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재 골키퍼  무거운 마음으로 경기에 나선 이운재는 흔들림 없는 방어를 했다. 경기장을 찾은 많은 관중은 그의 일을 놓고 토론하는 광경을 보이기도 했다.

▲ 이운재 골키퍼 무거운 마음으로 경기에 나선 이운재는 흔들림 없는 방어를 했다. 경기장을 찾은 많은 관중은 그의 일을 놓고 토론하는 광경을 보이기도 했다. ⓒ 수원 삼성



마커스 슈미트 주심의 호각이 울렸다. 승부가 갈린 것이다. 0-1, 후반 41분 포항 스틸러스 플레이메이커 따바레즈가 왼쪽 측면에서 찬 프리킥이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예리하게 골문에 꽃혔다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자신의 시야를 가리려고 들어오던 박원재의 머리에 맞고 꺾이면서 골문 구석으로 데굴데굴 들어갔기에 허탈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주심의 호각을 뒤로 하고 북쪽 관중석에서 자신의 이름을 연호한 서포터 '그랑블루'에 다가섰다. 박수가 터져나왔다. 늘 하던대로 골키퍼 장갑을 벗어 던져줬다. 올 시즌 더 이상 관중석에 장갑을 던질 경기가 없다는 아픔이 눈물을 쏟게 했다. 그것을 쳐다보는 수원 팬들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경기 전날 '대표'라는 타이틀을 달고 지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사죄하며 눈물을 흘렸다. 팀의 승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으나 패했다. 혼자만의 힘으로 승리를 얻기란 힘든 일이었다. 그의 반대편에는 후반전 자신이 골킥을 할 때마다 "룸싸롱~ 룸싸롱"을 외치던 포항 서포터들이 승리의 기쁨을 선수들과 나누고 있었다.

지난 7월 AFC(아시아 축구연맹) 2007 아시안컵,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예선을 치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우성용(34, 울산 현대), 김상식(31, 성남 일화), 이동국(28, 미들즈브러) 등 대표팀 내 최선참 선수들과 숙소에서 무단 이탈해 심야 음주로 파문을 일으킨 이운재(34, 수원 삼성)는 전날 미디어 데이에서 "출전에 이상없다"는 차범근 감독의 의지대로 31일 저녁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7 삼성 하우젠 K리그 플레이오프 포항과의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경기 전 이운재는 당연히 선발임을 말해주듯 골문 앞에서 몸을 풀었다. 그를 향해 서포터들은 박수를 쳐줬다. 그렇지만 많은 관중은 냉정하게 그를 바라봤다. 홈이라 그를 감싸주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 판단 됐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가족과 경기장을 찾은 송한길(45)씨는 "술 한두 잔 정도야 마실 수 있겠지만 1-2로 패하고 난 뒤라는 점은 용서할 수 없다"고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송씨의 아들 민준(16)군은 "수원을 대표하는 선수인데 그런일을 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평소에 좋아하던 선수였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관중석 여기저기서 그를 놓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한쪽에서는 "왜 이운재만 다 뒤집어 쓰냐"는 소리도 나왔다. 반면 "주장인데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 다양한 의견들이 터졌다.

고개숙인 이운재 포항 스틸러스에 0-1로 패한 뒤 자신을 응원해 준 팬들에 동료와 인사하러 가는 이운재(왼쪽 세 번째) 그는 장갑을 벗어 관중석으로 던진 뒤 기어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 고개숙인 이운재 포항 스틸러스에 0-1로 패한 뒤 자신을 응원해 준 팬들에 동료와 인사하러 가는 이운재(왼쪽 세 번째) 그는 장갑을 벗어 관중석으로 던진 뒤 기어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 수원 삼성



경기 시작을 앞두고 선수소개 시간이 시작됐다. 장내아나운서 '투맨'은 수원의 '1번'으로 가장 먼저 소개되는 그에게 "우리는 당신을 믿습니다"라는 수식어를 던진 뒤 "이운재!"라고 크게 소리쳤다. 

선수단이 입장하고 사진기자들의 플레시는 이운재에 집중됐다. 그래도 그의 표정은 냉정했다. 오로지 경기에 이겨야했다. 대한축구협회 상벌위원회가 오는 2일 열리고 그에따라 자신의 운명이 판가름 나기 때문에 한 경기라도 더 치르고 싶었던게 그의 소망이었다.

전반 7분 그의 정면에 위치한 남쪽 관중석 2층 난간에 한 현수막이 붙었다. 포항 서포터들이 그의 행위를 비난하는 문구인 "운재야! 술값은 누가냈노?"였다. 이를 본 경비업체 직원과 경찰들이 출동해 10분 동안 실랑이 끝에 현수막은 철거됐다.        

이운재는 묵묵하게 경기를 치렀다. 그리고 후반 포항 서포터들이 자리한 남쪽 골대로 옮겨오면서 정신적인 사투가 시작됐다. 볼을 잡을 때마다 야유는 물론 "룸싸롱"이라는 외침이 끝없이 터져나왔다. 그래도 평소처럼 선방하는 등 산전수전 겪어본 선수다운 여유를 보였다.

현장에서 관전하던 한 축구인은 "주위의 시선이 너무나 부담스러울텐데 여러 차례 선방하는 것을 보면 대단한 선수"라고 평가하면서 "간염에 걸렸었고 술을 잘 못마시는 친구인데 정말 기사가 맞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이렇게 종료됐다. 선수들과 인터뷰를 위해 기다리는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을 지나가는 그의 발걸음은 무거워보였다. 축구협회의 징계와 올 시즌을 끝으로 팀과의 계약이 종료됨에 따라 수원의 선택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운명은 이제 어떻게 결론지어질까? 

이운재 음주 파문 플레이오프 수원 삼성 그랑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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