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디악>은 1960년대 미국 '조디악 킬러'의 실화를 날것으로 재현했다. 데이빗 핀처가 '테크니션'으로서 새로운 경지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조디악>은 1960년대 미국 '조디악 킬러'의 실화를 날것으로 재현했다. 데이빗 핀처가 '테크니션'으로서 새로운 경지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 워너 브라더스

누구나 정점에 오르는 순간이 있다. 수학자가 최고의 수학적 능력을 보이는 때는 열다섯 살 즈음이며 마흔 살이 넘으면 끝났다고 보는 게 정설이란다.

그렇다면 영화감독도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을까. 데이빗 핀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파이트 클럽>(1999)은 신나는 영화지만 원작이 워낙 대단해 덩달아 영화도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핀처의 작품 중 <세븐>(1995)은 너무 좋았다. 다른 작품을 보이지 않게 할 정도로 엄청 좋았다. 대접에 머리를 처박고 핏줄이 툭툭 불거지도록 부풀어 오른 시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음울한 공기와 성경의 일곱 가지 죄악을 멋지게 뚜룩친 솜씨,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이 화면 밖 나를 압도하는 것이었다.

핀처의 영화 세계는 기본적으로 <세븐> 이후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려 왔다고 생각했다. 마치 패닉 룸으로 도피한 것처럼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행보를 보면서 핀처의 추락이 분명하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나는 <조디악>을 극장에서 보지 않았다. 어느 날 책을 주문하려다 디브이디를 싼 값에 팔길래 오랜만에 핀처 얼굴 좀 볼까 싶어 함께 주문했던 것이다.

밤늦게 기네스 맥주와 맛밤을 준비하고 디비디를 돌렸다. 영화가 끝나자 어느덧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멍청해진 내 앞으로 핀처가 다가와 정신 차리라고 일갈하며 따귀를 거하게 올려붙였다. 뺨이 얼얼했다. 가까스로 환상에서 돌아와 보니 나는 스르르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만 넋 놓고 보고 있더라. 떠듬떠듬 "잘못했어요" 말하면서 또 디브이디를 거듭 돌려 보았다. 아마 그때부터 이제까지 열 번은 돌려 보았을 것이다. 그때마다 나를 조디악 킬러의 시대로 데려다 주었다.

나이 서른에 <에일리언3>(1992)를 만든 천재였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데이빗 핀처는 <세븐>이 정점이었다. 두 번째 영화에서 최고를 만들었다. 그 영화가 너무 뛰어나서 핀처는 더 이상을 만들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도 그렇게 믿는다. <세븐>은 데이빗 핀처 최고의 영화였다. 맞다. <조디악>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마침내 핀처는 스스로를 깨치며 정점 위로 도약했다. 첫 살인 씬에서 핀처가 옛날에 보였던 폭발하는 화려한 스타일을 찾아볼 수 없다. 절제되어 있다. 대신 총알이 몸뚱이를 관통하는 순간을 정교하고 세심하게 잡아낸다. 희생자가 얼굴을 괴롭게 찌푸리며 팔다리를 허우적대는 모습과 피가 이리저리 튀어 흐르는 걸 주목한다. 이건 진짜, 진짜배기 살인이다. 모자라지 않고 넘치지 않다. 딱 보여줄 만큼 보여주니 그 현실감이란 무서울 정도다.

 <조디악>의 첫 살인 씬. 데이빗 핀처 감독은 정교하고 세심한 카메라워크로 '살인의 순간'을 생생하게 연출했다.

<조디악>의 첫 살인 씬. 데이빗 핀처 감독은 정교하고 세심한 카메라워크로 '살인의 순간'을 생생하게 연출했다. ⓒ 워너 브라더스


그렇게 조디악 킬러가 나타났다.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걸 알고 보면 더욱 무섭다. 카메라가 찍는 당시 미국의 불안한 시대에서 조디악 킬러에 대한 관심은 전국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 사회 곳곳에서 저마다 조디악의 옷자락을 붙잡으려는 짓이 낳은 결과는 오히려 미국 땅에 켜켜이 쌓여 있는 부조리를 들쑤시는 것이었다. 거의 다 잡은 듯싶던 조디악이 허무하게 사라져버리는 걸 눈 뻔히 뜨고 보고만 있어야 한다. 사건은 미궁 속에 빠지고 어느덧 조디악은 '전설'이 되었다. 단순히 유명해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말 그대로 조디악 킬러는 전설적인 존재로 재창조되었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조디악>의 이야기는 살인마가 아니라 살인마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변신해 있다. 조디악은 이미 하나의 전설이 되었으니 전설이란 허상을 손아귀로 잡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화면은 전설을 쫓는 세 사나이의 모습을 비추면서 스무 해의 세월을 묵묵히 추적한다. 조디악은 블랙홀처럼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쭉쭉 빨아먹어 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거듭해서 실패하고 거듭해서 붕괴한다.

흔히 <조디악>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과 곧잘 비교되고 미국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렸다. 둘 다 훌륭한 영화이고 무척 닮았다. 그러나 <살인의 추억>이 실화를 재료삼아 요리하여 더 재미있는 스릴러를 만들었다면, 실화를 날 것으로 분해하고 조합하여 재현해낸 <조디악>은 더 솔직한 드라마다.

핀처에게는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이라고 다소 호들갑스런 수사가 붙는다. 데이빗 핀처 감독은 테크닉의 '과시'가 아니라 '절제'로 테크닉의 황홀한 절정 경지를 보여주었다. 마지막까지 조디악은 전설로 남는다. 새천년을 맞아 세상은 전자화되고 첨단화되었으나 전설이 잡힐 리 없다. 유력한 용의자는 죽었다. 추적자들의 생도 달라졌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수사를 미완으로 종결했다. 분명 조디악의 전설은 접근하는 이들을 망가뜨릴 테다. 진실의 부스러기조차 붙잡지 못하는 독한 공허감에 질식할 것이다. 그러나 그걸 똑똑히 알면서도 여전히 조디악 킬러를 쫓는 사람들이 있다. 정의감이나 사명감으로는 결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집념의 영역이다.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끝내 조디악은 꼭 잡힐 것이다.

 실제 '조디악'의 암호 편지. 조디악 킬러는 1960년대 후반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한 연쇄살인범을 말한다. 희생자 중 5명이 사망했고 2명이 부상당했다. 조디악의 정체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실제 '조디악'의 암호 편지. 조디악 킬러는 1960년대 후반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한 연쇄살인범을 말한다. 희생자 중 5명이 사망했고 2명이 부상당했다. 조디악의 정체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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