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패션 입장 부산영화제 미드나잇 패션은 밤샘 영화보기이다.

▲ 미드나잇 패션 입장 부산영화제 미드나잇 패션은 밤샘 영화보기이다. ⓒ 성하훈

 

'미드나잇 패션'은 부산국제영화제 밤샘 영화보기 프로그램이다. 자정부터 새벽까지 밤새 3편의 영화가 몰아치기로 상영된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또는 다른 사정으로 인해 낮시간대 영화제를 즐기기 힘든 사람들에게 밤 시간에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최적이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밤을 새운다는 '매력'에 올빼미족들의 관심도 커서 이번 영화제 예매 때 가장 먼저 매진된 작품들이기도 하다.

 

밤을 새워 보는 영화의 특성상 일반적인 영화보다는 '특별한' 영화들이 배치된다. 호러물이나 잔인함이 많거나 애정 묘사가 짙은 작품 등 대부분 18세 금지 작품들이 밤새 영화보기에 뛰어든 관객들의 상에 오르는 메뉴다.

 

검열이나 사전 심의가 없이 오리지날 노컷 필름이 상영되는 영화제의 특성상 일반 개봉될 시 심의로 삭제되거나 제대로 볼 수 없는 부분을 빠짐없이 보게 된다는 점에서 관객들 또한 흥미를 느끼게 된다. 지난해 <숏버스>가 그런 작품들 중 하나였다. 

 

이번 영화제에는 대중성도 고려해서 작품을 선정했기 때문에 영화보기 재미를 더해준다는 점에서 관객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이다.  

 

지난 5일 '미드나잇 패션'의 첫 상영이 있은 해운대 메가박스 상영장은 밤을 새우려는 관객들의 기대감 섞인 입장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는 자정이 가까워 오며 3개의 상영관을 빈자리 없이 메운 관객들은 밤샘 영화에 기대감을 나타내는 표정들이다.

 

기자의 옆자리에 앉은 30대 후반의 여자관객은 '직장일로 인해 낮시간대 영화보기가 힘들어 밤샘 영화보기'를 선택한 경우다. 퇴근 시간이 밤 9시쯤인지라 평일 영화제 상영작을 보기는 어려운 일. 그래서 이날 아예 하루 휴가를 내고 영화보기에 뛰어 들었단다. 이날 낮시간대 본 영화는 모두 5편. 미드나잇 패션에 상영되는 3편을 보고나면 하루동안 8편을 보게 되는 셈이다. 한마디로 폭식 수준이다.

 

그는 "영화제가 열리면 빠짐없이 참여한 탓에 부산영화제에 대한 애정이 많다"며, "불만은 집과 가까운 남포동보다는 해운대쪽에서 보고 싶은 작품이 많이 상영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장림에 있어 오전 7시까지 출근하려면 새벽 5시 30분에는 나가야 한다"면서 러닝타임에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20대의 안영상씨는 서울에서 온 직장인이다. 1박 2일간 8편의 영화를 볼 예정으로 이날 아침 부산에 도착했다. 낮시간대 2편을 봤고 이번에 밤새 3편을 본 후 다음날 3편을 보는 것이 부산영화제의 일정.

 

"1박 2일이지만 미드나잇 패션 덕분에 무박 2일 영화보기가 됐다"는 그는 "반환표가 많이 안 나와 표구하기가 힘들었는데, 다행히 일찍 와서 현장예매에 성공했다"며 웃어 보였다. 영화제가 처음이라는 그는 낮에 본 영화 중 "<부정적으로 생각하기>가 좋았다"면서 "영화제 전반적으로 수준있고 좋은 작품들이 많이 상영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양귀메 영화상영직전 관객들에게 인사하러 온 배우 양귀매

▲ 양귀메 영화상영직전 관객들에게 인사하러 온 배우 양귀매 ⓒ 성하훈

 

자정에 시작하는 첫 상영직전 뜻밖의 손님이 찾아들었다. <쾌락공장>의 주연배우 양귀매씨가 늦은 시간임에도 관객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들어선 것. 3곳의 상영관을 돌며 인사를 하는 양귀매씨는 이번 부산 방문이 6번째이며, 차이밍량의 <애정만세>가 첫번째 부산을 찾은 작품이었다고 설명했다.

 

관객들을 향해 "혹시 <애정만세>를 본 분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고 한 양귀매씨는 <애정만세>를 기억하는 관객이 나타나자 반가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심야시간 나타난 배우에 환호하는 관객들을 향해 "즐겁고 재밌는 관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한 뒤 똑같은 인사를 하기 위해 옆 상영관으로 옮겨갔다.

 

첫날 상영된 영화는 <쾌락공장>. 태국의 에카차이 우에크롱탐이 감독한 영화는 양귀매를 비롯한 몇몇 배우를 빼고는 게이랑 부근에서 만난 일반인들로 캐스팅이 이뤄졌다고 한다. 게이랑은 싱가포르의 한 집장촌으로 이 영화의 주무대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자신이 지켜온 동정을 바치는 젊은 군인, 10대 소녀가 겪는 집창촌의 첫 신고식, 거리의 악사로부터 많은 돈을 주고 곡을 사는 지친 매춘분 등과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비밀스럽고 유혹적인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프로그래머 표현대로 비록 에로영화로 포장되어 있지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린 드라마였다.

