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구단은 지난 10일 대한배구협회에 공문을 보내 14일부터 열리는 2008 월드리그 대표팀 명단에서 이경수를 제외해 달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부상 회복을 위해 재활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

 

LIG의 이같은 행동은 대표팀 사정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구단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집단 이기주의'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이 '이경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른 선수라면 몰라도 이경수는 충분히 '쉴 자격'이 있는 선수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거포' 이경수, LIG-대표팀 오가며 '강행군'

 

 이경수는 지난 2년간 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며 수많은 대회에 출전했다.

이경수는 지난 2년간 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며 수많은 대회에 출전했다. ⓒ 국제배구연맹

지난 2006년 12월에 열린 도하 아시안게임부터 시작해 보자.

 

이경수는 김호철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의 주 공격수로 활약하며 금메달을 따냈다. 당시 이경수는 왼쪽 발목 인대와 오른쪽 어깨 부상 재활이 채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했지만, 쉴 틈은 없었다. 소속팀 LIG로 복귀한 이경수는 곧바로 2006~2007 V-리그에 참가했고, 2007년 3월까지 LIG가 치른 30경기 중 28경기에 출장하며 국내 선수 중 최다 득점(436점)을 올렸다.

 

이경수는 시즌이 끝나고 다시 대표팀에 합류해 2007 월드리그에 참가했다. 한국은 브라질, 핀란드, 캐나다와 함께 A조에 속해 3승 9패로 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이경수는 조별리그 득점 6위(165점), 공격성공률 7위(50.85%)에 오르며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한국은 6월 30일에 월드리그의 모든 일정을 마감했지만, 이경수는 대표팀 유니폼을 벗지 못했다. 9월 1일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제14회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경수는 이 대회에서도 59.8%의 놀라운 공격 성공률로 이 부문 1위에 오르며 '아시아 최고 거포'임을 입증했다.

 

이경수의 강행군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9월 29일부터 KOVO컵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경수는 이 대회에서 허리 부상을 당했고, 그 덕분에(?) 11월에 일본에서 치러진 배구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러나 부상을 당했다고 해서 편하게 쉴 수 있는 이경수가 아니다. 2007~2008 V-리그를 앞두고 소속팀 LIG는 '스페인 특급' 기예르모 팔라스카와 '슈퍼 루키' 김요한이 가세하며 단숨에 우승 후보로 떠올랐고, 성인 무대에서 우승 경험이 없던 이경수는 부상을 안고 개막전부터 출전을 강행했다.

 

비록 LIG는 우승은커녕 플레이오프조차 출전하지 못했지만, 이경수는 전 경기에 출장해 득점 3위(500점)에 오르며 건재를 과시했고 얼마 전 끝난 베이징 올림픽 예선에서도 대표팀의 주공격수로 맹활약했다.

 

월드리그 최악의 조편성, '포스트 이경수'를 키워 내자

 

 왼쪽 공격수 신영수는 이경수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재목이다.

왼쪽 공격수 신영수는 이경수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재목이다. ⓒ 한국배구연맹

종합해 보면 지난 18개월 동안 이경수가 출전한 공식 경기는 무려 95경기(국제대회 29경기, 국내대회 66경기). 그 기간 동안 아시아(카타르,일본,인도네시아), 북미(캐나다), 남미(브라질), 유럽(핀란드)을 골고루 돌아 다녔다.

 

사실 권영민, 이선규(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여오현(삼성화재 블루팡스) 등 대표팀의 다른 주역들도 이경수와 비슷한 일정을 소화했다.

 

그러나 팀 내에서 가장 많은 공격을 시도하고, 가장 강한 서브를 넣으며, 심지어 서브 리시브까지 참가하는 이경수의 체력 소모에 비할 바는 못된다.

 

현재 한국 남자배구에서 이경수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뛰어난 공격력에 안정된 수비, 그리고 풍부한 경험까지 갖춘 '대형 레프트'는 이경수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경수도 어느덧 30세의 노장 선수. 언제까지 이경수 한 명에게 한국 배구의 운명을 맡길 순 없는 노릇이다.

 

이번 2008 월드리그에서 한국은 러시아, 이탈리아, 쿠바와 함께 B조에 속해 있다. 러시아와 이탈리아는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메달권 진입을 노리고 있고, 쿠바 역시 한 때 세계 배구계를 주름잡던 강팀이다. 한국으로서는 결승 라운드 진출은커녕, 1승조차 쉽지 않은 최악의 조편성이다.

 

따라서 이번 대회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올리려 애쓰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포스트 이경수'를 길러 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아직 이경수의 기량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대표팀에는 신영수(대한항공 점보스), 김요한(LIG), 박준범(한양대) 등 '대형 레프트'로 성장할 수 있는 재목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이경수 역시 한양대 재학 시절 임도헌 등 선배들의 부상 공백을 틈 타 대표팀의 주역으로 성장한 바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8.06.11 18:41 ⓒ 2008 OhmyNews
이경수 배구 월드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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