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A계를 양분했던 프라이드와 UFC의 '쌍강구도'가 프라이드의 몰락과 함께 일방적인 UFC의 '독주체제'로 재개편된 지 한참이 지났다. 더불어 여러 신생 단체들의 등장과 함께 세계 종합격투시장의 흐름은 일약 서구 철장단체 쪽으로 완전히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많은 팬들은 여전히 '프라이드의 부활'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여기에는 먼저 친숙하게 다가온 단체라는 점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우리와 같은 동양인이 많이 뛰고 더불어 비슷한 정서를 공유할 수 있었던 무대라는 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다행히 드림(DREAM), 센고쿠(SENGOKU, 戰極) 등이 프라이드의 후예를 자처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은 게 사실이다.

엄청난 근육질로 중무장한 서구 파이터들의 힘 대결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강호의 무사나 산과 들판을 누비는 무도인의 이미지도 분명 격투무대에서 꿈꿨던 이상향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요소가 사라져간다는 것은 분명 상당수 팬들에게 깊은 아쉬움을 주는 사항이 아닐 수 없는데 아직도 많은 이들은 그러한 모습들을 다시 볼 수 있기를 원하고 있다. 이른바 '동양적인 정서'로 귀결되는 이러한 사항들은 단순한 격투의 승패와는 또 다르게 팬들의 마음을 자극했고 때문에 아직도 잊지 않고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단 이런 것들을 같은 동양인 파이터들에게서만 찾으려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동양선수들이 머리를 염색하고 주짓수와 레슬링 스타일에 심취하듯이 서양파이터들 또한 동양권의 문화를 동경하고 그 스타일을 흡수하는 케이스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성향이 강한 선수 중에서는 외모만 서양인일 뿐 영락없이 동양파이터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팬들 입장에서는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에 특히 그 성향이 강한 유명 파이터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른바 '푸른 눈의 무사'로 불리우는 그들이 내뿜는 호감 어린 '정서'속으로 같이 빠져보자.

고 앤디 훅(사진 왼쪽)과 어네스트 후스트  앤디 훅이 젊은 나이에 사망하지 않았다면 어네스트 후스트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가 됐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도 적지않다.

▲ 고 앤디 훅(사진 왼쪽)과 어네스트 후스트 앤디 훅이 젊은 나이에 사망하지 않았다면 어네스트 후스트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가 됐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도 적지않다. ⓒ 격투용품 수집가 아이다호(박성수)


'파란만장한 극복의 인생' 고 앤디 훅

'동양의 정서'를 가진 서양파이터를 꼽을 때 절대 빠져서는 안될 인물중 한명이 바로 고 앤디 훅이다. 스위스가 낳은 최고 수준의 가라데 파이터인 앤디훅은 파이팅 스타일은 물론 살아가던 방식까지도 한명의 고독한 무사를 연상케 했던지라 K-1의 본국인 일본에서는 그를 자국선수 이상으로 사랑하고 아껴줬었다.

'푸른 눈의 사무라이'라는 일본인 입장에서 불러줄 수 있는 최고의 호칭이 따라다녔고 앤디 훅 역시 거기에 부응하듯 멋진 모습으로 팬들에게 항상 자신을 어필했다.

이제껏 K-1 무대에서 명성을 날렸던 선수들 중 '전설'이라는 두 글자에 가장 근접했던 파이터로도 꼽히고있는 그는 세상을 떠난지 10여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팬들의 눈시울을 적실 수 있는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익힌 극진가라데를 바탕으로 링에 입장할 때도 항상 도복을 걸쳐 입었고 승리 후 펼쳐 보인 자연스러운 가라데식 세레모니는 그가 서양인이라는 게 더 어색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푸른 눈의 사무라이'로 불렸던 것에는 이런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는 점 외에 고난을 이겨내고 정상에 서게된 그만의 스토리가 팬들에게 너무도 깊숙이 공감을 얻어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모 밑에서 성장하는 등 불운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앤디 훅은 10대 초반에 극진가라데를 접한 후 그 강렬한 매력에 빠져 본격적인 무도인으로서의 수련을 시작하게 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가라데 선수로서의 생활을 접고 본격적인 K-1 파이터로의 도전에 나섰던 그이지만 주변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했다. 인기나 캐릭터 등 상품성적인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타고난 신체조건이 헤비급에서 활약하기에 부적합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 우려를 증명하듯 초창기 앤디 훅은 기본적인 체격은 물론 복싱테크닉 등 여러가지 부분에서 애를 먹으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앤디 훅은 꾸준하고 성실한 자세로 하나하나 자신의 약점을 되짚어가며 보강해나가기 시작했고, 몇 년 후 대망의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하는 등 최고의 레전드로서 확고부동한 명성을 만들어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파이터로서 열악한 체격 등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은 적었지만 후천적인 노력과 넘치는 열정을 바탕으로 많은 것을 얻어내고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있는 그의 삶은, 말 그대로 '극복의 인생' 그 자체였다.

