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아!"..."안 팔아!"..."팔아!"..."안 팔아!"

 

일흔 아홉 할아버지와 일흔 여섯 할머니는 마흔 살 된 소를 가운데 놓고 지치는 법도 없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입씨름을 한다. 

 

영화 <워낭소리> 포스터 영화 <워낭소리> 포스터

▲ 영화 <워낭소리> 포스터 영화 <워낭소리> 포스터 ⓒ 스튜디오 느림보

소를 먹이기 위해 밭에 농약도 치지 않고, 아픈 몸으로 꼴을 베고 여물을 쑤느라 여념이 없는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가 걱정되면서도 원망스러운 할머니. 평생을 할아버지와 한 몸처럼 살아온 소. 영화 포스터의 출연자 이름에는 '최원균 이삼순 & 소'라고 적혀 있다.

 

꽃이 피고 비가 오고 나뭇잎이 떨어져도 주인공 셋의 하루는 한결같다. 왼쪽 다리가 아픈 할아버지는 흙 위를 기다시피 농사를 짓고, 한 걸음 떼는 것마저 힘겨워 보이는 소는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묵묵히 걸으며 수레를 끌고 일을 한다. 허리가 휜 할머니 역시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논과 밭에서 그저 일, 일, 일을 한다.   

 

할아버지를 보며 '소가 업(業)'이라고 하던 할머니 말씀처럼 소와 할아버지는 전생에 도대체 어떤 인연이었던 것일까. 귀가 어두워 할머니 말소리는 제대로 듣지 못해도 소의 '음메' 소리는 아무리 작아도 잘 알아듣는다.

 

거기다가 깊은 주름, 늘어진 살갗, 여윈 몸, 퉁그러지고 휘어진 뼈, 불안한 걸음걸이, 충혈되어 껌뻑이는 눈, 호물거리는 입, 말 없음, 거친 손 마디와 무릎, 틈만 나면 기대어 조는 것까지...할아버지와 소는 한몸처럼 똑같다.

 

소와 함께 농사를 지어 9남매를 길러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다 쓰러져가는 집과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마치 그곳의 나무처럼 소처럼 늙어간다. 명절에 다니러 온 자식들은 '소가 없어야 아버지가 농사를 그만 지으실 것'이라며 소를 내다 파시도록 하자면서 '그래야 우리들 마음이 놓인다'고 한다.

 

소가 있었기에 아버지 어머니가 자기들을 키우고 뒷바라지하실 수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년을 함께 하는 소가 아버지 어머니에게 어떤 존재인지 헤아릴 깊은 눈은 없다. 소가 죽으면 따라 죽을 거라고, 소가 죽으면 상주 노릇을 할 거라는 아버지의 그 속마음을 알 리가 없는 것이다. 

 

영화 <워낭소리>의 한 장면 영화 <워낭소리>의 두 주인공인 할아버지와 소

▲ 영화 <워낭소리>의 한 장면 영화 <워낭소리>의 두 주인공인 할아버지와 소 ⓒ 스튜디오 느림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늙은 아버지와 늙은 소의 힘겨운 노동을 보는 일이 결코 편할 수 없었지만, 옆에서 툭툭 던지는 할머니의 한 말씀 한 말씀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 할 수 없는 맛이 있어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원망과 잔소리를 해대면서도 아픈 할아버지의 이마에 찬 수건을 대주는 할머니. 9남매 모두 떠나버린 텅 빈 집에 남아 서로 기대어 마지막을 보내는 노부부. 어찌 할아버지와 소만 전생에 인연이 있었다 하겠는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역시 질긴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는 것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울고 소가 눈물 흘릴 때 객석에 앉은 우리들도 울었다. 한평생의 노동에 지쳐 주저앉은, 소 같은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들을 기억해낸 눈물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하루가 다르게 몸피가 작아져가는 아버지와 골다공증으로 등이 휘어진 어머니를 바로 그 스크린 안에서 만났기에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들의 뼈를 깎는 헌신으로 지금의 내가 있으면서도 그 수고는 어느 덧 먼 옛날 일이 되어버리고, 구부러진 어깨와 휘어진 손가락은 나와는 상관 없는 그분들만의 고통으로 여겨져 적당한 관심만으로 겨우 그 책임을 피하고 있으니 나 같은 자식은 정말 어디서 구제받을 수 있을까.
 
영화는 웃음과 눈물을 머금게 하고, 요란하지 않게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 푹 빠지게 하는 힘을 지녔다. 또한 이 땅의 부모님들이 어떻게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 길러냈는지 보여주는 자연스런 교과서이기에, 극장을 나서며 아이들 데리고 다시 한 번 보러 오리라 결심하는 일 또한 참으로 자연스러웠다. 
 
끝까지 소의 턱에 매달려 있던 워낭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영화 <워낭소리 Old Partner, 한국 2008>(감독 이충렬 / 출연 최원균, 이삼순, 소)

2009.01.10 12:01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영화 <워낭소리 Old Partner, 한국 2008>(감독 이충렬 / 출연 최원균, 이삼순, 소)
워낭소리 다큐멘터리 이충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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