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응원열기 인천 유나이티드의 서포터들이 연막탄을 터트리며 응원 열기를 올리고 있다.

▲ 뜨거운 응원열기 인천 유나이티드의 서포터들이 연막탄을 터트리며 응원 열기를 올리고 있다. ⓒ 박상익


24살 야구소년, K리그와 만나다

나는 야구팬이다. 아니 야구광이다. 야구에 완전히 미친, 속된말로 '야구빠돌이'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프로야구 중계로 태교를 했고, 초등학생 시절엔 동네야구로 날이 저무는 줄 몰랐다. 한때 어설프게 야구선수의 꿈을 꾸다 쉽게 접어버리고 고등학생 때부터 사회인야구를 했다. 2000년부터 시작한 운동이나 햇수로만 8년째다.

남자라면 이것저것 구기에 관심이 많을 법도 하지만 나에겐 오직 야구뿐이었다. 찾아가본 경기장이라고는 잠실, 문학, 동대문, 무등… 죄다 야구장이었다. 사실 축구장은 한 번 가보긴 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 때 공짜표로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본 것이 전부다. 그런 내가 스스로 축구장을 찾았다. 주변의 친구들이 모두 놀랐다. "네가 웬일로 축구장이냐?" "요새 KIA가 죽을 쑤니까 축구로 전향하기로 했구나. 불쌍한 녀석."

나를 축구장, 그것도 상암구장도 아닌 한 시간도 넘는 거리에 있는 문학구장으로 이끈 것은 영화 <비상>이었다. 장외룡 감독 아래 똘똘 뭉쳐 2005 시즌 준우승을 일궈낸 11명의 챔피언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한 편의 스포츠 드라마. <비상>은 야구 금단증세가 심했던 말년병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개봉 후 반년 동안 미뤄졌던 DVD가 출시되어 심심할 때나 희망을 얻고 싶을 때 수시로 찾았던 그 영화는 결국 날 바람이 부는 토요일 저녁, 인천 유나이티드와 수원 삼성의 경기가 열리는 문학구장으로 인도했다.

야구장 옆 동네에 축구장이 있었네

사실 문학구장은 그리 낯선 곳이 아니다. KIA와 SK의 프로야구 경기가 있을 때면 친구들과 함께 종종 찾곤 했다. 그런 야구장을 지나쳐 축구장에 들어가려니 일탈의 짜릿함이랄까? 기분이 묘했다. 일반석 출입구 앞에 도착하니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 일정을 나타낸  현수막이 인상적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려니 원정팀 관중을 한쪽으로 유도하는 안내판이 있었다. 같이 온 친구가 한마디 했다. "영국은 경찰이 팬들을 에스코트까지 해준다구. 언제 딴짓을 할지 모르니까."

귀를 때리는 음악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경기를 보는 것 만큼 지루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상>을 여러 번 보면서 난 인천의 주장 '그라운드의 미친소' 임중용의 팬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전반 25분경 수원의 공격수 에두와 임중용이 충돌하더니 주심은 부심과 상의 후 에두에게 경고, 임중용에게 퇴장 조치를 내렸다. 순간 인천의 관중석은 심하게 술렁거렸다.

곧이어 인천의 전재호마저 거친 파울로 퇴장을 당했다. 순식간에 11 대 9로 싸우게 된 상황. 처음 본 프로축구 경기에 퇴장 2명은 분명 흔한 일은 아니었다. 친구의 탄식 "내가 한 명 퇴장당하고도 역전하는 경기는 봤는데 2명 퇴장당하고 이기는 경기는 못봤어. 오늘 힘들겠다…."

이미 경기 초반에 선제득점을 당하고 마친 전반전. 수적 우위를 내세워 안정적 경기를 펼칠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 달리 수원은 후반 시작과 함께 연거푸 두 골을 성공시켰다. 점수는 3대0. '안돼… 내 생애 첫 프로축구 관람을 이런 허무한 시합으로 끝낼 순 없다고!'

 서포터들의 연막 응원으로 축구장은 금세 희뿌옇게 변했다. 인천이 수원의골문을 향해 프리킥을 시도하고 있다.

서포터들의 연막 응원으로 축구장은 금세 희뿌옇게 변했다. 인천이 수원의골문을 향해 프리킥을 시도하고 있다. ⓒ 박상익



6강 플레이오프를 노리는 다크호스답게 인천은 투지를 발휘했다. 데얀의 페널티킥과 방승환의 만회골로 거센 추격전을 펼쳤다. 상대보다 두 명이 적은 팀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의 폭발적인 움직임이었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 친구에게 물었다.

"야 승욱아. 군대에서 프리미어리그 볼 때는 엄청 폭발적이면서 빠르고 재밌잖아. 그러다가 전역하고 K리그 중계를 보니까 완전 안습이더라. 그런데 웃기는 게 경기장에 오니까 왜 이렇게 빠르고 재밌는거냐?"

"예전에 한국이랑 그리스랑 잉글랜드에서 시합을 한 적이 있어. 그런데 그 중계를 프리미어리그 식으로 하니까 장난 아니었다구. 아무래도 카메라 문제인데 한국에선 많은 카메라를 축구 경기에 쓰기 힘들 거야. 오죽하면 중계라도 해주는 게 감지덕지라잖냐."

