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의 대들보는 안 보이고 남의 티끌만 보인다는 속담이 있지요. 현대사를 돌아보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며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하게 나눠지지 않아 서로 남 탓하기 쉬워요. 유럽에서 박해받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세우면서 팔레스타인을 핍박하고 일본의 침략에 희생당한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가해자로 돌변하듯이. 

과거사 반성은 예외가 없네요. 자유 평등 박애를 주창했던 프랑스도 숨기고 싶은 과거들이 까발려지네요. 영화 <히든>(2005 미카엘 하케네 감독)은 프랑스의 추악한 위선을 들춰내는 스릴러 드라마예요. 

조르주는(다니엘 오떼유 분)는 TV 프로그램을 진행도 하는 프랑스 지식인이지요. 아내 안느(줄리엣 비노쉬 분)와 여유 있게 사는 일상에 느닷없이 자신들을 감시하는 테이프와 불쾌한 그림엽서가 오기 시작하죠.

경찰에 신고하여도 뾰족한 대책이 없자 그는 자신에게 원한이 있을 만한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하죠. 마침내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 떠오르지요. 어린 시절 같이 살았던 알제리인 마지드(모리스 베니초우 분), 그가 40여년 만에 생각이 나며 조르주의 안락했던 일상은 무너지기 시작하지요.

프랑스와 알제리, 씻을 수 없는 식민지 관계

"나 지식인이야." 주인공 조르주는 프랑스 엘리트지요. 그러나 역사 의식이 없고 잘못을 모르는 일그러진 지식인이지요. 뒤에 꽂힌 수많은 책들은 그에게 무슨 의미일까요.

▲ "나 지식인이야." 주인공 조르주는 프랑스 엘리트지요. 그러나 역사 의식이 없고 잘못을 모르는 일그러진 지식인이지요. 뒤에 꽂힌 수많은 책들은 그에게 무슨 의미일까요. ⓒ 스폰지


영화에서도 설명이 나오지만 프랑스와 알제리의 역사를 짚고 넘어가야지요. 프랑스는 알제리를 132년이나 식민 지배를 했어요. 2차 대전 승전국인 프랑스는 독일, 일본, 이탈리아와 다르게 식민지들을 독립시켜주지 않았지요. 베트남이 투쟁하여 쫓겨날 때까지 포기를 못한 것처럼 제국주의 국가로서 식민지 착취의 단맛을 놓지 못했지요.

알제리 사람들도 1954년부터 독립 전쟁을 시작하지요. 1961년 10월에는 3만 명이 넘는 알제리인이 파리에서 시위를 하던 도중 불상사가 일어나죠. 프랑스인들의 탄압에 많은 알제리인들이 세느강에 빠져 죽거나 실종되어요. 그 시위에서 마지드는 부모를 잃고 조르주 부모는 양심상 하인의 아들, 마지드를 키우려 하지요.

그러나 조르주가 거짓말을 하고 험담을 하여 마지드는 쫓겨나게 되지요. 죄의식을 억누르고 살았던 조르주는 마지드가 다시 나타나자 불안에 시달리죠. 마지드는 40년 만에  만난 조르주에게 반가움을 표시하지만 조르주는 "무엇을 원하느냐"면서 고함과 폭언을 하지요.

상황논리로 잘못을 합리화하는 나약한 지식인

알제리인, 마지드 척 보기에도 힘들게 살았을 마지드, 그를 보며 조르주는 40년 만에 만나서 윽박지르지요. 한국에도 수많은 '마지드'가 있지요. 우리는 그들을 만나 어떻게 하고 있나요.

▲ 알제리인, 마지드 척 보기에도 힘들게 살았을 마지드, 그를 보며 조르주는 40년 만에 만나서 윽박지르지요. 한국에도 수많은 '마지드'가 있지요. 우리는 그들을 만나 어떻게 하고 있나요. ⓒ 스폰지


자신의 잘못을 애써 상황논리로 합리화 하는 조르주, 그는 협박하지 말라며 마지드를 협박하지요. 마치 피해자들 앞에서 더 당당한 가해자들처럼 조르주는 마지드를 몰아붙이며 난폭하게 행동하지요. 복수를 할까봐 두렵기 때문이죠.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면 되는 것을.

