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부자 국가라는 싱가포르에 한 찌질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이 친구는 얼마 전 다니던 회사에서 또 잘렸다. 무기력한 남편을 바라보는 예쁘장한 아내의 표정은 밝지 않다. 심지어 아내는 영어를, 남편은 싱가포르어로 대화를 한다. 다행히 대화는 가능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컴퓨터 앞에서 야한 동영상을 보며 벌거벗은 채 자위를 하는 남편을 보고 '짐승'이라며 놀라는 아내. 그런 아내에게 이 남자는 마침내 선언한다.

"난 포르노 감독이 될 거야".

이 어이없는 상황을 본 아내. 마침내 자신의 재산을 들고 찌질이 남편 곁을 떠난다. 남편에게는 단 하나, 비디오 카메라밖에 없다.

우리의 주인공, 마침내 포르노 영화를 찍을 배우를 찾으러 간다. 그리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몸을 파는 아리따운 창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포르노를 찍으면서 점점 가까워지는 두 사람. 하지만 수중에 가진 돈이 없기에 싸구려 여관방에서 도시락으로 허기를 때우는 맹숭맹숭한 생활이 이어진다.

 포르노 감독을 꿈꾸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제3세계 남자가 꿈꾸는 법>

포르노 감독을 꿈꾸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제3세계 남자가 꿈꾸는 법> ⓒ 시네마디지털서울 2008


게다가 창녀가 말하는 언어는 광동어다. 역시나 대화는 가능하지만 소통은 어렵다. 과연 우리의 찌질남은 포르노 감독으로 성공할 것인가? 그와 동시에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국익 우선의 경제발전, 정작 국민은 꿈을 잃었다

싱가포르의 차세대 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는 칸 루메 감독이 한 '찌질남'의 자아 찾기를 담은 <제3세계 남자가 꿈꾸는 법>으로 시네마디지털 서울 2008을 찾았다. 그는 지난해 두 번째 장편 <솔로스>로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지만 정작 싱가포르에서는 상영 금지를 당했다. 동성애를 노골적으로 다루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부자 국가가 됐지만 실제 국민들의 생활은 행복하지 않다. 왜냐면 싱가포르의 발전은 국익이 우선이었지, 국민이 우선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칸 루메 감독이 분명 관객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국가를 '아시아의 부자 국가'라고 칭했음에도 정작 그의 영화에서는 직장에서 쫓겨나고 허황된 꿈을 꾸며 사는 인물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포르노 감독이 되겠다고 선언한 주인공 레온이 우선 그렇다. 레온과 비슷한 시기에 쫓겨난 레온의 친구는 "택시운전이나 할까?"라며 계획 없이 '이거나 할까?'라고만 말할 뿐이다. 한 창녀는 승무원이 되겠다고 한다. 하지만 진정 승무원이 되고 싶어하는 모습은 아니다.

부자국가 싱가포르의 국민들은 이처럼 무기력하게 자기 자신을 내버려두고 있다. 경제 발전은 그저 남의 이야기고 자신의 일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국민이 대다수인 것이 싱가포르의 현실이다. 공통 국어가 없이 각자의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이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곳도 바로 싱가포르다. 칸 루메는 싱가포르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레온과 그 주변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검열 심한 싱가포르, 국제 무대에서 위축돼

 <제3세계 남자가 꿈꾸는 법>은 싱가포르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는 고도성장을 겪은 아시아의 현실이기도 하다

<제3세계 남자가 꿈꾸는 법>은 싱가포르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는 고도성장을 겪은 아시아의 현실이기도 하다 ⓒ 시네마디지털서울 2008


<제3세계 남자가 꿈꾸는 법>은 넓게는 싱가포르의 현실을 표현한 것이지만 또한 싱가포르에서 영화를 만들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칸 루메의 고발이기도 하다.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감독은 레온이라는 인물에 자기 자신을 투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싱가포르에서는 여전히 누드신을 찍기가 힘들다. 동성애를 다루었던 그의 작품은 자국에서 상영이 금지되었고 기타 다른 영화들도 누드신이나 기타 자극적인 신을 찍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의 검열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싱가포르는 10여 년 전부터 자국 영화를 해외에 알리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할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칸 루메의 말이다.

성에 대해 워낙 보수적이다 보니 여배우들도 누드 연기를 꺼린다. 레온이 포르노 배우를 구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바로 감독 자신이 실제로 과감한 연기를 하려는 배우를 구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다. 보수적인 사고와 정부의 검열, 이로 인한 표현의 제약 때문에 싱가포르에서 영화를 만들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싱가포르의 현실, 우리의 현실이기도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레온은 한 동굴을 발견하고 그 동굴에서 자연에 동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 모습은 이내 사라지고 그는 다시 도시 안의 삶으로 돌아간다. 자연의 아늑함마저 사라진 싱가포르라는 곳. 그 곳에서 살아야하는 사람들. <제3세계 남자가 꿈꾸는 법>은 좁게는 싱가포르인의 꿈꾸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고도성장의 뒤에서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의 꿈꾸는 모습이기도 하다. 국익만을 위한 성장 정책으로 신음하는 이들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바로 이 모습이 아시아의 현실이다.

칸 루메 싱가폴 디지털 CI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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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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