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의형제 입니다" 의형제를 맺은 곰두리 축구단의 이동우 선수(왼쪽)와 하왕규 대령(오른쪽)

▲ "우리 의형제 입니다" 의형제를 맺은 곰두리 축구단의 이동우 선수(왼쪽)와 하왕규 대령(오른쪽) ⓒ 김귀현



"우리 의형제 맺었습니다, 사진 좀 찍어 주십시오."

공군 항공우주연구소장 하왕규(53) 대령의 목소리다. 하 대령은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팀 곰두리 축구단의 이동우(21) 선수와 어깨동무를 하며 포즈를 취했다. 지난 25일 충북 청원 공군사관학교 복지회관에서 곰두리 축구단과 공군 장교들의 만남의 자리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현역 공군 대령이 아들 뻘 되는 축구선수와 의형제를 맺는다고 즐거워한다. 이만큼 공군과 곰두리 축구단의 관계는 밀접하다.

이같은 돈독한 관계는 작년 당시 공군 참모총장이던 김성일(59) 현 곰두리 축구단 명예회장 덕분이다.

김성일 명예회장은 참모총장 시절 뉴스에서 곰두리 축구단이 훈련할 곳이 없어 여기저기 전전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이 때부터 김성일 전 참모총장을 필두로 한 공군의 전폭적인 지원이 시작되었다. 곰두리 축구단에게 각 공군 부대의 축구장은 물론 숙소까지 무료로 제공한 것.

곰두리 축구단은 공군 이외에도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팀 곰두리 축구단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공군사관학교에서 만나보았다.

[김성일 명예회장] "곰두리 축구단으로 보직 바꾸니, 사는 게 재밌어졌다"

김성일 곰두리 명예회장 공군 참모총장에서 곰두리 축구단 명예회장으로 보직 변경 되었다.

▲ 김성일 곰두리 명예회장 공군 참모총장에서 곰두리 축구단 명예회장으로 보직 변경 되었다. ⓒ 김귀현



 곰두리 축구단 소속 김성일 명예회장

곰두리 축구단 소속 김성일 명예회장 ⓒ 김귀현

"공군 참모총장직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곰두리 축구단 명예 회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보직이 바뀐 셈이죠. 회장직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재밌어졌습니다. 인생이 바뀌었죠."

김성일 명예회장은 공군의 수장인 참모총장 자리에 있었다.

그랬던 그가 이날(25일)은 비를 흠뻑 맞아가며 곰두리 축구단의 일원으로 공군 장군단을 상대했다. 골도 하나 기록했다. 공군 주최로 공군사관학교 주경기장에서 열린 곰두리 축구단과 공군 장군단의 친선경기에서였다.

"삶이 행복하다, 인생이 바뀌었다" 곰두리와 함께하고 있는 삶에 대한 김 회장의 소감이다. 그는 그야말로 곰두리에 푹 빠져 있었다.

"곰두리 축구단과 어울려서 즐기며 살아간다는 것이 기쁩니다.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이 친구들이 세상을 밝게 바라볼 수 있잖아요. 축구라는 것을 통해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도 있고…. 지금 살고 있는 이 곳이 아름다운 곳이란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김성일 명예회장은 훈련 장소 제공은 물론, 일본의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팀과의 친선경기와 세계대회의 체제경비를 지원하고 있다. 일본에서 열리는 경기의 경우 항공료에 숙박비까지 지원해준다.

"(곰두리 축구단) 명예회장을 하면서 세상에는 참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하니 십시일반으로 많이 도와주셨죠. 특히 각 항공사 회장들에게 전화를 해 항공권 지원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수락해 주었습니다."

곰두리 축구단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그의 최종 목표를 묻자, "지금 유소년 축구 교실은 많이 생기고 있는데, 장애인 축구 교실은 하나도 없다"며, "장애인 축구 교실을 만들어 어려서부터 장애인들이 스포츠를 통해 사회에 빨리 적응 하도록 돕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조광래 특별회원] "비장애인도 하기 어려운 운동이 축구인데"

 조광래 전 감독

조광래 전 감독 ⓒ 김귀현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바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FC 서울(구 안양 LG) 감독을 맡았던 조광래 감독이다. 조광래(52) 감독은 현재 곰두리 축구단의 특별회원이고, 이날(25일) 친선경기에도 선수로 뛰었다. 