영화에서 재미있는 것은 조르주에게 테이프를 보내고 감시한 범인이 누구인지 모호하다는 거예요. 마지드는 조르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결백을 밝히려고 하지요. 여기에 마지드 아들이 나타나고 조르주의 아들이 연락두절이 되면서 영화는 파국으로 넘어가지요.

이 영화는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낌새를 풍겨요. 어느 중산층 집 앞 풍경이 3~4분 동안 나오지요. 정지 화면 같이 변화가 없는 평화로운 화면은 지루한 나머지 상당히 불쾌감까지 느껴져요. '아니, 이게 뭐야'라는 말이 입 밖으로 슬금슬금 기어 나올 때쯤 영상이 감기면서 비디오로 녹화한 장면이라는 것을 알려주죠.  

어떻게 해야 상처를 씻을 수 있는지

"사과하세요." 마지드의 아들, 그는 진실을 바랄 뿐이지요. 역사는 윗 세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후손들의 문제지요. 무엇을 알려주고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 "사과하세요." 마지드의 아들, 그는 진실을 바랄 뿐이지요. 역사는 윗 세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후손들의 문제지요. 무엇을 알려주고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 스폰지


당연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감독은 뒤집어 보라고 말하죠. 보고 있는 평화로운 역사가 조작된 것일 수도 있다고 넌지시 일러주네요. 조르주의 시점에서 진행되기에 처음에는 그의 두려움에 공감이 가고 범인이 누굴까 궁금하게 되지요. 영화가 진행될수록 과거를 외면하려 하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조르주의 논리에 그녀의 아내처럼 싫증이 나면서 역겹기 시작하지요.

사람은 과거로부터 도망갈 수 없지요. 거짓으로 아무리 미화를 해도 진실을 가릴 수 없지요. 겉으로는 TV프로그램도 진행하며 아는 것도 많지만 조르주는 위선자이고 나약한 지식인이지요.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살았던 조르주와 다르게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마지드는 힘들게 평생을 살았지요. 잘 먹고 잘 살았던 조르주가 "왜 이제 와서 이러느냐"고 분노를 하면 관객들은 그에게 분노를 하게 되지요.

영화는 한 개인 과거의 잘못으로 사건이 일어나지만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지 지배, 그 씻을 수 없는 원죄를 자꾸 들추어내지요. 무엇이 진실이며 어떻게 해야 상처를 씻을 수 있는지 묻는 이 영화의 질문은 한국에서도 여전히 진행중이지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생길 정도로 한국의 과거는 얼룩져있지요. 과거를 진정하게 반성해야 하는 이유는 진실한 내일을 위해서지요. 어제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지요. 잘못은 짚고 넘어가고 잘한 일은 찾아내는 일이 진정한 과거사 작업이겠죠.

최근에 역사교과서를 바꾸면서까지 자신들이 믿고 싶은 생각들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지요. 역사학자들이 반대하는데도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면서까지 어떤 이들은 '영광의 역사'를 말하네요. 좋은 점을 알려주어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도 좋지만 과거를 알고 고민하면서 앞날을 내다보는 일이 역사교육이겠지요. 억울한 누명들과 원통한 죽음들을 기억하여야 반복되지 않지요.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 이를 갈고 있지요. 36년의 식민지 지배를 하고 강제징용, 정신대까지 만행을 저질렀지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위정자들은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하지 못하지요. 아직까지 한국 안의 과거도 말끔하게 풀어지지 않았고 제 발 저리는 사람들이 일본에게 반성하라고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씨네21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히든 프랑스 과거사위원회 역사교과서 정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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