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아테네 올림픽까지 한국 선수단에게 수영이라는 종목은 심하게 말하면 선수단의 규모를 늘려 주는 역할 밖에 하지 못했다. 국내 시청자들은 그저 팔·다리가 긴 서양 선수들을 바라보며 감탄했고, 수영에 걸려 있는 34개의 금메달(수구·다이빙·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제외)은 그저 '잘 사는 동네'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다르다. 한국 시청자들도 수영 중계를 보며 침조차 삼키지 못할 정도로 긴장했고,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올랐을 때처럼 환호했다. '마린보이' 박태환 덕분이다.

한국의 박태환은 분명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한국 수영'이 아니라 그저 '한국 국적의 박태환'이라는 선수일 뿐이다. 박태환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의 모습은 여느 올림픽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태환 제외한 15명 중 13명 '예선 탈락'

 박태환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수영 전체를 책임졌다.

박태환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수영 전체를 책임졌다. ⓒ 연합뉴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의 수영 선수는 모두 16명(다이빙에 출전한 손성철 제외). 야구, 축구 등 엔트리가 많은 몇몇 구기 종목을 제외하면 육상(17명) 다음으로 많은 선수를 출전시켰다.

그러나 한국의 수영 종목 일정이 모두 끝난 지금, 기억에 남는 이름은 오로지 박태환 뿐이다. 박태환을 제외한 15명의 선수 중 결승은커녕, 준결승조차 진출하지 못하고 예선 탈락한 선수가 무려 13명이다.

여자 평영 200m의 정슬기와 정다래가 준결승에 진출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각각 2조 5위(2분26초83)와 1조 8위(2분28초28)에 머물렀다. 정슬기와 정다래는 준결승에서 예선 성적보다 낮은 기록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 아테네 올림픽에서 한국 수영 역사상 최초로 결승전에 진출했던 여자 개인혼영 400m의 남유선도 9일에 벌어진 예선에서 4분46초74의 기록으로 31명 중 21위에 머물며 예선 탈락했다.

남자 배영 100m에 출전했던 성민은 10일에 열린 예선 경기에서 한국 신기록(54초99)을 세웠지만, 상위 16명이 출전하는 준결승조차 진출하지 못했다. 나머지 선수들도 최선을 다해 역영을 펼쳤지만, 세계 수준과 격차를 실감하며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꾸준한 투자로 세계 수준과 격차 좁힌 중국과 일본

 일본은 기타지마 고스케 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결승에 진출했다.

일본은 기타지마 고스케 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결승에 진출했다. ⓒ 베이징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이렇듯 한국 수영은 박태환과 다른 선수의 격차가 대단히 심하다. 그렇다면 같은 아시아권에 있는 중국과 일본의 수영은 어떨까?

중국은 16일까지 수영 종목에서 금1·은3·동1를 수확했고, 일본은 금메달과 동메달을 각각 두 개씩 따냈다. 메달 숫자만 보면 박태환이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따낸 한국에 비해 월등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 보면 차이는 확연하다. 중국은 16일까지 치러진 32개 종목 중에서 8위까지만 출전할 수 있는 결승전에 16명(중복 포함)의 이름을 올렸다.

여자 접영 200m에서는 금·은메달을 휩쓸었고, 4명의 선수가 고루 활약해야 하는 여자 자유형 800m 계영에서 은메달을 차지했을 정도로 선수층이 두껍다. 박태환이 예선 탈락한 남자 자유형 1500m에서도 중국은 400m 은메달리스트 장린을 포함해 2명이나 결승에 올라갔다.

'평영의 제왕' 기타지마 고스케가 2개의 금메달을 수확한 일본도 한국처럼 기타지마에게 모든 걸 의지하지 않는다. 일본 역시 결승에 진출시킨 선수가 20명(중복 포함)이나 된다.

한국은 수영 역사에서 올림픽 결승에 진출한 경우가 단 세 번(남유선1·박태환2) 뿐이지만, 중국과 일본에선 '수영 결승 진출'이 전혀 대단한 뉴스가 못 된다. 이렇듯 중국과 일본은 기초 종목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세계 수영과 격차를 점점 좁히고 있다.

서양인들의 독무대였던 자유형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수확한 박태환을 배출해 낸 한국 수영은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아무리 박태환이라도 영원히 올림픽에서 메달을 가져 오진 못한다. 

아직은 조금 먼 얘기지만 박태환의 은퇴가 한국 수영의 몰락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제2, 제3의 박태환을 발굴해야 한다.

 박태환을 제외한 한국 수영 선수들의 성적

박태환을 제외한 한국 수영 선수들의 성적 ⓒ 양형석


베이징 올림픽 수영 박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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