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과 만나는 파리아스 감독  경기 전 기자들은 감독들을 만나 그날 경기의 구상과 다양한 이슈에 대한 의견을 묻고는 한다. 이후 경기가 종료되면 승부 결과에 따른 인터뷰를 한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성남 일화와의 K리그 챔피언결정 1차전을 앞두고 벤치에서 기자들과 만나고 있는 포항의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

▲ 기자들과 만나는 파리아스 감독 경기 전 기자들은 감독들을 만나 그날 경기의 구상과 다양한 이슈에 대한 의견을 묻고는 한다. 이후 경기가 종료되면 승부 결과에 따른 인터뷰를 한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성남 일화와의 K리그 챔피언결정 1차전을 앞두고 벤치에서 기자들과 만나고 있는 포항의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 ⓒ 이성필

프로농구 서울 삼성 썬더스의 안준호 감독은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 룸에 들어오면 누가 질문하지도 않았는데 "에~ 오늘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하며 '알아서' 그날 경기에 대한 승패 요인을 조리 있게 설명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는다.

 

안 감독의 이런 스타일은 프로농구 인터뷰 문화에 길든 것과 연관시킬 수 있다. 프로농구는 중계방송→방송 취재→신문‧인터넷 기자단 인터뷰 등 총 세 차례로 이뤄져 있다. 삼성이 승리하는 날 안준호 감독은 세 단계를 거친 뒤 경기장을 빠져나갈 수 있다. 패하더라도 신문‧인터넷 기자단 인터뷰는 '패장' 자격으로 참석해 절대 거르지 않는다.

 

타 프로스포츠와 비교되는 프로축구의 인터뷰 문화

 

최은성 대전시티즌 골키퍼 최은성은 승부 결과에 상관없이 어떤 인터뷰가 들어와도 귀찮은 기색없이 응하는 대표적인 선수다. 지난해 대전이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순간에도 최은성은 수 십개의 매체와 인터뷰에 응했다.

▲ 최은성 대전시티즌 골키퍼 최은성은 승부 결과에 상관없이 어떤 인터뷰가 들어와도 귀찮은 기색없이 응하는 대표적인 선수다. 지난해 대전이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순간에도 최은성은 수 십개의 매체와 인터뷰에 응했다. ⓒ 이성필

농구의 이런 인터뷰 방식은 '대회요강 제34조 미디어 가이드'를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미디어 가이드에는 '홈팀은 경기종료 즉시 상대팀의 매니저(부재시 해당구단 직원)를 통하여 인터뷰 대상선수 및 감독에게 인터뷰가 있음을 알리고...(중략)...특히 홈팀은 TV중계팀이 중계석에서 인터뷰를 요청할 경우 최우선으로 인터뷰를 하고 그 후로 방송취재팀의 인터뷰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런 조항에 따라 팀 관계자들은 경기종료 5분 정도를 남겨놓고 인터뷰 대상자를 각 매체별 취재진과 협의해 선정한다. 만약 인터뷰를 불응할 경우 '경기규칙 12장 파울 및 벌칙 86조 벌과금'을 통해 '감독, 코치, 선수가 경기종료 후 인터뷰에 불응하면 50만 원 이하의 벌과금이 부과된다'는 조항에 의거 징계를 받는다. 이런 비슷한 조항은 농구 외에도 야구, 축구, 배구 등 모든 프로스포츠 종목에 존재한다.

 

벌금이라는 강제조항이 있지만 승패 여부를 떠나서 선수들은 의자에 앉아 취재진의 질문에 자신의 의사를 강하게 전달한다. 특정 이슈가 있을 때는 인터뷰가 좋은 통로로 이용된다. 경기장 외에도 훈련장이나 휴식 중 구단에 인터뷰 이유를 밝히면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잘 이뤄지는 편이다.   

 

반면, 프로축구의 경우 감독, 선수 인터뷰가 별 따기에 가깝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전까지만 해도 경기가 끝나면 대충 잡아서 인터뷰를 하거나 숙소로 찾아가 하는 등 주먹구구식이었다. 그나마 2002년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주관 방송사→방송 취재→신문‧

인터넷 기자단 공식 인터뷰,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 인터뷰 방식이 정착됐지만 필요성을 못 느끼는 일부 구단의 태도로 구단별 인터뷰 방식은 천지차이다.

 

현재 국가대표팀 경기 같은 방식으로 인터뷰 형식을 운영하는 구단은 실질적으로 울산 현대, 수원 삼성밖에 없다. FC서울의 경우 올해부터 실내에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나머지 구단은 경기가 종료되면 시끄러운 음악 속에 방송, 신문, 인터넷 매체 기자들이 그라운드로 뛰어 내려가 한데 뒤엉켜 잘 들리지도 않는 말을 받아적거나 땀에 절은 선수를 붙잡고 '힘든' 대화를 나눈다. 혹은 방송중계가 선정한 선수를 방송취재단이 같이 인터뷰를 시도하다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구단별로 언론의 주목을 받는 선수가 어느 정도 있느냐에 따라 국가대표 경기 방식의 인터뷰가 필요한 구단이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또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취재진이 잘 찾지 않아 이런 방식을 모두 적용시키기에는 무리인 곳도 있다.         

