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선수들의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찬 한국체육대학교 빙상장

피겨 선수들의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찬 한국체육대학교 빙상장 ⓒ 곽진성


지난 18일 오전, 한국체육대학교(이하 한국체대) 빙상장은 미래의 '피겨여왕'을 꿈꾸는 어린 피겨 선수들로 북적였다. 선수들은 운동화에서 피겨 스케이트화로 갈아 신고 연습에 매진했다.

선수들 뒤엔 빙상장의 추위를 이기며 애정 어린 눈빛으로 선수를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선수들의 어머니, '피겨맘'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선수들의 뒤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는 그들은 알고 보니 '운전사'에 '짐꾼' 역할은 물론, '코치'에 식단까지 챙기는 슈퍼맘들이다. 그들의 특별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피겨맘의 조건] 자녀의 꿈을 위해 자신의 삶을 걸다

 4살에 피겨스케이팅을 배우는 김예리(4)양과 그의 어머니인 유혜영(32)씨. 
유씨는 "아이가 계속 피겨를 좋아한다면 선수 생각도 해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4살에 피겨스케이팅을 배우는 김예리(4)양과 그의 어머니인 유혜영(32)씨. 유씨는 "아이가 계속 피겨를 좋아한다면 선수 생각도 해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 곽진성


올해 4살인 예리는 피겨스케이팅을 배우러 틈틈이 한국 체대 빙상장을 찾는다. 생후 40개월이라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할 시기지만 예리는 피겨스케이팅에 관심이 많다. 실력은 아직 빙상장 안에서 아장아장 걷는 수준이지만 예리 스스로 피겨를 배우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TV에서 피겨 경기가 중계될 때면 눈을 떼지 못하는 예리, 그를 지켜보는 어머니 유혜영(32)씨의 마음은 애틋하다.

"보통 6~7살 때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하는데, 예리는 자기가 워낙 좋아하다 보니깐 어린 나이에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하게 됐어요. 본인 스스로 너무 좋아하니까 그만둘 수가 없는 거죠."

피겨스케이팅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 틈이 날 때마다 시간을 내어 빙상장을 찾는다는 유씨. 1시간이나 되는 강습이 지루할 만도 하건만 자녀의 꿈을 지켜보는 유씨의 표정에선 힘든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자녀가 좋아하는 일을 지켜볼 수 있으니까 어머니로서 행복하죠. 아이가 계속 피겨를 좋아한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선수 생각도 해보고 있어요. 물론 그러려면 엄마의 노력이 많이 필요하겠죠?(웃음)"

아이가 좋아한다면 피겨스케이팅을 시키겠다고 말하는 유씨처럼 대부분의 피겨맘들은 자녀에게 취미로 피겨스케이팅을 시키면서 피겨스케이팅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피겨맘의 조건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녀의 꿈을 위해 자신의 삶을 거는 헌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피겨맘의 고민] "직장생활에 수민이 오빠까지 챙기려면..."

 중학교 1학년, 피겨 스케이터를 꿈꾸는 이수민(14)양.

중학교 1학년, 피겨 스케이터를 꿈꾸는 이수민(14)양. ⓒ 곽진성

중학교 1학년인 이수민(14)양은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꿈꾸고 있다. 다른 선수들보다 2~3년 늦은 출발이긴 하지만 피겨에 대해 열정은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친구와 함께 피겨스케이팅을 배웠다가 미국에 1년 정도 가게 돼서 피겨를 타지 못했었죠. 하지만 피겨스케이터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어머니한테 피겨를 배우겠다고 졸랐어요."

피겨스케이터가 되겠다는 수민이의 말에 부모는 처음에 반대했다. 하지만 딸의 꿈을 가로막는 것 같아서 어머니인 최씨는 학교 성적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1년을 지켜보기로 했다.

집에서 한 시간이나 걸리는 빙상장으로 가면서 지하철에서 공부한다는 수민이, 아무리 힘들어도 피겨스케이팅을 탈 때면 즐겁다는 그는 빙상장에서 환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수민이가 어머니에게 한 가지 아쉬워하는 점이 있다. 다른 피겨맘들처럼 자신을 챙겨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다른 피겨맘 엄마들은 경기 동영상도 함께 보고, 훈련도 같이 봐주고 식단도 같이 짜주고 그런대요. 그런데 우리 엄마는 잘 안 그래요.(웃음)"

하지만 수민이의 그런 불만에 어머니인 최씨는 나름의 아쉬운 점을 말한다.

"저도 직업이 있고 또 수민이 오빠도 챙겨야 하니깐 수민이에게만 온 여력을 쏟지는 못하죠. 그런데 그게 수민이는 아쉬운가 봐요.(웃음) 그래도 저는 나름대로 링크장에서 와서 연습 모습도 보고, 갈 때는 같이 차도 태워주고 그러는데 말이죠."

최씨는 "피겨맘이 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직장생활에, 수민이 오빠까지 챙겨야 하는 그에게 헌신적인 피겨맘이 된다는 것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피겨스케이터를 꿈꾸는 딸을 위해 최씨는 피겨맘의 역할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알아 가고 있는 중이다.

[피겨맘의 노력] "피겨 동영상 많이 봐요, 엄마도 전문가 돼야..."

어린 피겨 선수들과 피겨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어린 피겨 선수들은 점프 연습에 온 힘을 쏟고 있고 그들의 어머니는 그런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점프 연습에 한창인 이나영(13) 선수, 1년 반째 피겨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나영이의 어머니인 신미선(44)씨는 전형적인 피겨맘 중 한명이다.