"곰두리 축구단을 만들었던 신철순(62) 감독이 내 스승이다. 진주고 시절 사제로 만난 것이 인연이 되었다"는 조 감독은 "내가 원래 이런 자리 잘 참석 안 하는데 곰두리 축구단 모임 때는 빠지지 않고 꼭 온다"며 곰두리 축구단에 대한 끈끈한 애정을 과시했다.

조 감독은 "비장애인도 하기 어려운 운동이 축구인데 장애인들이 이렇게 뛰는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다"면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에서 축구를 하는 광경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이어 조 감독은 "곰두리 선수단에게 축구 기술을 전수해주고 싶다"면서 "(곰두리) 선수들이 축구로 인생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이후 3개월째 공석인 대표팀 감독에 대한 얘기도 살짝 물었다. 조 감독은 "설문 조사 하면 차기 감독으로 내가 항상 1위던데 왜 축구협회 측에서 아무런 얘기가 없는지 모르겠다" 면서 "냉정하게 분석해줬으면 좋겠다, 국가 대표 감독직에 대한 내 생각은 설문 조사와 같다"며 미소를 띠었다.

[김은희 감독] "선수들이 시차적응 못해 안타까워요"

 김은희 감독도 함께 뛰었다.

김은희 감독도 함께 뛰었다. ⓒ 김귀현

"공간을 만들어 주란 말이야, 공간! 알았어? 공간을 만들어주라고! 공간!"

'공간'이란 말을 끝없이 반복한다. 전반전이 끝나고 선수들에게 '공간'을 계속 강조하는 그는 곰두리 축구단의 김은희(39) 감독이다.

김 감독은 선수를 지도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한 번 말해도 될 것을 여러 번 말해야 알아듣는 것"이라 말했다. 계속 반복해야만 알아듣지만, 목소리에 짜증은 전혀 섞이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는 모습이 오히려 엄마 같았다.

김은희 감독은 육상 선수로 시작해 1990년부터 여자축구 선수가 되었다. 임은주(41) 현 아시아축구연맹 심판위원회 위원과 함께 여자축구 1세대다. 축구 선수가 되면서 인연을 맺었던 신철순 회장의 권유로 2002년부터 곰두리 축구단 코치를 맡았으며, 2007년부터 감독을 맡게 되었다. 현재는 뇌성마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맡고 있다.

김 감독은 선수 지도하며 가장 보람을 느낄 때를 "축구를 하나도 못하던 선수들의 기본기가 지도를 받으며 조금씩 늘어갈 때"라 꼽으며,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진출해 3위안에 들고 싶다"며 목표를 밝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어떻게 됐느냐'고 묻자 아쉬운 목소리로 답했다.

"안타깝지만 2008 올림픽 출전권은 획득하지 못했어요. 충분히 진출할 수 있는 실력인데…. 해외만 나가면 시차적응을 하지 못해, 제 기량을 50%도 발휘를 못하죠. 비장애인과 달리 시차적응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만, 예산 문제로 거의 경기 전날 입국하곤 하죠. 그럴 때마다 정말 아쉬워요."

[한홍택 원년멤버] "88년엔 호주에게 8-0으로 이겼죠"

원년멤버 한홍택 선수

▲ 원년멤버 한홍택 선수 ⓒ 김귀현


"1988년에는 우리가 호주를 8-0으로 이겼죠. 근데 지금은 질 게 뻔해요."

곰두리 축구단의 가장 연장자인 한홍택(48) 선수는 1988년 창단 때부터 활동한 원년 멤버다. 현재까지도 선수로 뛰고 있으며, 곰두리 축구단의 스카우터 일도 겸하고 있다. 그는 1988년 호주를 8-0으로 대파하던 추억을 떠올리며 "이제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이유인즉 "호주는 장애인 스포츠를 계속 장려해 왔지만, 우리나라는 1988년과 다를 게 없기"때문이다. 한홍택 선수는 이어 선수 스카우트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선수에게도 운동 함께 하자고 말을 못해요. '밥 먹여줄 거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거든요. 국가 정책으로 장애인스포츠 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줘야해요."

한 선수는 이어 "국가대표로 뽑혀도 훈련기간 동안만, 그것도 한 달에 50만원 밖에 못 받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선수를 선발해 육성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곰두리 축구단 선수들은 가슴 따뜻한 후원자들의 지원 속에 열심히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다. 세계를 누비는 곰두리 축구단의 선전을 기원해 본다.

곰두리 뇌성마비 김성일 공군참모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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