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단 두 팀만 남았다. "안양 에이스와 블랙 호크 선수들, 3번 코트로 출전하라"는 안내 방송이 자못 비장하게 들린다. 마침 운동장에 드리워지기 시작한 석양 그림자도 마지막 승부와 잘 어울린다. '햇볕 진영'에서 "아자, 아자"가 터져 나오자, 곧바로 '그늘 진영'은 "파이팅"으로 맞받는다.

11일 서울 망원동 유수지 체육공원에서 올해로 여섯 번째 열린 '오마이뉴스 전국 직장인 족구대회'. 드디어 결승전이다.

선취점은 안양 에이스. "서브, 좋아. 기가 막혀"란 말이 튀어나오기 무섭게, 허공에 '붕', 360도 몸을 감아버리는 블랙호크. "나이스 킬러!"라는 외침과 함께 곧바로 동점. 결승전답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지금까지 다섯 경기를 돌파한 두 팀, 수비수의 헤딩 횟수만 백 번도 훨씬 넘을 것이다. 농담 같지 않은 "머리 아파, 머리 아파"란 푸념을 맞받는 "그러면서 막을 건 다 막네"란 화답. 진담임이 분명하다.

"공격수 못지 않게 수비수 체력도 바닥일 거예요. 킬러요? 족구인들끼리 공격수를 부르는 말이에요. 방금 이중사님 기술은 세팍타크로에서 도입했는데, '넘어 차기'라고도 하죠. 보통 전국 규모 족구대회는 최강부, 일반 1부 이런 식으로 나뉘는데요. 1부에 속한 공격수 중 절반 정도는 넘어 차기를 구사해요. 그런데 상대팀이 왼발 킬러라서 수비가 까다로울 거예요. 왼쪽 킬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1987·1988·1989년생, '젊은 피'들의 족구 사랑

 이평환 중사의 '넘어차기'

이평환 중사의 '넘어차기' ⓒ 이정환

급하게 '객원 해설위원'을 다시 모셨다. 육군 항공대 족구팀 '블랙 호크' 소속 박형준 하사. 대회 전날, 참가 선수 명단을 통해 그의 이름에, 아니 그의 나이에 주목했다. 1987년생, 스물한 살. 족구는 군대 갖다 온 아저씨들이나 하는 고리타분한 운동이란 '선입견'을 '확 깨는' 나이였다.

물론 드물기는 했다. 하지만 출전 선수 291명 가운데에는 박 하사 또래를 여러 명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 인천 선인족구단 소속 손지만씨는 1988년생이었고, 명성닥터쿨의 제성모씨는 그보다 한 살 어린 1989년생이었다. 연년생인 이들 '펄펄 끓는 젊은 피'를 그리 넓지 않은 경기장에 끌어들인 족구의 '무엇'이 궁금해졌다.

경기 사이 막간을 이용해 한참 바쁜 그들을 주저 앉혔다. 박형준 '맏형'은 대학을 졸업하고 단기복무 부사관(하사)으로 복무 중, '막내'인 제성모(한림대)씨, '둘째' 손지만(전남과학대)씨는 모두 대학생이었다.

아저씨들에게 또 지기 싫은 '오기'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비롯, 주말을 이용해 각종 대회에 출전하는 한편 평일에도 저녁 시간을 이용해 연습한다고 했다. 모두 족구에 열심인 만큼, 그들의 족구 사랑 또한 극진했다.

족구는 '아저씨들의, 아저씨들에 의한, 아저씨들을 위한' 운동이 절대 아니라고 한결 같이 강조했다. 섬세한 볼 터치나 조직력의 세밀함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축구보다 더 어려운 것이 족구"라는 말도 나왔다. "하루 빨리 전국체전 정식종목이 됐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으는 그들의 족구 사랑은 여느 예비역 못지 않았다.

축구 잘하는 내가 아저씨들 족구에 지다니...

- 어떻게 족구를 시작하게 됐나.

박형준 "고등학교 다니면서 처음 시작하게 됐는데요. 원래는 축구 동호회에 있었어요. 그러다 하루는 아저씨들과 내기로 족구 한 판을 하게 됐는데, 공도 좀 차는 편이고 하니까 내심 자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냥 깨지더라구요. 그 이후부터 주말마다 아저씨들 따라다니면서 함께 족구를 했고, 대학 가서는 족구 동아리 회장도 맡게 됐죠."