 

그러나 일부 선수들은 '공식'적인 인터뷰를 요청하는데도 불구하고 거부 의사를 밝히며 홀연히 경기장을 떠나기도 한다. 일부 언론의 과도한 부풀리기 보도로 인해 선수가 피해를 보면서 기피하는 이유도 있지만 본인의 기분에 따라 '공식' 인터뷰를 무시하는 경우도 있고 구단이 인터뷰 체계를 정리 및 교육하지 않아 생긴 이유도 있다.

 

감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승리하면 기분 좋게 인터뷰에 응하지만 패할 경우 거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패했어도 인터뷰에 응하려는 감독을 구단 프런트가 알아서 조절해 "오늘은 안될 것 같다"며 자르는 경우도 있다. 

 

무슨 소린지 알아 들을까? 프로축구연맹에서는 국가대표 경기의 인터뷰 형식을 변형해 K리그 실정에 맞게 운영할 것을 지시했지만 쉽게 변화하지는 않고있다.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 나오는 가운데 모든 매체의 기자들이 한 사람의 말을 집중해야 한다. 사진은 16일 성남 일화-수원 삼성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었던 성남의 한동원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장면이다.

▲ 무슨 소린지 알아 들을까? 프로축구연맹에서는 국가대표 경기의 인터뷰 형식을 변형해 K리그 실정에 맞게 운영할 것을 지시했지만 쉽게 변화하지는 않고있다.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 나오는 가운데 모든 매체의 기자들이 한 사람의 말을 집중해야 한다. 사진은 16일 성남 일화-수원 삼성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었던 성남의 한동원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장면이다. ⓒ 이성필

'스토리가 있는 K리그'를 만들려면 말을 더 많이 하게 해야 

 

지난해 5월 20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부산 아이파크-FC서울의 경기에서 '한국축구의 희망' 박주영이 보여준 태도는 대표적인 사례.

 

당시 서울은 정규리그 8경기 연속 무승(6무 2패)을 기록하며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세뇰 귀네슈 감독은 왼쪽 발등 부상으로 재활을 하던 박주영을 선발로 내세웠지만 0-0으로 비겼다. 경기 뒤 취재진은 서울 프런트를 통해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다. 팀의 부진에 대한 간판선수의 생각을 알고 싶었을 뿐더러 부상 회복 후 몸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구단 프런트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박주영은 대기실로 들어가버렸다. 당시 경기를 취재했던 <스포츠 칸> 전광열 기자는 '프로의식 차버린 축구천재'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박주영의 인터뷰 거부를 비판했지만 포털 뉴스사이트에서 축구팬들로부터 상당한 비난을 얻었다. 펜의 힘을 이용해 선수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을 표출하는 것 아니냐는 등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기사에 대해 전광열 기자는 "박주영은 개인 박주영이 아니라 FC서울의 대표다. 공식 인터뷰도 서울의 대표로 응한 것이기 때문에 아마추어가 아닌 이상 프로의식을 가지고 응했어야 했다"며 작성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2002 한일월드컵에서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탈락이라는 운명을 맞이하고도 40군데의 매체와 일일이 인터뷰를 한 뒤 믹스트존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며 프로선수들의 인터뷰 자세에 대한 사례를 제시했다.

 

박주영의 태도는 분명 벌금 부과에 해당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심판규정 제4장 공식경기운영 제35조 인터뷰실시 제2항에 따르면 선수가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을 경우 4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게 되어 있지만 박주영에게 벌금은 부과되지 않았다. 규정이 있지만 제대로 적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프로연맹은 올해부터 적극적으로 전 구단에 국가대표 경기 인터뷰 방식을 K리그 상황에 맞춰 변형해 시행할 것을 지시했다. 선수들의 입, 퇴장 동선도 경기장 사정에 맞춰 변형된다. 프로연맹 홍보 관계자는 "선수를 자산으로 하는 프로축구에서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언론을 통해 전달되면 경기장에 관중이 더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시행 이유를 밝혔다.

 

프로연맹은 지난해 12월 말 공청회를 통해 '스토리가 있는 K리그'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스토리에는 경기내용도 있지만 선수나 감독의 적극적인 인터뷰를 통한 논쟁 생산도 중요한 요소다.

 

'말'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고 있는 만큼 인터뷰 문화의 새로운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2008.03.19 19:42 ⓒ 2008 OhmyNews
K리그 인터뷰 K리그 프로축구 프로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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