분명 경기장에서 보는 축구는 매우 흥미진진했다. 선수들은 끊임없이 치고 달리고 움직였으며 발놀림 하나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아… 나는 이런 것도 모르고 중계만 보면서 애꿎은 국내 리그만 탓하고 있었다니.

분노한 관중... 축구팬도 물병을 던지는구나



결국 경기는 3-2. 수원 삼성의 신승이었다. 하지만 경기 결과를 떠나 혼신의 힘을 다한 양팀 선수들 모두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경기가 끝나고 시작됐다. 전반에 있었던 임중용의 퇴장이 문제가 된 것. 인천은 후반전이 치러지는 도중 전반전에 에두가 임중용에게 침을 뱉는 장면을 여러 차례 관중들에게 보여줬다. 임중용만 피해를 봤다는 생각에 불만을 품었던 관중들은 흥분했고 그것은 경기 종료 후에 폭발했다.

관중들은 선수들이 입장하는 통로와 벤치 쪽으로 수십 개의 물병을 던졌다. 그라운드는 난장판이 됐고 심판들은 경기장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수원 선수들은 다른 출입구로 빠져나갔으며 곧이어 심판들도 도망치듯이 그라운드를 벗어났다.

흥분한 팬들의 욕설이 끊이지 않았다. "단장입니다! 오늘 잘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쳐 주시고 오늘은 이만합시다!" 인천의 안종복 단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아 팬들을 달래도 사람들의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구단 보안요원과 서포터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순간 '야구팬들이 판정에 불만을 품고 거세게 항의한다면 단장이 나와서 직접 설득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하긴 얼마 전에 KIA 팬들이 성적에 불만을 터트려 구단 버스를 막아 결국 주장과 감독이 나와 사과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굳이 새로울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시민구단으로서 단장과 팬이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런 ‘직접대화’도 있는 것이 아닐까?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판정의 내용과 상관없이 항의를 할 때 심판을 거칠게 밀어붙이는 행위도 직접 보니 놀라웠다. 야구는 메이저리그만 하더라도 심판의 털끝 하나만 잘못 건드려도 즉시 퇴장이다. 한국도 예전과 달리 심판에게 물리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판정에 불만이 있다고 해서 여러 명의 선수가 둘러싸 심판을 밀치는 모습은 그렇게 보기 좋아 보이지 않았다. 축구에도 심판에 물리력을 사용할 때는 중징계를 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하면서도 달랐던 축구장

끊임없이 움직이고 응원가를 부르는 서포터. 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뿌연 연막탄과 팀을 상징하는 대형 깃발. 경기를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두 개의 대형 전광판. 야구장에 익숙한 나로서는 많은 것이 새로워보였다. 옆에 있는 문학구장과 굳이 비교한다면 경기장에 패스트푸드점이 없었다. 야구처럼 매일 경기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지를 맞추기 힘들 것이다.

오늘 열리는 경기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야구장에 없다. 각종 이야기와 선수단 정보가 적힌 프로그램은 경기를 관람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야구장에도 많이는 아니더라도 재미있는 정보가 담긴 한 두장짜리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장 시설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최신 구장이기 때문에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그러나 화장실에 물비누가 하나도 채워지지 않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주 열리는 경기가 아니라면 오히려 더 사소한 것에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또한 600ml 음료수 하나에 1500원이나 하는 비싼 매점도 이용하기엔 편치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간 K리그 축구장. 실력은 기대 이상, 잦은 항의와 몸싸움은 예상 외였다. 생각보다 박진감 넘치는 프로축구는 매력적이었다. 나도 좋아하는 팀이 생겼으니 종종 축구장을 찾아와야겠다. 아참! 인천 유나이티드는 무료 회원 가입 후 인터넷 예매를 하면 입장료가 4000원이다. 부담 없는 착한 가격이 자꾸만 날 축구장으로 부른다. CU@KLEAGUE

판정 시비와 관련한 인천 유나이티드의 말말말
협회 징계 받겠죠. 상관없습니다.
이진택 운영팀장은 문제가 된 에두의 침 뱉기 장면을 여러번 재생한 것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많은 팬들이 모여 좋은 경기를 보셔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면서 격앙된 표정이었다. FIFA에서는 오심이나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다시 보여줄 경우 팬과 선수, 팀 관계자 모두 흥분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금지하고 있다.

똑같이 해야지 당한 놈한테 퇴장입니까? 수원은 우리가 베스트로 나가면 게임 안돼요.
김석현 부단장. 그는 임중용의 퇴장을 두고 "심판의 판정이 매우 부당하다"며 "결국 수원에 유리한 판정"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 부단장은 "수도권 팀끼리는 라이벌 관계로 흥행 파이를 키워야 하는데 이런 것들(판정시비)이 아쉽다 "며 "우리 팀은 드라간 칼레 김상록이 오늘 스타팅 멤버에 빠졌다"고 말했다. 수원의 멤버가 좋긴 하지만 베스트 멤버라면 인천은 만만한 팀이 아니라는 것.

심판에게 정신차리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경기 초반 보복행위로 퇴장을 당한 인천의 주장 임중용은 "자신의 행위가 하나도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에두와)같이 퇴장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자신에게만 퇴장 명령을 내린 심판의 판정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특정 팀에 유리한 판정이 이뤄진다면 경기를 제대로 할 수 없다"면서도 곧 다가오는 FA컵 4강전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인천 유나이티드 수원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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