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줄거리가 들어있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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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일 뿐 따지지 말자!'

맞는 말이다. 따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성경을 차용했다고 느껴지기에 성경을 전하며 사는 목사로 성경으로 영화를 따져보고 싶은 충동을 어쩌랴. <노잉>을 보고 난 관객 중 크리스천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있을 수도 있으리라.

물론 성경을 모티브로 하는 영화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노잉>을 보면서 특히 '결정론'이니, '운명론'이니, '지구 최후의 날'이니 하는 것들에 호기심이 일 수밖에 없었다. <노잉>은 제목이 뜻하듯 '지구의 종말'을 알 수 있다는 거다. 정말 그럴까?

마지막 날을 알 수 있다?

1959년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미래의 꿈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것을 타임캡슐에 넣는다. 50년 후 타임캡슐은 개봉된다. 그러나 유독 한 아이의 것만 그림이 아니라 무수한 숫자들이 적혀있다. 케일럽(챈들러 캔터베리)이 받은 숫자가 가득 적힌 종이 한 장, 이것이 문제다.

케일럽의 아버지인 MIT 천체물리학 교수 존 코슬러(니콜라스 케이지)는 이 종이에 관심을 갖게 된다. 결국 종이에 쓰인 숫자는 9·11테러를 비롯해 지난 50여 년 동안 일어난 사건들의 날짜와 사망자 수, 사건이 일어난 지점의 위도와 경도를 가리키는 것이란 걸 알아낸다. 앞으로 일어날 사건은 단 세 가지, 그 현장으로 뛰어들어 막으려고 노력해 보지만 속수무책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재앙이나 불행한 사건들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모든 재앙은 운명적으로 예정된 것이라는 게 영화가 말하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거다. 우주의 기원과 우주의 종말이라는 문제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 결론이다.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듯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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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북두성을 다른 별들에게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하늘로 하여금 그 법칙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 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번개가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하게 하겠느냐 … 누가 하늘의 물주머니를 기울이겠느냐 티끌이 덩어리를 이루며 흙덩이가 서로 붙게 하겠느냐(성경 욥기 38장 31-38절)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성경 베드로후서 3장 10절)

성경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그것을 예측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게 영화와는 다르다. 영화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이들에 의하여 미래는 예견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상한 숫자를 써넣은 아이나, 케일럽 코슬러나 애비 웨일랜드(라라 로빈슨) 같은 아이들이다.

노스투라다무스의 예언

'알 수 있다'는 면에서 1999년 8월 18일이 '지구 최후의 날'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고도우 벤이 쓴 <지구 최후의 날>(1981년 고려원)에 보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이렇게 인용하고 있다.

여자가 배를 타고 하늘을 날다.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한 위대한 왕이 도르스에서 살해된다. ⇒ 1963년 7월 소련에서 여성 우주 비행사가 탄생, 같은 해 11월 케네디 대통령이 달라스에서 암살(<지구 최후의 날> 3쪽)

얼마나 그럴 듯한가. 이토록 지난 몇 백 년의 역사가 그의 예언대로 되었다고 고도우 벤은 말한다. 그는 또 노스트라다무스가 1999년 8월 18일을 '지구 최후의 날'로 예언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그날은 지나갔고 지금도 지구는 잘 돌아가고 있다.

케일럽의 아버지 존 코슬러도 숫자를 통해 모든 사건들이 예언되었다고 믿는다. 이 면에서 존과 고도우 벤은 닮았다. 문제의 종말에 관한 예언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책 <모든 세기>에 있는 다음 구절이다.

1999년 7의 달,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 앙골모아의 대왕을 부활시키기 위해 그 전후의 기간, 마르스는 행복의 이름으로 지배하려 하리라(위의 책 113쪽)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답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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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잉>과 책 <지구 최후의 날>이 그날, 즉 지구 최후의 날을 알 수 있다고 말하지만, 아직까지 불변의 진리는 그 날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성경의 이론이다. <노잉>과 <지구 최후의 날>은 속수무책으로 그날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대로 성경에는 정답이 있다. 그것은 구원론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성경 마태복음 24장 35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성경 요한복음 3장 16절)

종말론과 구원론을 믿는 목사가 영화 <노잉>을 보고 평을 쓰다 보니 다소 종교적인 색채가 물씬 풍겼다.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불확정의 운명론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따라 영화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으리라.

성경과 달리 영화에서는 천사가 에일리언이나 로봇 비슷한 모습을 띠고 등장한다. '3'이란 숫자에 익숙한 성경과 달리 영화에서는 4명의 외계인이 등장한다. 영화와 성경은 그러나 '선택 받은 자'라는 접점을 갖는다. 선택 받은 자만이 '새 하늘과 새 땅(구원)'에 이른다는 내용은 성경과 맥을 같이한다. 지구 멸망 이후의 천상의 모습 또한 성경과 흡사하다.

세상은 참으로 인간이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지구 최후의 날, 지구 종말의 날에 과연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영화도 그저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래도 선택받은 자가 있다는 게 희망이라면 희망일까? 영화는 복음이 아니기에 거기까지 다다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목사가 본 재난 종말 영화 <노잉>은 참 흥미롭다. 스펙터클한 장면들은 할리우드다운 좋은 양념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노잉>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로즈 번, 챈들러 캔터베리 출연/ N.E.W. 배급/ 마스엔터테인먼트 수입/ 상영시간 121분/ 2009년 4월 16일 개봉
노잉 개봉영화 영화평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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