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를 두 번째 '접수'했습니다. 2년 전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안 감독은 8일 오후(현지시각) 폐막한 제64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색, 계 Lust, Caution>로 다시 한번 최고의 영예를 안았어요.

 베니스영화제의 승자 이안 감독

베니스영화제의 승자 이안 감독 ⓒ 제64회 베니스영화제


대만 출신의 이안 감독은 "이 상은 내게 과분하다"며 겸손한 수상 소감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이런 겸손에 비해 이안 감독은 1992년 <쿵후 선생>으로 데뷔한 이래 불과 15년 만에 최정상의 감독으로 올라 선 것이 사실입니다. 일찌감치 1993년 <결혼 피로연>으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바 있고 1995년 <센서 앤 센스빌리티>란 작품으로 성공적으로 할리우드에 안착했죠.

이후 <와호장룡>이 북미 박스오피스 점령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촬영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하고,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동세대 외국인 감독의 반열에 올랐죠.

<색, 계 Lust, Caution>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첩보 스릴러로 알려져있습니다. 오우삼의 <적벽대전>에 주유 역할로 출연하고 있는 세계적인 홍콩 배우 양조위와 <마지막 황제>의 조안 챈, 중국의 신예 탕예위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영화제 상영 중에 농도 짙은 애정신이 비춰진 예고편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으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아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네, 이안 감독의 전작 <브로크백 마운틴>은 게이를 주인공으로 삼아 중국에서 상영 금지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여러모로 대만 출신의 유학파 감독인 이안의 행보가 부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이안 감독의 <색, 계>

이안 감독의 <색, 계> ⓒ CJ엔터테인먼트


올 베니스영화제의 특징 중 하나는 할리우드를 적극적으로 껴안았다는 데 있습니다. 경쟁부문 상영작 중 11편이 할리우드 영화거나 미국과의 합작 영화였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주요 부문에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배우와 감독이 휩쓴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히치콕의 '적자' 브라이안 드 팔마 감독은 <리덱티드>로 감독상을 가져갔습니다. 네, 영화제 단골 손님이지만 수상은 처음이죠. 이라크전을 배경으로 4명의 미군이 14살짜리 이라크 소녀를 윤간한 뒤 살해한 사건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장르에 천착하던 감독이 오랜만에 다큐멘터리 화법을 빌린 정치 영화를 들고 나온 셈이죠.

주연상 명단도 화려합니다.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챗입니다. 먼저 브래드 피트는 시대극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에서 콧수염을 단 제시 제임스 역할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졸리에게 감사한다"는 의례적인 수상 소감으로도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스타지만 최근에는 <바벨>과 같은 작품성 있는 영화에도 얼굴을 부지런히 비추고 있죠.

<엘리자베스>로 유명한 케이트 블란챗은 밥 딜런의 일대기를 다룬 <나는 거기에 없다>로 여우주연상을 가져갔습니다. <나는 거기에 없다>는 <벨벳 골드마인> <파 프롬 헤븐>의 토드 헤인즈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히스 레저, 크리스찬 베일, 리차드 기어, 줄리안 무어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작품입니다.

이밖에 주요 수상 목록을 살펴보면 촬영상은 <색, 계>의 로드리고 프리에토가, 각본상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 이은 신작 <자유로운 세계>를 들고 온 영국의 좌파 켄 로치 감독이, 은사자상은 압델라피트 케시셰 <씨앗과 노새 La Graine Et Le Mulet>와 토드 헤인즈 <나는 거기에 없다>가 수상했습니다. 러시아의 니키타 미할코프는 <12>로 특별 사자상을 받았습니다.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팀 버튼(오른쪽)과 그의 영화 친구 조니 뎁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팀 버튼(오른쪽)과 그의 영화 친구 조니 뎁 ⓒ 제64회 베니스영화제


이례적으로 할리우드의 악동 팀 버튼 감독은 최연소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한국영화는 부진을 면치 못한 가운데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작품 <천년학>이 비경쟁부문에 상영됐고, 오리종티 부문에 초청된 전수일 감독의 <검은 땅의 소녀와>는 국제예술영화관연맹상과 리나 만지아카프리상을 수상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이안 감독에게 영예를 표한 올 베니스 영화제. 이탈리아에서 거대 영화제로 새롭게 출발한 로마국제영화제와의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할리우드 영화와 거장들을 껴안았다는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뭐, 세계 3대 영화제가 게으르다는 비판을 받기 시작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니까요. 어쨌건 아시아계 영화인인 이안 감독의 수상에 박수를 보냅니다.

* 각 부문 수상작/자 리스트
-황금사자상: <색, 계> 이안, 미국, 중국, 대만
-은곰상: <리댁티드> 브라이언 드 팔마, 미국
-심사위원특별상 : <곡물과 노새 La Graine Et Le Mulet> 압델라피트 케시셰, 프랑스
<나는 거기에 없다> 토드 헤인즈, 미국,
-남우주연상: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브래드 피트, 미국
-여우주연상: <나는 거기에 없다> 케이트 블랜쳇, 미국
-신인배우상: <곡물과 노새> 합시아 헤지, 프랑스
-촬영상: <색, 계> 로드리고 프리에토, 미국, 중국, 대만
-각본상: <자유로운 세계> 켄 로치, 영국
-특별곰상: 니키타 미할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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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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