"조금만 힘내서 점프 한번 뛰어."

나영이가 연습에 지칠 때면 어머니인 신씨가 독려한다. 그런 어머니의 응원 덕분일까? 앞서 실수를 했던 나영이의 점프 동작에 유난히 힘이 있어 보인다.

나영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피겨 강습을 받게 된 것을 계기로 피겨 선수가 됐다. 강습 중에 피겨스케이팅이 너무 좋아졌고 급기야 피겨 선수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딸아이가 좋아한다는 말에 신씨는 결국 고민 끝에 승낙을 하게 되었다.


"딸아이가 선수를 하고 싶다고 해서 시키게 됐죠. 추운데 운동하는 것이 안타깝고 부상도 염려돼요. 또 피겨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죠. 그래도 내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려고요. 힘든 운동인 피겨스케이팅을 하다보면 분명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경험이 될 거라 믿습니다."


딸의 꿈을 위해 피겨 선수가 되는 것을 허락한 유씨, 하지만 자녀가 피겨스케이터로 산다는 것은 어머니에게도 많은 노력이 뒤따르는 일이다. 링크장까지 운전을 해주는 것은 물론, 훈련 도움, 그리고 식단까지 일일이 신경써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녀의 꿈을 위해 자신의 삶을 걸어야 한다.

다른 주부들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유씨는 아침 일찍 다른 가족들 식사를 챙긴 다음, 나영이를 데리고 빙상장으로 향한다. 또 스케이트와 매트 등의 훈련 보조 기구를 챙겨 원활한 훈련을 도와야 한다. 또 여유 시간에 피겨스케이터인 딸의 동작 보정을 위해 피겨스케이팅 동영상을 찾아 공부하는 것도 유씨의 역할. 피겨맘들은 자녀를 위해 피겨스케이팅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피겨스케이팅 비디오를 많이 봐야 해요, 어머니도 전문가가 돼야 하죠. 그래야 점프를 뛸 때 자녀의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낼 수 있으니까요."

[피겨맘에 대한 오해] '극성'이라고요? 헌신이죠

 피겨 스케이트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는 피겨맘들

피겨 스케이트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는 피겨맘들 ⓒ 곽진성


한국체대 링크장에서는 피겨 선수를 둔 많은 어머니, 아버지들이 나와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때로는 응원을 보내다가,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실수를 하면 따끔하게 혼내기도 했다. 그들의 열정으로 그들의 자녀는 멋진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한편으론 이런 피겨맘들에 대해 '극성스럽다'는 표현이 따라붙기도 한다. 하지만 피겨맘들을 오랫동안 지켜본 피겨팬의 생각은 다른다. 박정현(28)씨는 피겨맘에 대해 헌신이라는 표현을 썼다.

"피겨맘에 대해, 마치 '한국 엄마들의 극성'이라고 하는 사람들 보면 기가 막혀요. 극성이라고 보기엔 우리 피겨 환경이 너무 척박하잖아요. 골프처럼 상금이 많은 종목도 아니고 야구 축구처럼 프로선수로 성공하면 어마어마한 연봉이 나오는 종목도 아니잖아요. 비인기 종목에 제대로 된 링크장도 없는 게 현실이고요."

아쉬움을 토로한 박씨는 말을 계속 이었다.

"그런데도 자식이 하고 싶어 하니까, 소질 있어 보이니까 그 모든 걸 다 감수하고 지원하는 거보면 대단하죠. 솔직히 피겨라는 게 엄마가 시키고 싶어서 엄마 욕심에 시킬 운동은 아니잖아요. 피겨맘들은 극성이 아니라 헌신이죠."

피겨스케이팅 전 국가대표 최지은(22·고려대) 선수의 어머니 김향순씨도 피겨맘들의 헌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 지은이가 서울에서 피겨 훈련 받는 것을 보았을 때, 새벽 2시까지 훈련이 이어졌어요. 너무 열성적이던 피겨맘들을 보면서 미쳤구나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저도 거기에 있었죠. 딸아이가 너무나 좋아하는 것이 바로 피겨스케이팅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서울에서 훈련하는 딸아이 뒷바라지를 위해 대전에서 하던 일도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대학에서 하던 강의도 미루고, 서울에 집을 얻어 올라갔어요.(웃음) 남편은 비디오를 들고 경기 때마다 촬영하고요."

이런 피겨맘의 헌신은 좋은 피겨 선수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신혜숙(53) 코치는 훌륭한 피겨맘의 조건에 대해 말했다.

"피겨스케이팅은 어머니의 헌신 없이는 해낼 수 없는 운동이에요. 어머니들이 적극적으로 해줘야 할 역할이 분명히 있어요. 예를 들어 체중관리를 위한 식단을 짜주는 것이나, 선수들이 편한 컨디션으로 운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죠."

신 코치는 피겨맘이 주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도 말했다. 가령 코치의 역할이라든지 그런 부분은 어머니들이 어느 정도 신뢰를 갖고 지켜봐줘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작은 부분 하나까지 지적하는 것은 선수에게 큰 부담을 준다는 지적이다.

"선을 유지하되 헌신을 쏟아라"는 조언, 지금 많은 피겨맘들은 이런 조언처럼, 자신의 피겨 스케이터 자녀를 위해 열정을 쏟고 있다. 그리고 그 헌신은 또 다른 '피겨여왕'을 만들어 내고 있다.

피겨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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