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 감독은 성 소수자의 담론을 지나 그들의 정사신으로 영화화를 시도했다. 그들의 정사신은 그냥 정사신이 아니다. 너무나 적나라한 그들의 눈빛에서...

유하 감독은 성 소수자의 담론을 지나 그들의 정사신으로 영화화를 시도했다. 그들의 정사신은 그냥 정사신이 아니다. 너무나 적나라한 그들의 눈빛에서... ⓒ 오퍼스 픽쳐스

매스컴은 물론 하도 여기저기서 얘기를 해 안 볼 수 없었던 영화 <쌍화점>. 티케팅부터가 남달랐다. 화장실을 잠간 다녀온 사이 아내가 티켓을 끊었다. 두 장의 티켓을 확인 도장 찍은 주차증과 함께 들고 내게로 오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내가 말했다.

 

"왜 그러는지 동행하는 아이는 없냐고 하네요?"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니까 그런 거겠지?"

"다른 때는 18세 이상 관람가라도 그런 적이 없는데…."

 

영화가 중반에 들어서면서 왜 그랬는지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금기, 금기 그리고 또 금기, 격정, 격정 그리고 또 격정, 영화 속 주인공들이 뭐라든, 감독이 무엇을 의도했든, 다른 관객이 어떻게 반응하든, 내게는 그랬다. 금지된 에로티시즘과 역사물의 절묘한 조화, 그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스토리라인의 흡인력, 과연 영화는 그런 면에서 압도적이었다.

 

금기, 과연 그런 게 있을까?

 

우리 영화도 요샌 '동성애'가 대센가? <서양골동과자점 앤티크>을 본 게 엊그제인데 또 동성애 영화라니. 그러나 어쩌랴. 동성애를 가타부타 말하기 전에 이미 우리 문화 속에 간단하게 녹아든 게 분명하다. 현 시점에서도 소수자일 수밖에 없는데, 고려 공민왕 때는 어땠겠는가?

 

하나님은 에덴을 만들고 아담과 이브에게 단 하나의 금기를 주셨다. 금단의 열매, 선악과. 선악과가 없었다면 인류는 죄라는 걸 몰랐을까? 신앙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 문제의 답을 맡기고, 우린 지금 여기서 금기에 대한 담론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금기여서 더욱 달콤하다. 금기여서 더욱 살벌하다. 금기여서 살 떨리도록 아름답다. 동성애 코드 한 가운데 공민왕(주진모 분)과 친위부대 건룡위의 수장 홍림(조인성 분)이 들어있다. 성 소수자들이 궁중 한 가운데 있었다니.

 

더군다나 유하 감독은 성 소수자의 담론을 지나 그들의 정사신으로 영화화를 시도했다. 그들의 정사신은 그냥 정사신이 아니다. 너무나 적나라한 그들의 눈빛에서 그냥 금기였다고만 쓰기에는 너무 악착같이 내 타자치는 손에 끈적거림이 달라붙는다. 금기의 담론은 동성애 코드로만 그치지 않는다.

 

원나라에서 정략결혼으로 온 왕후(송지효 분)와 홍림과의 사랑, 아니 사랑이 아니면 격정? 그 무엇이라 해도 좋다. 어쨌든 그들의 달콤 살벌한 에로티시즘은 콕 짚어 설명하기 꽤 어렵다. 금기란 있는 것일까? 유하 감독은 "없다"고 대답한다. 이 영화가 팩션이라면 영화 속 시대도 "없다"고 대답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비밀,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이다

 

외모가 출중한 사대부 가문에서 차출한 미소년 친위부대 건룡위, 그들 중 한 사람인 홍림 총관과 공민왕의 관계는 과연 비밀인가. 왕후를 제켜두고 진하게 나누는 둘의 에로티시즘은 그들만의 것으로 남아줄 수 있을까. 둘은 이 비밀이 유지된다고 생각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둘뿐이 아니다. 왕후는 안다. 왕후는 느낀다. 그러기에 홍림에 대한 증오도 깊다. 자신의 남자를 빼앗긴 여인의 한이 그 얼마나 비수와 같으랴. 그러나 비밀 합궁이란 의식으로 이어진 왕후와 홍림의 관계는 또 어떤가.

 

세 사람의 합의에 의해 공공연히 벌어지는 합궁의식, 그게 그리 끝 모를 애증의 강줄기를 낼 줄 누가 알았으랴? 금기가 없다면 비밀은 애당초 있지도 않았다. 있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있을 수도 없다. 있어서도 안 된다. 유하 감독은 비밀에게 그런 대우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외모가 출중한 사대부 가문에서 차출한 미소년 친위부대 건룡위, 그들 중 한 사람인 홍림 총관과 공민왕의 관계는 과연 비밀인가.