 

 첫편이 끝나고 쉬는시간. 아직 쌩쌩한 관객들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첫편이 끝나고 쉬는시간. 아직 쌩쌩한 관객들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성하훈

 

첫 상영이 끝나고 두번째 상영이 시작되는 2시까지 10여분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혹시나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로비에 나가봤지만 기대하는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밤새 영화보느라 출출해진 배를 달래줄 간식이 없었던 것이다.

 

부산영화제가 '미드나잇 패션'이란 이름붙인 밤샘영화보기는 전주영화제서는 '불면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부천영화제에서는 '심야상영'이란 이름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돼 오고 있다. 부산영화제는 없다가 지난해부터 마련됐다.

 

전주나 부천은 밤새 영화보기로 허기진 관객들을 위해 쉬는 시간마다 간식을 마련해 제공해 준다. 떡이나 빵, 커피나 우유 등 사소한 부분이지만 관객들로서는 고마운 배려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관객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부산에는 밤새 영화보는 관객들을 위한 배려는 존재하지 않았다. 촉박한 다음 상영시간 때문에 간식거리를 사러 나갔다 오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시상영 원칙에 따라 조금이라도 늦으면 다음 상영이 끝날 때까지는 하염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두번째 쉬는 시간. 피곤을 못이겨 잠든 관객들이 눈에 띈다.

두번째 쉬는 시간. 피곤을 못이겨 잠든 관객들이 눈에 띈다. ⓒ 성하훈

 

두번째 영화는 애니메이션인 <필름 느와르.> 만화영화지만 제목처럼 어둡고 느와르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내용과 잘 어우러진 3D 입체영상은 주위배경을 실사영화로 느끼게 할 만큼 세심하게 만들어진 게 인상적이었다.

 

경찰관 살인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을 알게 된 후 직접 사건을 해결하려 나서지만, 자신의 과거를 파헤칠수록 불리해져 가는 상황을 헤쳐나가는 게 기본적인 이야기구조다. 애니메이션이지만 성인영화 못지않게 섹스와 폭력이 난무하는 작품. 그래서 미드나잇 패션에 선정된 것으로 여겨졌다.

 

두편의 영화가 끝난 시간은 새벽 3시 40분 정도. 밤이 깊어지자 밤샘을 즐기러 온 관객들도 하나둘 몰려오는 잠을 못 이겨낸다. 졸린 눈을 비비거나 의자에 앉아 잠을 청하는 관객도 여럿 눈에 띄었다.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일행들과 이야기 나누던 3명의 20대 관객은 집이 부산이라고 했다. "미드나잇 패션은 올해 처음 보는 것이라며 예매를 못해 아침 7시 30분부터 줄 서 겨우 표를 구했다"고 한다. "영화제 때 영화 자주 보는 편인데, 오늘 영화는 지루하지 않고 재밌는 작품들이 선정된 것 같다"며 미드나잇 패션에 후한 평을 했다.

 

2번째 상영이 끝난 후 피곤함에 지친 관객들이 일부 자리를 떠서인지 세번째 작품이 시작될 무렵에는 빈자리들이 눈에 많이 띈다. 영화보러 온 건지 잠자러 온 건지 모를 만큼 첫작품 끝난 이후 내내 눈을 감고 있는 관객도 한두명씩 보였다.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전혀 안한다.

 

마지막으로 상영된 <인사이드>는 심각할 정도로 잔인한 영화. 끔찍한 장면에 부담을 느낀 관객들이 하나둘 중간에 나갈 만큼, 많은 공포영화들이 붙이는 '노약자나 임산부 관람금지'라는 상투적인 문구가 이 영화에서만큼은 단순한 광고가 아니었다. 차마 못보겠어서 간간이 손으로 눈앞을 가리는 관객들도 많았다.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그 잔인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드나잇 패션'에 선정되기 가장 알맞은 영화였지만 선혈이 낭자한 거친 화면에 상당한 부담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덕분에 슬며시 몰려오던 잠이 싹 달아났지만.

 
 영화상영이 끝나고 극장을 빠져 나가는 관객들

영화상영이 끝나고 극장을 빠져 나가는 관객들 ⓒ 성하훈

 
부천영화제나 전주영화제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밤샘 영화보기가 부산에서 역시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해 보였지만 부천이나 전주에서와는 달리 부산에서의 밤샘 영화보기는 많은 차이점을 갖고 있었다.
 
그 차이점은 작품이나 섹션의 이름이 아닌, 위에서 언급한 관객들에 대한 배려 부분이었다. '심야상영'의 작품이나 형식은 세 영화제 모두 같았지만 관객을 대하는 자세나 마음은 부산이 가장 떨어져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제를 즐겨 찾는 관객들이 감동하는 것은 어떤 큰 행사나 이벤트보다는 관객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부산영화제의 마음이 전해질 때다. 말로는 재밌게 즐기라고 하면서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끝난다면 어느 관객이 서운한 마음을 갖지 않을까? 관객들의 열성이 키워낸 영화제에서 말이다.
 
"전주에서는 간식도 신경써서 준비해 주던데."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다는 말에 아쉬운 듯 한마디 던지는 어느 관객의 심정을 조직위 관계자가 꼭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야시간 영화가 좋아 밤 새우기를 마다 않는 열성 관객들의 마음에 부산영화제가 작게라도 반응해 줬으면 하는 것이 밤새 영화를 보고난 느낌이었다.
 
아직 동트지 않아 어눅함이 깔려 있는 메가박스 1층. 영화를 보기 위해 밤샘 노숙한 사람들의 기나긴 줄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2007.10.07 17:46 ⓒ 2007 OhmyNews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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