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 대결의 승자는 아시아의 작은 거인이었다.

7일(한국시각)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호텔 특설링에서 열린 세계복싱평의회(WBC) 웰터급 논타이틀전(12R) 오스카 델라 호야와 매니 파퀴아오의 대결은 예상을 뒤엎고 파퀴아오가 8회 TKO승을 거두며 복싱 레전드의 반열에 올랐다.

파퀴아오는 1998년 WBC 플라이급(50.8kg)으로 시작한 복서로서는 최초로 수퍼밴텀급, 수퍼페더급, 라이트급 등 4체급을 석권한 복서에서 이제는 웰터급(66.68kg)에서까지 세계타이틀 6체급 석권의 '골든보이' 호야마저 넘어섰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과 도박사들은 경기 전 호야의 우세를 점치는 분위기였다. 168cm인 파퀴아오보다 무려 11cm 나 큰 호야의 신체조건과 오히려 체중을 라이트급에서 5.65kg를 증량해야 했던 파퀴아오가 그의 장점인 스피드를 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었다.

 호야의 잽은 번번히 허공을 갈랐다

호야의 잽은 번번히 허공을 갈랐다 ⓒ www.hboboxing.com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경기 내용 또한 길고 지루한 승부를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왼손잡이임에도 불구하고 정면대결을 즐겨 하는 파퀴아오는 이번 대결에서도 경기 시작부터 맞불을 놓았다.

 팔은 한참 짧지만 먼저 때리는 파퀴아오

팔은 한참 짧지만 먼저 때리는 파퀴아오 ⓒ www.hboboxing.com


파퀴아오는 10cm 이상 작은 키와 팔 길이에도 불구하고 한 박자 더 빠른 선제 잽과 스트레이트로 호야의 안면을 공략했다. 경쾌한 스텝으로 들락날락거리며 콕콕 치르는 파퀴아오의 예리한 주먹은 호야의 안면을 3회부터 벌겋게 부어 오르게 만들었다.

경기 해설을 하던 유명우씨는 '기분 잡치는 매'라고 표현했고, 필자와 함께 중계를 보던 홍수환씨는 '키가 작아도 한 발 더 들어가서 찌르는 잽이 있으면 오히려 더 치명적이다. 세계를 제패한 로마의 칼은 짧았다'라고 표현했다.

 호야를 초토화 시키는 파퀴아오

호야를 초토화 시키는 파퀴아오 ⓒ www.hboboxing.com


현란한 발 놀림으로 들락날락 거리며 더 빨리 더 먼저 공격을 했고, 접근전에서도 유연한 상체 움직임으로 상대의 공격을 흘려 보내고 반격하는 파퀴아오의 움직임은 작두 탄 무당처럼 신들린 듯 보였다. 7라운드에는 무려 45대의 유효타를 적중시켰다. 호야의 안면이 이토록 부어 오른 경기가 없었다. 그것도 체중이 한참 적은 선수에게 맞은 충격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호야가 이렇게 절절 매는 모습을 보일줄은 아무도 몰랐다

호야가 이렇게 절절 매는 모습을 보일줄은 아무도 몰랐다 ⓒ www.hboboxing.com


호야는 결국 8라운드 종료 후 부어 오른 얼굴에 발랐던 바세린 크림을 깨끗이 닦아내면서 경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경기 중단을 요청했던 베리스타인 트레이너는 "호야의 위대함이 더 이상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경기를 중단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컨디션은 좋았지만 파퀴아오의 왼손잡이 스타일을 감당해낼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호야 또한 "파퀴아오는 위대한 파이터다. 나는 공격적으로 나섰지만 파퀴아오는 시종일관 발끝으로 뛰어 다니면서 내가 들어오는걸 받아치도록 한 것이 패인이다. 그를 제어할 힘이 없었다"라고 패배를 인정했다.

 경기를 포기하고 망연자실해있는 호야

경기를 포기하고 망연자실해있는 호야 ⓒ www.hboboxing.com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 '골든보이'라는 닉네임으로 화려하게 프로에 데뷔하더니, '신이 빚은 복서' 훌리오 차베스마저 제압하면서 슈퍼페더급(58.969kg)부터 미들급(72.57kg)까지 6체급을 석권해 모하메드 알리, 슈거레이 레너드, 마이크 타이슨 등 복싱 레전드의 계보를 이어받은 오스카 델라 호야. 하지만 결국 그의 화려했던 시대는 이렇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반면, 파퀴아오는 "경기 시작과 함께 이길 수 있다고 느꼈다. 작전대로 경기를 풀어갔고, 무엇보다도 호야의 강한 왼손 잽을 방어할 수가 있었던 게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이 위대한 승리를 나 자신은 물론 조국 필리핀에게 바친다"라고 말했다. 그의 통산 전적은 48승 3패 2무 35KO승이 됐다. 아시아의 자랑 파퀴아오의 승리에 찬사를 보내며 78년생 파퀴아오가 앞으로 얼마나 멋진 활약을 펼칠지 기대된다.

 아시아의 자랑 파퀴아오

아시아의 자랑 파퀴아오 ⓒ www.hbobox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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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선수협의회 제1회 명예기자 가나안농군학교 전임강사 <저서>면접잔혹사(2012), 아프니까 격투기다(2012),사이버공간에서만난아버지(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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