존 웨인 파 그는 외모만 서양인일 뿐 스타일, 열정, 파이팅 등 많은 면에서 정말 태국인처럼 행동하고 실천한 보기 드문 파이터였다

▲ 존 웨인 파 그는 외모만 서양인일 뿐 스타일, 열정, 파이팅 등 많은 면에서 정말 태국인처럼 행동하고 실천한 보기 드문 파이터였다 ⓒ XTM 화면캡쳐


'정신까지 낙무아이' 존 웨인 파(32·호주)

경량급 입식타격계의 전설 중 한명인 존 웨인 파. '일본에 앤디 훅이 있었다면 태국에는 존 웨인 파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태국 내에서 그의 인지도는 굉장하다. 그래서 붙은 별명도 '푸른 눈의 낙무아이'로, 앤디 훅이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태국인 입장에서 외국인 파이터에게 불러줄 수 있는 최고의 호칭이 따라붙은 것이다.

존이 이처럼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는 외모만 서양인일 뿐 스타일, 열정, 파이팅 등 많은 면에서 정말 태국인처럼 행동하고 실천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태국에서 성장한 인물은 아니기 때문에 본토사람과는 상당 부분에서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경기 전후 그리고 링 안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관중들에게 이질감을 별로 느끼지 못하게 해주었다.

태국에서 경기를 가지는 상당수 외국인 파이터들이 본래 가지고있던 복싱실력 등에 무에타이를 접합한 이른바 '퓨전식 스타일'을 자주 구사하는데 비해 존은 그야말로 지극히 정통적인 무에타이를 고수했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태국으로 '무사수행'을 떠났던 존은 그 재능을 인정받아 전설적인 무에타이 대가인 센디앙노이에게 4년간 수련을 받는다. 더불어 그는 태국에서 수많은 경기를 가지게되고 룸피니 무대에서 좋은 성적까지 거두며 일약 '태풍의 눈'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그 결과 1997년 태국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2001년에는 15만 관중 앞에서 벌어진 국왕생일기념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게된다.

그 이후 존은 태국의 S-1, 일본의 K-1 맥스, 유럽의 수퍼리그 등 다양한 무대를 오가며 경기를 가졌는데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높은 승률도 승률이지만 하루에 세 경기도 너끈하게 치르는 등 그야말로 '살인적인 레이스'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서구선수들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때문에 그런 그의 행보에 태국 팬들은 자국 파이터를 대하듯 무한한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 물론 존 역시도 왼쪽가슴에 태국식 문신을 새겨 넣었을 정도로 '제2의 고국'에 대한 사랑이 매우 깊은 것으로 유명하다.

UFC 웰터급 챔피언 조르주 생 피에르 어린 시절부터 가라데를 배워서인지 그는 대부분의 서양철장 파이터들과는 다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 UFC 웰터급 챔피언 조르주 생 피에르 어린 시절부터 가라데를 배워서인지 그는 대부분의 서양철장 파이터들과는 다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 UFC


'겸손하지만 강한' 조르주 생 피에르(27·캐나다)

UFC 웰터급의 '퍼펙트 챔피언' 조르주 생 피에르. 그는 현재 죽음의 체급으로 불리는 웰터급에서도 '대항마'가 없는 완벽한 1인자로 꼽히고 있다. 한때의 최강자인 전 챔피언 맷 휴즈(35·미국)는 그로 인해 자신의 시대를 마감할 수밖에 없었으며 조쉬 코스첵(31·미국)-존 피치(30·미국) 등 언제든지 챔피언에 등극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강자들도 생 피에르 앞에서는 그저 무기력하기만 했다.

생 피에르는 타격이면 타격, 레슬링이면 레슬링, 서브미션이면 서브미션 등 그야말로 완벽한 밸런스를 자랑하고 있다. 그저 단순하게 골고루 잘하는 수준이 아닌 동체급 최강의 레슬러들을 상대로 자신이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고 굴리고 다닐 정도이다. 그야말로 타 선수들에게 도저히 답이 안나오는 '악몽'같은 선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듯 약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듯한 그이지만 의외의 부분에 빈틈을 가지고있었으니 다름 아닌 지나치게 겸손한 마인드와 다소 유약하게까지 보이는 승부근성이 바로 그것. 물론 어느 파이터가 '열정과 투쟁심을 갖추지 않았겠냐'마는 시합대진이 잡힌 날부터 서로간에 심한 신경전을 주저치 않으며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마치 상대를 잡아먹을 듯 광폭한 모습도 불사하는 여타의 서구선수들에 비하면 생 피에르는 그 정도가 약한 것이 사실이다.