제성모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하루는 심심해서 친구 따라 친구 아버지가 족구하는 걸 구경했는데요. 원래 축구를 즐기는 터라, 축구와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또 그래서 아저씨들 정도는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형편없이 지고 말았죠. 승부욕이 발동하더라고요.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아저씨들 모임에 자주 참석했죠.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오게 됐죠."

손지만 "원래 세팍타크로 선수였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족구로 전향했죠. 동호회도 얼마 없고, 또 계속 세팍타크로를 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았어요. 족구는 동호회도 많고, 취미 삼아 부담 없이 즐기기도 좋잖아요. 무엇보다 그냥 재미있더라구요."

 사진 왼쪽부터 손지만, 제성모 학생, 그리고 '맏형' 박형준 하사

사진 왼쪽부터 손지만, 제성모 학생, 그리고 '맏형' 박형준 하사 ⓒ 이정환



- 족구의 매력을 가장 크게 느낄 때는?

손지만 "공격수가 멋지게 점프해서 공격하고, 또 그걸 수비수가 멋지게 막는 동영상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데요. 그런 식으로 랠리가 이어지는 재미가 가장 큰 것 같아요."

박형준 "'킬'이 아무리 잘 때릴 수 있어도 일단 리시브부터 잘 올라가야 하는 거잖아요. 족구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킬'이 가장 중요한 것 같지만, 사실 4명 모두 중요해요. 한 명 한 명, 모두 잘하지 않으면 절대 이길 수 없죠. 모든 구기 종목과 마찬가지로 팀 플레이가 잘 맞아떨어질 때 희열을 느낍니다."

제성모 "보통 공격수만 화려하게 보이지만, 포지션마다 다 매력이 있는데요. 특히 상대 공격수가 기막히게 잘 찬 공을 받아낼 때, 어려운 공을 공격수에게 최대한 안전하게 넘겨줄 때, 그래서 팀에 도움이 됐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기뻐요."

"절대 아저씨들 운동 아닌데..." "족구가 축구보다 더 어려워"

 제성모 선수의 '서브'

제성모 선수의 '서브' ⓒ 이정환

- 군대 갖다 온 아저씨들이 주로 하는 운동이란 인식에 대해서.

손지만 "그런 선입관이 있긴 하죠. 그런데 대회 보면 여성부도 있고, 대학교에도 족구과가 생길 정도인데요? 족구를 즐기는 젊은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

박형준 "젊은이들이 별로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실제 대회에 참가해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아요. 충청 지역 대회에 참가하는 팀이 한 60개 정도 되는데요. 저 또래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족구' 그러면 아저씨 스타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공도 세게 날아오고 얼마나 박진감 넘치는데요. 직접 (족구를)해 보면 아저씨들만의 운동이 아니란 걸 알게 돼요."

제성모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아저씨들 스포츠 정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해요. 축구랑 비교해도 박진감 전혀 떨어지지 않아요. 더 세밀한 플레이가 요구되고, 팀플레이 중요성도 더 크고."

- 축구와 비교한다면?

손지만 "축구는 뛰어다니기만 하면 되잖아요(웃음). 족구가 축구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제성모 "저도 동의해요. 축구보다 더 섬세함을 요구해요. 조직력도 그렇구요. 공도 축구공보다 작고, 또 코트 안에서 플레이가 이뤄지다 보니까 더 세밀하게 해야 하거든요."

박형준 "그래서 볼 리프팅 능력도 축구보다 더 요구되는 측면이 있어요. 족구에서는 기본기 중 기본기죠. 공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가 아주 중요하니까요. 족구가 더 기술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제성모 "공격수가 공을 어떻게 차느냐에 따라 받는 방법이 다 달라요."

박형준 "공격수마다 스타일이나 공격 방향이 그때그때 다 다르거든요. 예를 들어 공격수가 꺾어 차기 할 것 같으면, 거기에 맞춰 자리를 잡아야 하잖아요. 이런 싸움이 족구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

"빨리 전국체전 정식종목으로" "나라 잘 지키면서 족구 사랑"

 '맏형' 박형준 하사

'맏형' 박형준 하사 ⓒ 이정환

- 족구 관련 희망사항은?

