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 관중이 몰린 요인(?) 중 하나인 경기 안내 포스터. 이 포스터는 경기 며칠 전부터 수원 지역 상가를 비롯해 아파트 등에 나붙었다고 한다.
ⓒ 수원 삼성
19일 오후 수원역 앞 버스 정류장. 파란색 수원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삼삼오오 모여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2007 삼성 하우젠 K-리그 17라운드 경기가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의 애칭)에서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경기 시작은 오후7시지만 대관중이 몰린다는 소문에 이들은 좀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찍 길을 나선 것이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720번 버스. 이 구간 운행만 5년째라는 한 기사는 "오후5시 경기인 줄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경기장을 찾는 손님들은 보통은 한 시간 반 전부터 타기 때문. 그러나 상대가 '서울'이라는 것을 알아듣고는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보였다. 그는 "경기가 있는 날이면 파란 유니폼을 입은 손님들로 버스가 가득 찬다"고 수원의 축구 열기를 전한 뒤 "서울, 성남 등과 경기를 하면 유독 관중이 더 많다. 지난 수요일(15일) 성남과의 경기 때는 몇 개의 정류장을 그냥 지나쳐야 했다"고 웃으며 설명했다. 같은 시간 서울팬 정미성(34)씨는 친구와 서울 사당역에서 수원으로 오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 줄로 인해 버스를 무려 다섯 대나 보내야 했지만 꾹 참고 수원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는 다수의 수원팬과 함께 와야 했다. 그래도 팀의 승리를 지켜보기 위해서라면 어떤 고생이라도 괜찮다며 위로를 했다. 오후4시 : 기 싸움이 시작됐다
 수원 서포터 '그랑블루'의 카드섹션. '축구 수도'라는 글귀로 응원의 서막을 알렸다.
ⓒ 이성필
경기장 개방 한 시간 전인데도 출입구 앞은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관중이 긴 줄을 형성하고 있었다. 매표소에도 입장권을 구매하기 위해 긴 줄이 만들어졌다. 북쪽 관중석 주변에는 수원 서포터 '그랑블루' 내에서도 유명한 한 소모임이 '서울 팬들은 빅버드에 오지말라'는 의미가 담긴 구호를 외치며 장외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이러한 분위기에도 몇몇 서울 팬들은 빨간 유니폼을 입고 일찍 경기장에 도착해 수원 팬과 은근히 기 싸움을 벌였다. 잠시 뒤 네 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온 원정 응원단과 개별적으로 온 팬들이 합류하면서 양 팀 팬들의 응원 열기는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개방시각인 다섯 시보다 10분 일찍 개방되자 경기장 밖에서 긴 줄을 형성하며 기다리고 있던 팬들이 우르르 관중석으로 들어왔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수원 관계자는 "다른 관중석은 다 찰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문제는 원정 팬들이 자리하는 남쪽 관중석"이라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기도 했다. 원정 팬들이 많이 오지 않을 것을 예상하는 발언이었다. 서울 팬에게는 다소 신경 쓰이는 관전이 시작됐다. 이들의 응원석인 남쪽 관중석 2층 난간에는 연고이전으로 팀이 없어진 안양 팬들이 걸어놓은 현수막이 자리했기 때문. 안양시를 상징하는 기와 함께 '안양은 죽지 않는다'는 현수막이 내걸린 것이다. 이 현수막은 잠시 철거됐다가 개문과 동시에 남쪽 관중석 2층 난간 중앙에 내걸렸다. 안양 팬들이 걸어놓은 현수막을 본 서울 팬들이 항의를 했다. 경호원들이 나서 중재에 나섰지만 특수한 관계가 돼버린 이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층 통로 한쪽에 양쪽 대표자들이 모여 조율을 시도하는 동안에도 안양 팬과 서울 팬 사이에 신경전은 계속됐다. 오후6시 : 대목을 맞이한 암표상
 경기 전 남측 관중석 2층 난간에 안양 팬들이 현수막을 걸고 있다. 이를 지켜보던 서울 팬들은 경기 시작 후 같은 자리에 자신들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 이성필