외모가 출중한 사대부 가문에서 차출한 미소년 친위부대 건룡위, 그들 중 한 사람인 홍림 총관과 공민왕의 관계는 과연 비밀인가. ⓒ 오퍼스 픽쳐스

그런데 그게 유하 감독만의 생각이 아니라 오늘날 보편적인 진리가 아닐까. 과연 비밀은 있는가. 아직도 비밀이 있다고 믿는 이가 있다면 몽상가거나, 환상 속의 그대 모습일 것이다. 한 동안 비밀이었던 일이 터질 때 봇물 같은 이야기보따리가 펼쳐지는 것이다.

 

지금도 진행되는 우리의 역사는 이를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 <후한서>의 '양진전'의 말처럼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아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가"라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쌍화점>에도 역시 비밀은 없었다.

 

연모냐 격정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연모였는지, 격정이었는지가. 애증으로 얼룩진 공민왕이 홍총관에게 다그친다. 왕후와의 정사가 연모였는지, 격정이었는지를. "격정이었습니다." 이 한 마디가 둘의 관계를 복원할 줄 알았을까. 공민왕은.

 

그러나 그 격정이어야 하는 정사가 이어지기만 한다. 자꾸 이어진다. 격정이면 용서되고, 연모면 용서되지 않는다는 구도는 어디서 온 것인가. 그렇게도 격정에 너그러운 것이 모든 사람이던가. 육체적 에로티시즘이 정신적 에로티시즘을 이끌 수 있는가. 그렇다는 게 <채털리 부인의 사랑> 이후 사람들이 갖는 정신 흐림인가 보다.

 

그런데 왜 공민왕은 그걸 그리 중요시할까. 격정이 연모와 다르다는 게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격정이면 어떻고 연모면 어떠냐. 이미 끝난 상황에서 그리도 질기게 그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묻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에 대한 발악일 뿐이다.

 

지금도 제2, 제3의 공민왕들은 비밀이 환상이 되고 금기가 산산조각이 나는 문화의 마당에서, 그 자존심 하나로 버티려고 한다. 그러나 쉽사리 둘 중 하나를 택하는 일은 현명하지 않음을 자각한다. 그러나 이미 그때는 실기(失期)한 후다. 공민왕의 허전한 자존심이 공중에서 그네를 타는 것만 같다.

 

배반, 그래서 삶이 슬프다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 유하의 <쌍화점> 역시 남녀상열지사의 끝을 배반과 복수로 엮음으로 볼거리를 맘껏 제공한다. 더없이 가까웠던 공민왕과 홍림, 격정이든 연모든 떨어질 수 없었던 왕후와 홍림, 그러나 이들은 배반의 회오리 속으로 띄어든다.

 

배반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복수의 활극으로 접어든다. 애증, 사랑하였기에 더욱 증오하는 그들의 관계는 결국 무력을 차용함으로 끝장을 보고 만다. 하긴 영화에 끝이 없으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그래서 그런가. 정말 멋지게 끝난다. 모두가 끝난다.

 

배반, 그리고 배반, 복수 그리고 복수, 그래서 삶은 처연하도록 슬프다. 아무도 승자는 없다. 화면 가득 펼쳐졌던 질펀한 정사신만 내 가슴과 머릿속에서 스멀거린다. 칼부림 소리만이 내 귀에 쟁쟁하다. 서리꽃(霜花) 사랑이라 그런가. 그렇게 그들의 삶과 사랑이 스러져가고 만다. 그래서 우리네 삶은 슬프다.

 

 배반, 그리고 배반, 복수 그리고 복수, 그래서 삶은 처연하도록 슬프다.

배반, 그리고 배반, 복수 그리고 복수, 그래서 삶은 처연하도록 슬프다. ⓒ 오퍼스 픽쳐스

덧붙이는 글 | *<쌍화점> 유하 감독/ 조인성, 주진모, 송지효 주연/ 오퍼스 픽처스 제작/ 쇼박스(주) 미디어 플렉스 배급/ 133분 상영/ 2008년 12월 30일 개봉
*이기사는 갓피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1.10 17:00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쌍화점> 유하 감독/ 조인성, 주진모, 송지효 주연/ 오퍼스 픽처스 제작/ 쇼박스(주) 미디어 플렉스 배급/ 133분 상영/ 2008년 12월 30일 개봉
*이기사는 갓피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쌍화점 개봉영화 조인성 주진모 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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