손지만 "족구가 전국체전 전시종목인데요. 하루빨리 정식종목으로 됐으면 좋겠어요. 그럼 족구의 다양한 기술을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고, 난이도 높은 기술을 보면서 멋있다는 생각에 따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더 많아지지 않겠어요?"

제성모 "넓은 공간도 필요하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잖아요. 일단 지금보다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구요. 또 관심도 많이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박형준 "대회 와서 보고 그러면 더 많은 홍보가 이뤄질 수 있잖아요. TV 중계도 활성화될 수 있구요. 일단 전국체전 정식종목부터 돼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더 많은 젊은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끝으로 지금 떠오르는 꿈 하나씩.

손지만 "일단 저희 팀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족구계도 잘 화합해서 더 발전하길 바랍니다. 마음 내킬 때까지 족구를 하고 싶어요."

제성모 "족구 최강부 들어가는 것이 꿈입니다."

박형준 "무엇보다 군인이니까 나라를 잘 지켜야죠.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면서 족구로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나중에 전역을 하더라도 계속 족구를 하고 싶어요. 축구보다 많은 사람이나 공간도 필요하지 않고, 네트 하나에 공 그리고 네 명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운동이니까요."

MVP 안양에이스 윤영수 선수 "11년째 족구, 정말 기쁜 오늘"
세트스코어 2:1 접전 많아… "작년 대회보다 수준 높다"

 대회 우승을 차지한 안양에이스 족구단. 오른쪽 끝에 앉아 있는 사람이 대회 MVP 윤영수 선수

대회 우승을 차지한 안양에이스 족구단. 오른쪽 끝에 앉아 있는 사람이 대회 MVP 윤영수 선수 ⓒ 이정환


오마이뉴스가 주최하고 국민생활체육전국족구연합회와 마포구생활체육협의회가 후원한 제6회 오마이뉴스 전국 직장인 족구대회가 11일 서울 마포구 망원 유수지에서 선수 및 관계자 5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총 48개팀이 출전하여 치열한 경합을 벌인 이날 대회 결승전에서 '안양에이스' 족구단이 육군 항공대 주축 '블랙호크'를 세트스코어 2-0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유춘규(46·남) 안양에이스 감독은 "진짜 기쁘다"면서 "경기 안양시에 사는 직장인들로 구성된 팀인데, 지난 1년여 동안 평일 저녁시간과 주말을 이용해 꾸준히 연습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팀의 공격을 이끌며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 안양에이스 소속 윤영수(35·직장인) 선수는 "동료들이 많이 도와줬고, 특히 토스 공이 아주 좋았던 덕분"이란 말로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올해로 11년째 족구를 하고 있다는 윤 선수는 '부인도 족구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그럴 리가 있겠느냐(웃음). 그래도 오늘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준우승을 차지한 '블랙호크'의 이성충(39·준위) 감독은 "상대팀이 너무 잘했다. 내년 대회에 꼭 출전하여 다시 우승에 도전하겠다"면서 "예선전부터 쉽지 않은 승부를 벌였고 준결승전에서 체력을 많이 소모해 정작 결승전에서 맥없이 진 것 같다"는 말로 아쉬움을 표시했다.

실제 이날 대회에서는 세트 스코어 2-1로 승부가 갈리는 접전이 자주 벌어졌으며, 출중한 기량을 갖춘 선수들도 작년보다 많이 출전해 동호회 수준을 뛰어넘는 멋진 경기를 보여줬다.

작년 대회에 이어 올해도 심판위원장을 맡은 김현석 인천광역시 족구연합회 심판 부회장(공인심판)은 "족구대회는 수준에 따라 최강부와 일반부로 크게 나뉘는데, 오늘 대회를 보니까 일반부 중상위 수준"이라며 "작년에 비해 지역별 출전 분포도 넓어져 전국 규모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대회로 보였다"고 평가했다.

다만 김 심판위원장은 "모든 경기 일정을 하루에 끝내야 하는 대회 특성상 조 1위만 본선에 진출하는 방식을 택한 것 같은데, 그보다는 15점 3세트 대신 21점 1세트로 경기를 치러 조 2위까지 본선에 나가도록 하는 등 대회 운영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으로 더욱 성장하는 대회가 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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