있는 자리는 각 팀 덕아웃 바로 옆이다. 그 자리는 수비코치나 타격코치들이 쉴 새 없이 선수들에게 지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야구를 그 누구보다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 이날 두산 민병헌은 몸쪽으로 파고드는 공에 대처하기 어렵다고 말했고 김광림 코치는 빠른 스윙을 믿으라며 독려했다. 이는 야구중계에서는 좀처럼 알아내기 어렵다.

이날 같이 배트보이를 했던 의진씨는 작년 시즌에 이어 올 시즌도 계속 일을 할 것이란다. 매일 경기를 보기 때문에 경기 흐름을 읽는 안목도 꽤 높다. 저녁에 시작해 늦게 끝나긴 하지만 특별히 어려운 점이 없고 야구를 공짜로 볼 수 있으니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가장 매력적인 아르바이트로 손색이 없다.

볼보이 우습게 보지 마시라. 볼보이 덕에 경기 진행이 빨라진다. 볼보이와 배트보이가 없다면 선수들은 파울볼과 방망이를 치우러 이리저리 달려야 한다. 그렇기에 선수들이 경기에 더욱 집중해 좋은 모습을 선보일 수 있는 것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프로야구의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지?

볼보이에 관한 몇 가지 진실

1. 볼보이는 소년이 아니다?
야구팬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듯이 잠실야구장은 두산베어스와 LG 트윈스가 공동으로 사용한다. 팀이 2개라서 볼보이도 각 팀마다 관리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볼보이는 잠실야구장을 담당하는 용역업체의 아르바이트생이다. 그렇기 때문에 볼보이들은 한 팀을 이뤄 잠실에서 열리는 전 경기를 맡게 된다. 볼보이(Ball Boy)라고 해서 소년이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광주구장에서는 어린 학생이 맡는 경우도 있지만 잠실에서는 주로 대학 휴학생들이 일을 한다. 엄밀히 말하면 볼가이(Ball Guy) 되겠다.

2. 볼보이는 외야로, 배트보이는 내야로
우리는 야구장에서 파울볼을 줍거나 타격하고 난 방망이를 치우는 사람을 일컬어 볼보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일하는 그들은 볼보이와 배트보이를 구분한다. 쉽게 말해 외야에서 파울볼을 처리하면 볼보이. 내야에서 심판에게 공을 건네거나 선수들의 장비를 거두면 배트보이가 된다. 여기에도 간단한 법칙이 있다. 1루 배트보이는 홈팀 선수들이 던진 방망이와 출루한 뒤 벗어낸 팔꿈치 보호대와 정강이 보호대를 덕아웃으로 가져온다. 3루 배트보이는 방망이만 거두고 심판에게 수시로 공을 공급한다.

3. 한 경기에 쓰는 공은 몇 개?
야구공이 바닥에 튀어 흠집이 날 경우 공을 바로 바꾼다. 그렇기 때문에 공을 많이 쓰는 편인데 대략 12개들이 일곱 박스 이상을 쓴다. 비가 올 경우 100개 가까이 쓰기도 한다. 현재 프로야구 공인구의 공급가는 6천원 정도기 때문에 매 경기마다 50만원을 공 값에 쓰는 것이다. 경기에서 사용한 공은 따로 보관해 연습구로 쓴다.

덧붙이는 글 취재에 협조해준 두산 베어스 프로야구단에 감사드립니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볼보이 배트보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