"내가 뭘 잘못 했다고 그래, 경찰 불러." 경기장 밖 매표소를 서성거리며 관중에게 암표를 팔던 암표상이 매표 관리자에게 적발됐다. 그러나 암표상은 시치미를 떼며 "경기 관전을 위해 표를 산 것"이라고 주장했다. 암표상 오 아무개 씨는 "어제(청소년 월드컵), 오늘은 우리에게 대목이나 다름없다. 이럴 때 장사하지 언제 하느냐"며 관중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전날 수원 종합운동장에서 치러진 17세 청소년 월드컵의 경우 모든 좌석이 매진됐다. 가장 저렴했던 3000원짜리 표가 1만 원이 넘게 거래됐다고 한다. 이날 암표상이 제시한 표 값은 응원하면서 볼 수 있는 골대 뒤쪽 자리가 본래 가격인 1만 원보다 높은 2만 원 정도. 일부 팬들은 울며겨자먹기로 이 표를 사서 입장해야 했다. 입장해서도 계단에 앉아 본 관중이 부지기수였다. 이날 무려 4만 1819명의 관중이 경기장에 입장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후폭풍이 불던 7월 21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 4만 2280명(2002년 7월 21일 부산전)이 빅버드에 입장한 이래 두 번째로 많은 관중이면서 동시에 K-리그 전체 9위의 입장 기록이다. 오후7시 1분: 화려함 VS 조직력 최광보 주심이 분 호각 소리에 맞춰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 직전까지 남쪽 난간에 걸려있던 안양 팬의 현수막은 서울 서포터 '수호신'에서 '그대들이 가는 길 우리가 지켜주리라'로 바뀌어 있었다. 경찰이 관중석에 나눠 자리해 이들의 충돌을 감시했다. 한쪽 구석에는 지난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A컵 16강에서 수원 팬들이 걸어놓은 'Here's 2nd Bigbird'라는 현수막에 맞대응이라도 하듯 'Here's The Largest 닭장'이라는 걸개가 걸렸다. 양 팀 간의 겨루기가 아니고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수원 서포터 '그랑블루'에서는 카드섹션을 선보였다. '축구 수도'라는 글귀의 카드섹션은 올해 개막전 이후 두 번째로 선보이는 것이다. 이에 맞서 서울은 대형 깃발을 돌리며 응원에서 밀리지 않으려 애를 썼다. 0-0으로 팽팽하게 진행되던 경기는 전반 종료 직전 균형이 깨졌다. 전반 45분 박성배가 왼쪽 측면에서 가로지르기 한 것을 이관우가 오른발 발리슛으로 골문에 넣은 것이다. 순간 경기장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수원 팬들은 이관우를 '별보다 멋진 남자'라 불렀다. 빅버드의 환호는 후반전에도 이어졌다. 후반 5분 이번에는 '폭주기관차' 김대의가 골을 넣었다. 이관우가 미드필드에서 연결한 볼을 골문으로 몰고 간 뒤 수비수를 제치고 슈팅, 서울의 김병지가 미쳐 손을 쓸 틈도 주지 않고 골대 그물을 뒤흔들었다. 수원 팬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좌우로 움직이며 환호했다. 반면 서울 팬들은 잠시 망연자실하더니 이내 목소리 높여 다시 응원을 시작했다. 서울은 후반 12분 고명진이 수원의 포백수비 뒷공간으로 넘겨 준 패스를 김동석이 달려들어 골로 연결하며 추격을 시작했다. 서울의 추격이 시작되자 수원 장내 아나운서는 "수원 삼성을 외쳐보자"며 관중을 독려했고 서포터 '그랑블루'는 이에 맞춰 큰 함성으로 관중의 응원을 유도했다. 상대적으로 적었던 서울의 '수호신'은 다양한 동작과 목소리로 대응했다. 오후8시 53분: 엇갈리는 표정의 양팀 응원단 2-1, 수원의 승리로 경기가 종료되자 4만여 팬들은 모두 일어서 수원 선수들에게 손뼉을 치며 격려했다. 수원팬 이진욱(27)씨는 "경기내용이나 응원이나 우리가 모두 승리했다. 서울 팬들은 원정응원 좀 더 와서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승리의 기쁨을 표현했다. 반면, 서울팬 조성민(34)씨의 표정은 굳어져 있었다. 다른 경기에서 패하면 그럴 수 있겠지만 수원에 패하니 더욱 속이 쓰린 것이다. 조씨는 "팀이 6강 플레이오프에 진입해 다시 한 번 수원과 만나 그때는 5-0으로 승리했으면 좋겠다. 그날을 기다리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FA컵을 포함해 네 번을 만나 치열하게 싸운 두 팀은 이날 경기를 끝으로 겨루기가 종료됐다. 상대 전적에서는 3승2패(FA컵 승부차기에서 서울 승)로 수원이 앞섰다.

덧붙이는 글 경기결과

수원 삼성 2-1 FC서울

(득점:전45, 이관우 도움:박성배 후5, 김대의 도움:이관우<이상 수원> 후12, 김동석 도움:고명진<이상 서울>)

수원 삼성

GK-이운재
DF-마토, 이싸빅, 곽희주(H, 문민귀)
MF-김대의, 김남일, 이관우(후21, 남궁웅), 조원희, 송종국
FW-박성배(후8, 서동현), 에두

FC 서울

GK-김병지
DF-아디, 김치곤(H, 윤홍창), 박용호, 이정열
MF-고명진, 김동석, 김한윤(후33, 김한윤), 최원권
FW-안상현(후44, 천제훈), 두두
빅버드 수원 삼성 FC 서울 그랑블루 이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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