어찌 보면 깊은 산 속에서 심신을 수양하고있는 도인의 풍모까지 느껴지는데 그 사실을 뒷받침하듯 생 피에르는 웬만해서는 상대를 도발하지 않으며 경기에서 승리한 후 끔찍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등 파이터 특유의 '살기(殺氣)'를 찾아보기 힘든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과 경기를 가질 상대의 말에 심하게 반박하지 않으며 자신감을 표현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자신을 높이고자 상대를 함부로 깎아 내리지 않는다. 서양 철장 단체에서는 보기 드문 스타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피에르가 '동양적인 정서'가 강한 파이터가 된 데에는 오래전에 익힌 극진 가라데의 영향이 컸다는 평가이다. 어린 시절 소심한 성격과 약한 체력으로 인해 주변의 놀림과 괴롭힘을 받던 피에르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6살 때부터 극진 가라데를 연마하기 시작했다. 원래 가라데라는 무술자체가 기술 이전에 심신수양까지 겸하고있기 때문에 피에르의 인격형성은 이때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우연히 놀러간 친구 집에서 UFC에서 우승하는 호이스 그레이시를 모습을 보고 격투가의 꿈을 가지게된 그는 이후 탄탄한 가라데 베이스의 바탕에 주짓수, 레슬링, 복싱을 추가하게 되었고 거듭 성장을 거듭한바 현재의 극강파이터로 우뚝 서게 되었다.

피에르는 가장 먼저 접했던 가라데라는 무술을 통해 동양적인 정신자세와 사고방식을 배우게되었고 이러한 요소들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은 채 그를 '옥타곤의 무도인'으로서 살아가게 하고 있다.

미르코 크로캅 그의 행보는 마치 무협 소설 속 ‘낭인(浪人)’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의견도 많다.

▲ 미르코 크로캅 그의 행보는 마치 무협 소설 속 ‘낭인(浪人)’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의견도 많다. ⓒ 프라이드


'끊임없이 도전하는 낭인(浪人)' 미르코 크로캅(34·크로아티아)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인기파이터 미르코 크로캅. '그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챔피언 벨트뿐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명성과 인지도 등 많은 면에서 웬만한 챔피언들을 훌쩍 뛰어넘고 있는 MMA 역사상 보기 드문 유형의 슈퍼스타다. 한창 그가 좋은 성적을 올리던 시절에는 '얼음황제' 에밀리아넨코 표도르(32·러시아)조차도 인기에서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농구, 복싱, 야구 등 타 스포츠 같은 경우 아무리 해당 선수의 인기가 좋아도 마지막 수순의 영웅은 우승을 가져간 팀이나 선수가 차지하는게 선례인데, 종합 격투기 쪽 만큼은 예외적으로 크로캅이라는 거대한 흥행카드가 철벽같은 존재감을 바탕으로 '벨트 없는 챔피언'의 횡포를 톡톡히 뽐낸 것이 사실이다.

그는 노쇠화로 인해 성적이 완전히 곤두박질친 현재에서도 팬들의 관심선상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않고 있는데, 열성 팬들에게는 변함 없는 성원과 사랑의 대상으로, 안티팬들에게는 질시와 비난의 대상으로 여전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서양철장단체의 매니아들은 그에 대해 끊임없는 인신공격과 악플을 쏟아내고 있는데 여기에는 아무리 밑바닥까지 떨어져도 애정을 받고있는 크로캅의 존재에 대한 심한 '분노'가 바탕이 되고있다는 분석도 많다. 진정으로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저 '무관심'이 최고의 반응일 수 있겠으나 열성 팬들 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대한 관심을 끊이지 않고 쏟아내기 때문이다.

승리를 하든 패배를 하든 말하고 움직이는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화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 남자의 스타일을 살펴보노라면 의외로 동양적인 부분이 무척 많이 느껴진다. 하지만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그의 이런 동양적 체취는 링 밖에서가 아닌 링 안에서 뛸 때만이 제대로 짙은 향을 풍겨낸다는 점이다.

크로캅의 파이팅 스타일은 보통의 근육질 서구선수들과는 많은 면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종합무대에서 뛰는 대다수의 파이터들은 완벽한 찬스가 아니면 함부로 발차기를 남발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는 복서가 잽을 날리듯 로우킥과 미들킥을 수시로 분출시키며 주무기로 구사했다.

여기에 전매특허인 하이킥은 '불꽃' '음속'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을 정도로 그를 대표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는데 헤비급에 어울리지 않게 조금의 틈만 보이면 번개처럼 날아가 '쾅!'하고 폭발해버리는 광경은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파워를 앞세운 타격이 아닌 타이밍과 순간적인 폭발력으로 상대를 부숴 버리는 것으로, 마치 일합에 생사의 모든 것을 거는 검객의 발도(拔刀)를 보는 듯 했다는 것이 팬들의 반응이다.

어떤 면에서는 한방 한방 힘을 임팩트 시키는 이런 스타일이 단점으로 작용할 때도 많았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이만큼 시원한 경기를 펼치는 선수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게 사실이다. 또한 그는 예상외로 충격적인 패배를 종종 기록했는데 이후 강행군을 통해 다시금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흡사 무협 소설 속 '낭인(浪人)'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의견도 많다.

최고의 위치는 아니지만 항상 시련 속에서도 다시금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남자 크로캅, 그런 그의 모습에서 많은 팬들은 '동양의 정서'를 진하게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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