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회복을 위하여 7년을 기다렸건만, 머무른 시간은 불과 7개월도 되지못했다. 프로농구 대구 오리온스의 이충희 감독이 지난 26일 팀의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사퇴의사를 밝힘에 따라, 지난 5월 출범했던 오리온스 ‘이충희 시대’는 불과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초라하게 막을 내려야 했다.

26경기에서 4승 22패(승률 .154)라는 초라한 성적표. 현역 시절 한국농구 최고의 슈터이자 스타플레이어로 명성을 떨쳤던 ‘슛도사’였지만, 지도자로서의 이충희는 역대 프로농구 국내 지도자를 통틀어 최단명 감독이라는 불명예를 피해가지 못했다.(역대 최단기간은 2005년 전자랜드의 제이 험프리스가 기록한 6개월-시즌 20경기)

형식상은 자진사퇴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질에 가깝다는 것이 세간의 중론. 이충희 감독이 6연패에 빠졌던 지난 KCC전까지만 해도 팀 부진탈출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않았던 점이나, 27일 KT&G와의 홈경기를 앞두고 김상식 코치와 경기준비에 여념이 없었다는 소식 등을 감안할 때, 더 이상 이 감독 체제로는 상황 변화를 모색하기 힘들다는 구단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감독의 실패는 주전들의 부상이라는 악재와 잘못된 상황대처 및 전술운용이라는 인재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할수 있다. 이 감독은 전임 LG감독시절부터 유난히 부상과 악연이 많고, 선수 복이 없기로 유명했다.

이충희 전 오리온스 감독

▲ 이충희 전 오리온스 감독 ⓒ 대구 오리온스

이 감독은 98~99시즌 LG의 초대 감독을 맡아 당시 신생구단이었던 LG는 이렇다할 스타플레이어가 없었던 팀을 강력한 ‘수비농구’로 정규시즌 2위까지 견인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 감독은 당시 팀내 간판스타라 할수 있는 양희승과 박재헌을 부상으로 번갈아 잃으며, 3년의 임기내내 가용전력을 100% 갖추고 임한 경기는 10게임이 채 되지 않았다.

‘스타군단’으로 꼽히던 오리온스를 맡은 이후에도 이 감독의 불행은 계속됐다. 이 감독은 취임 초기 인터뷰에서 LG 시절에 비해 이미 강팀의 이미지가 확실한 오리온스에서 더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토로한 바 있다. LG에서의 수비농구 컬러를 의식한 듯, 오리온스에서는 “때려부수는 공격농구를 보여주겠다”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1차로 선발했던 외국인 선수 마크 샌포드와 코리 벤자민이 부상으로 교체되며 이 감독의 구상은 처음부터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팀 전력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포인트가드 김승현이 개막전 한 경기만을 뛰고 허리디스크 악화로 전력에서 이탈하며 이 감독은 할 말을 잃었다.

한번 시작된 부상은 전염병처럼 번졌다. 김병철, 정재호, 칼튼 아론, 리온 트리밍햄, 로버트 브래넌, 주태수 등 팀내 주력선수들이 마치 저주라도 걸린 듯 돌아가면서 쓰러졌다. 부상으로 교체한 외국인 선수들마저도 ‘먹튀’이거나 아니면 또 다른 부상을 당해서 다시 교체되는 악순환이 끝없이 반복됐다. 이 감독이 오리온스에서 당초 구상했던 100% 전력을 가지고 임한 경기는 단 한 게임도 없었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 성적을 내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감독이 궁극적으로 팬과 구단의 신뢰를 잃은 데는 본인의 책임도 결코 적지 않다. 이 감독은 본격적인 부상병동이 몰아치기 이전인, 시즌 초반부터 사실상 6~7인 로테이션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선수기용을 고집했다. 김병철과 리온 트리밍햄같은 노장 선수들이나, 경기경험이 부족한 신인들의 체력안배도 고려하지 않고 풀타임 출전을 강행하다가 과부하를 초래하기 일쑤였다.

이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6경기에서 오리온스는 선수교체가 총 284회(경기당 10.92회)로 10개구단 중 꼴찌를 기록했다. 창원 LG(668회), 부산 KTF(665회), 전주 KCC(610회) 등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고, 전임 김진 감독이 이끌던 지난 06~07시즌 오리온스의 940회(경기당 17.4회)에 비교해도 엄청난 격차다. 이충희 감독의 주전 선수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전술변화에 얼마나 인색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문제는 주전 선수들의 과부하를 방치하다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고 나면, 그제서야 잘 기용하지 않던 벤치멤버들을 투입하여 또 다시 풀타임을 기용하는 식으로 또 다른 부상을 야기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는 점이다. 오리온스는 올시즌 평균득점이 77.7점. 실점은 87.6점으로 득실점 마진율이 -10점 가까이 이르렀고, 실제 패한 경기에서는 점수차가 20여점차 이상 벌어진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1라운드를 3승 6패로 마쳤던 오리온스는 2라운드 이후에는 17경기에서 단 1승을 추가하는데 그쳤다.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비교적 접전을 펼쳤던 오리온스는 2라운드 이후 경기에서는 사실상 1·2쿼터에 승부가 갈린 경기만 무려 12차례나 되었다. 비슷한 기간 2약으로 침체기에 빠져 있다가 최근 기사회생한  모비스 유재학 감독과의 지도력 비교도 이 감독을 괴롭혔다. 이 감독의 지도력을 바라보는 논란의 본질은 어느덧 ‘왜 질 수밖에 없는가’에서 ‘어떻게 지는가’에 대한 논란으로 바뀌어 있었다.

선수들의 혹사를 방치하면서 번번이 두 자릿수 이상의 점수차로 대패하며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하는 이충희 감독의 농구에 실망한 팬들은, ‘달관농구’·‘방탄농구’라고 비난을 감추지 않았고,  ‘멍충희’라는 모욕적인 별명을 퍼붓기도 했다. 종반에는 선수들도 작전타임 시간에 이충희 감독의 지시에 제대로 집중하지 않는 듯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팀 전체가 상호 총체적인 불신 상태에 빠져들었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충희 감독이 너무 오랫동안 프로농구를 떠나 있었던 까닭에 현장감각이 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부호를 나타냈다. 어떻게든 성적을 내야 한다는 조급함과 뜻하지 않은 악재의 연속이 이 감독에게서 냉철한 판단력을 빼앗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감독은 LG에서의 불명예 퇴진 이후, 아마농구에서 고려대와 동국대를 이끌었으나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마지막 기회라고 할만한 오리온스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향후 지도자 인생에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현역 최고의 스타에서 순식간에 실패한 지도자로 몰락한 이충희 감독의 처진 어깨가 유독 안스러워 보인다.

프로농구 이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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