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 <적벽대전>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삼국지>는 국적을 떠나 아시아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유명한 스토리다. 역사서나 소설은 물론이고 드라마, 영화, 뮤지컬, 게임 등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재활용되고 있는 <삼국지> 관련 아이템은,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유비, 조조, 제갈량 등의 이름 정도는 한번쯤 들어봤음직하다. 그리고 그 캐릭터와 스토리의 대부분은 나관중의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를 통하여 구축된 이미지가 적지 않다.

‘적벽대전’은 <삼국지> 전편을 통틀어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퀀스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적벽대전만큼 하나의 전쟁에 그토록 다채로운 설정과 지략싸움이 오고가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도 없다. 제갈량이 지략으로 조조의 화살 10만개를 얻어오는 과정이나, 바람의 풍향을 바꾸어 화공으로 조조의 백만대군을 화공으로 무찌르고, 관우가 화용도에서 의리로서 조조의 목숨을 살려주었다는 이야기들은, 삼국지에서도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로서 <적벽대전>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하지만 연의의 현란한 ‘픽션’에서 벗어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적벽대전은 그렇게 거창한 전쟁은 아니다. 이 전쟁이 실질적으로 후한말 위·오·촉의 삼국시대를 정립시키는 전환점이 되는 사건임에는 분명하지만, 어디까지나 중국 내부에서 벌어진 내전이자 실존했던 ‘관도대전’(조조-원소)이나 이후에 벌어지는 ‘이릉전투’(유비-손권)만도 오히려 못한 국지전에 지나지 않는다, 테르모필레나 포에니 전쟁, 1·2차 세계대전같이 역사적으로 큰 의의를 가질만한 사건에는 비할 바도 못된다.

실제 '정사 삼국지'나 중국 측 사서의 기록을 통해서도 살펴보면, 적벽전투는 백만대군(연의에서는 조조군이 83만이라는 구체적 수치가 나온다)이 오고가는 대규모 전쟁이 아니라, 양군 합쳐 많아도 약 삽십만 내외의 병력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후한말의 인구 수치나 전란으로 인한 인구 감소를 고려할 때 이 정도가 중국에서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전쟁 인력이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연의에서처럼 실질적인 전면전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역사적으로는 양군이 장기간 대치하다가 배멀미와 역병, 보급로 등의 문제가 생겨 불리해진 조조군이 철수한 것으로 종결됐다는 시각이 중론이다. 적벽대전의 현란한 대규모 스펙터클이나 연환계, 화공전같은 드라마틱한 장면은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완전한 허구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적벽대전의 허황된 스펙터클을 실제 역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역시 나관중의 영향이 크다. <삼국지연의>는 실존인물과 역사적 사실을 모델로 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작가의 극적 상상력을 결합하여 만든 가상의 역사소설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삼국지연의>는 그 정교한 대중적 완성도와 영향력을  감안할 때, 현대의 트렌드인 ‘팩션물’의 선구적인 작품인 셈이다.  

나관중은 명나라 시대의 문인으로, 당시 원명 교체기의 중국을 맞이하여 한족의 정통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정치적 명분에서 <삼국지연의>를 ‘촉한정통론’의 관점으로 기술했다. 적벽대전의 역사적 의미를 객관적으로 조명하자면, 당시 중국 고대사회의 분열을 장기화시킨 내전일 뿐이지만, 유비를 중심으로한 촉한의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악의 축’이었던 조조를 격퇴시키고 촉한 건국의 전환점이 되는 중대한 전투로서 비중있게 묘사할 필요가 있었다.

엄밀히 따졌을때 적벽대전에서 유비 진영이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적벽대전은 표면적으로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이 조조에 맞서 싸운 전투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주유가 이끄는 손권군과 조조군의 일대일 전투나 다름없었다. 유비군이 조조의 패주로를 예측하고 세 번이나 곤경에 몰아넣거나, 관우가 의로서 조조를 살려준 이야기 역시 모두 연의가 창조한 허구다.

이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유비였다. 유비는 제갈량을 앞세운 외교전을 통하여 손권과 조조의 싸움을 붙이고, 그 틈을 이용하여 형주에 무혈입성했다. 최근들어 삼국시대가 역사적으로 재평가받으면서 가장 새롭게 해석되는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신의의 화신으로 포장된 유비집단의 위선과 부도덕함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도 바로 이 적벽대전 전후의 행보에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연의는 적벽대전에서 구경꾼에 불과했던 제갈량의 역할을 주역으로 대폭 과장했다. 제갈량이 지략으로 조조군으로부터 10만개의 화살을 얻어내는 장면이나, 제단에 기도하여 바람의 방향을 바꾸었다는 설정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연의가 지어낸 허구일뿐, 실제로 적벽대전을 입안하고 주도한 것은 주유였다. 적벽대전은 사실상 손권으로부터 모든 군사적 권력을 위임받는 주유와 조조의 대결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우삼의 영화 <적벽대전>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소설과 달리, 주유의 역할과 비중을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연의에서 주유는 제갈량의 지모를 시기하는 속좁은 소인배처럼 나온다. 물론 오나라 최고의 지략가로 묘사하기는 했지만, 이것은 주유보다는 그를 몇 차례가 농락하게될 제갈량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설정이다.

<적벽대전>은 연의에서 왜곡된 주유의 캐릭터를 다시 바로잡아 역사의 주인공으로 부활시킨다. 여기서 제갈량을 비롯하여 유비, 관우, 장비는 모두 조연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 개봉한 <용의 부활>이 조자룡이라는 인물을 그려냈듯이  <적벽대전> 역시 촉한정통론의 이념적 시각에서 벗어나 인물 중심의 삼국지를 그려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영화 역시 인물과 시대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틀은 연의의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조조에 대한 시각이 여전히 편향적이다. 조조는 약간 왕자병에 색마 기질까지 있는 느끼한 중년 아저씨일뿐이다.

오우삼 감독은 이 작품에서 주유와 제갈량의 ‘동반자적 라이벌’ 관계에 주목하고 있지만, 그 외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크게 공을 들이지 않는다. 조조, 제갈량, 손권, 손상향, 소교, 감녕 등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고 있음에도 캐릭터의 성격묘사나 일관성에 있어서는 게으른 흔적이 역력하다.

거대한 전쟁에 임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내면적 갈등을 입체적으로 그려내지못하고 클라이맥스의 스펙터클로 치닫는다. 1편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다섯 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이지만 마지막 40분을 제외하면 쓸데없는 사족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우삼 감독은 <적벽대전>을 동양판 ‘반지의 제왕’이나 ‘트로이’처럼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해전술을 앞세운 거대한 전투신이나 웅장한 스펙터클은 물론, 남자들의 의리, 미녀와의 로맨스, 반전을 거듭한 심리전 등 오우삼 감독이 과거 홍콩 느와르 시절 좋아하던 스토리들이 무대한 시대극으로 바뀌었을뿐, <적벽대전>안에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담겨 있다. 오우삼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비둘기가 전서구로 등장하거나, 주인공이 권총을 마주 겨누는 장면이 칼로 바뀌는 등 시대극에 맞춰 실용적으로 변모한 설정들도 웃음을 머금게 한다.

<적벽대전>은 중국의 영화적 인프라와 야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완성도 면에서는 평작에 가깝다. 무엇보다 <삼국지>라는 텍스트를 좀더 풍성하게 활용할 수 있는 연출가 고유의 철학이나 독창적인 재해석이 부족하다는 점이 영화를 다소 김빠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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