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해명과 난실 난실을 향한 무조건적 사랑에 빠져드는 해명에게 드리우는 그림자

▲ 사랑에 빠진 해명과 난실 난실을 향한 무조건적 사랑에 빠져드는 해명에게 드리우는 그림자 ⓒ CJ엔터테인먼트

무기력한 남편의 섬뜩한 복수극 <해피엔드>(1999)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정지우' 감독의 새작품 <모던보이>가 개봉됐습니다. <해피엔드>는 실직은행원 민기(최민식)가 불륜을 저지른 아내 보라(전도연)를 치밀한 각본하에 살해하는 내용을 그린 영화로 당시 평론가 뿐만 아니라  많은 관객들에게 탁월한 스토리 전개와 캐릭터의 묘사가 우수하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모던보이>는 단편영화를 거쳐 <해피엔드>를 통해 이름을  알렸던 정지우 감독이
<사랑니>(2005)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절치부심한 흔적이 역력한 작품입니다. <해피
엔드>를 만든 감독이란 점, 1930년대 경성을 재현했다는 점에서 <모던보이>는 개봉 이전부터 관객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아온 게 사실입니다.
 
현대인들에겐 모든 게 불안전했을 것으로 믿어지는 1937년 일제 강점기 '경성'은 역설적으로 영화적 서사가 만들어지는 공간으로선 전혀 손색없는 곳입니다.
 
불안한 미래와 치욕스런 현실, 수구와 진보가 부딪치던 곳, 조국과 내선일체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서구문명과 동양문명은 혼재합니다.
 
해방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끝을 알 수 없는 연옥과도 같은 경성의 삶. 하지만, 가진 자에게는 불안함 속에서도 풍요가 있고 낭만이 있습니다.
 
동경유학을 마친 조선총독부 1등서기관 이해명(박해일)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일제에 충성하며 충실하게 부를 쌓아온 아버지(신구)를 둔 해명은 운명의 여인 조난실(김혜수)을 만나기 전까지는 최신 패션을 주도하며 '낭만의 화신'을 자처합니다. 조국의 운명에 조금도 관심이 없는 해명에게 경성은 자신의 모든 꿈이 언제나 이뤄질 수 있는 낙원임에 분명합니다. 
 
소설과 낡은 활동사진 수준에 머물던 과거의 경성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기술적인 진보'는 영화 <모던 보이>를 통해 정지우 감독이 만들어낸 가장 큰 성과입니다.
 
주인공들의 만남과 갈등의 공간으로 사용된 경성역, 미쓰코시백화점, 명동성당, 경회루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숭례문 등 오랜시간 공들여 컴퓨터그래픽과 고증으로 재현된 당시 건물들의 모습과 패션은 <라듸오데이즈>(2008)에서 묘사된 경성의 모습에서 훨씬 진일보했습니다. 70년전 과거속 '경성'이 기술의 힘으로 눈앞의 현실이 됐다는 점은 영화가 관객에게 선사할 수 있는 큰 선물 중에 하나란 생각입니다.
 
주연배우들의 연기력 역시 손색이 없습니다. 철없는 사랑에 정신없이 빠져든 얼치기 지식
인 해명역을 맡은 박해일의 연기도 과거 자신이 보여준 모습과는 또 다른 신선함이 있습니다.  난이도 높은 재즈댄스를 소화해낸 난실역의 김혜수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게 사실이구요.

 

아쉬움, 원작이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충분히 보완되지 않은 듯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해명 갑작스런 해명의 변화를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해명 갑작스런 해명의 변화를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 CJ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기술적 진보에 전력투구하다 보니 <해피엔드>에서 감독이 선보였던 선명한 캐릭터의 부각과 비단을 짠듯 빈틈없던 서사구조가 여러군데 허술함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해명과 난실의 사랑과 치명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전개과정에서 관객들의 몰입이 자꾸 깨지는 이유는 뭘까요? 해명의 급작스런 마음의 변화, 1937년 경성이란 현실밖에 서 있는듯한 몽상적인 난실의 캐릭터, 해명과의 우정으로 괴로워하는 고등검사 신스케(김남길) 탓일까요?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에 대해선 이렇게 여러 의견들이 많겠지만 결국은 이지형 원
작의 소설 <망하거나 죽지않고 살수있겠니>가 각색을 거쳐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사라진
원작의 캐릭터와 스토리들이 두시간의 런닝타임 내에서 충분히 보완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 니다.
 
해명과 난실의 사랑같은 비극적인 사랑 하나쯤은 당시에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문제는 이 둘의 관계를 풀어나가 결말에 도달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마라톤 선수들이 42.195km를 한발한발 달려나가 결승선에 도달하듯이 차곡차곡 쌓아간 캐릭터들의 개성과 점층적 변화가 부족하기 때문에 두 배우의 헌신적인 연기에도 불구하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다소 뜬금없다는 인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감독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평단의 그런 지적에 대해서 내심 불만의 소리를 더하지만 결국 오랜 준비기간과 편집과정을 거쳤다 하더라도 결과물에서 보여지지 않고 표현되지 않는다면 캐릭터 구축과 서사의 실패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937년 혼돈의 경성과 위험한 그들의 사랑이야기에 푹 빠지기엔 기술적 진보에 더한 날선 캐릭터간의 공방과 변화의 부재가 아쉽습니다.

2008.10.08 14:59 ⓒ 2008 OhmyNews
모던 보이 정지우 한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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