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 끝에 악수라고 했던가? 올림픽 축구팀 감독으로 '현 부산아이파크'의 박성화 감독이 선임되었다. 필자가 일부러 박성화 감독의 현직에 강조 표시를 한 것은 그가 지난 달 18일 부산을 맡은 지 겨우 보름 만에, 그것도 FA컵 16강전 단 한 경기를 치르고 올림픽팀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고 끝에 악수라는 표현까지 쓴 것인데, 일각에서는 올림픽팀과 부산팀을 겸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는 의견이 있으나, 이는 또다시 바둑의 용어를 빌리자면, '묘수 세 번이면 악수'가 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박성화 감독, 보름 전에 부산팀 맡았는데...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 걸린 부산아이파크 응원 플래카드
ⓒ 정윤수

근래 들어 부산만큼 감독 때문에 홍역을 앓는 팀도 없다. 2006년 4월 이안 포터필드 감독이 사임한 후 한동안 김판곤 대행체제를 유지하다가 스위스 출신의 엔디 에글리 감독이 부임하여 신선한 분위기를 주도하였으나,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지난 6월 중순에 사표를 냈다. 그 막간을 잠시 김판곤 코치가 맡다가 박성화 감독으로 새 다짐을 한 것이 겨우 보름 전의 일이다.

박성화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부산은 국내외 축구인 100여 명이 지원하여 잠시 즐거운 고민을 겪기도 했다. 야심만만한 초등학교 감독에서 초일류 구단 공약을 내세운 일반인도 있었다. 지금 당장 어느 팀을 맡아도 손색이 없을 니폼니시 전 부천 감독, 잉글랜드 대표팀 공격수 출신의 폴 마리너,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크로아티아 대표팀을 맡았던 즐라트코 크란차르 등도 지원했다.

 경기 직전에도 항상 정장을 차려입는 부산아이파크 선수들.
ⓒ 정윤수

어쨌거나 박성화 감독이 선임되었고, 그는 비슷한 시기에 그라운드로 돌아온 대전시티즌의 김호 감독과 지난 1일 FA컵 맞대결을 펼쳐 2:0으로 첫 승까지 획득했다. 이 경기에서 두 골을 뽑아낸 심재원 선수는 박성화 감독에게 달려가 포옹을 하는 득점뒤풀이를 펼쳤는데 누구라도 골을 넣으면 그렇게 하자고 사전에 약속했었다고 한다.

그만큼 2년 가까이 사령탑 홍역을 치른 부산 선수들의 각오는 남달랐던 것이고, 더욱이 올해 상반기에 자신들의 홈 경기를 부산MBC를 통하여 해설을 해온 박성화 감독이었기에 더욱 반가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또 다른 감독이 올 때까지 부산 선수들은 '환영 득점뒤풀이'를 유보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부산의 안병모 단장은 "이번 일은 천재지변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부산 mbc 해설위원으로 부산 아이파크 선수들을 관찰해온 박성화 감독
ⓒ 정윤수

그래서 몇 가지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인사가 만사'라고 하지만 그 핵심의 하나는 타이밍인데 아무리 사람이 귀하고 몇몇 후보들에게서 유보적인 사항이 발생했다 해도 새 팀을 맡은 지 보름밖에 안 되는 감독을 불러야 할 정도인지 의아스럽다.

대체로 신임 감독이 새 팀을 맡을 때는 3년의 임기를 약속하고, 팀을 정비하고 새 전술을 연마하여 차츰 성적을 차츰 올리는 것도 1년 이상의 목표로 삼는다. 박성화 감독은 지난 보름 동안 부산 선수단과 서로의 고민과 현 위치, 앞으로의 방향과 그에 따른 훈련과 태도를 심도 있게 나눴을 것이다.

그 모든 진지한 의식들을 원점으로 돌릴 만큼, 어수선한 상황에 휘청거리던 부산이 겨우 자리를 잡아 나가는 것을 무위로 돌릴 만큼, 올림픽 팀이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 자리를 맡을 사람이 박성화 감독뿐인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해왔고 지금의 젊은 선수들과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박성화 감독이라면 '적임자'라는 평을 들을 만하다. 그러나 그는 보름 전에도 난파 위기에 처한 부산을 구할 '적임자'였던 인물이다.

필자가 몇 차례 만나 대화를 나눠본 경험으로도 박성화 감독은 원칙과 유연함을 동시에 갖춘 '덕장'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대표팀 감독은 적어도 1년 이상은 부산을 제 궤도에 올린 다음에야 선택할 카드다. 비록 그때는 베이징 올림픽이 다 끝난 뒤라고 해도 말이다.

축구가 영원하다면 올림픽도 계속 치러야 할 것이고 언제든지 박성화 감독은 덕장으로서의 면모를 발휘할 기회가 또 있는 것이다. 좌초 위기의 부산 선수들이 올림픽팀보다 후순위가 될 이유는 아무래도 찾기 힘들다. 축구협회와 박성화 감독 모두 경솔한 선택을 했다.

 홈 경기에 늘 등장하는 부산아이파크의 상징 '우승이, 연승이'
ⓒ 정윤수

보다 중요한 것은 당장 8월 22일의 올림픽 지역예선 때문에 올림픽 팀 감독부터 선임하기로 한 과정도 짚어봐야 한다. 축구협회는 일단 대표팀과 올림픽팀을 분리 운영하기로 하였는데 이는 반가운 결정이다. 축구를 끝없이 변화 발전하는 유기체로 본다면 젊은 선수들이 올림픽 팀을 경유하여 대표팀으로 성장해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상급 학교에 진학할 때마다 담임교사도 바뀌고 익혀야 할 지식도 바뀌듯이 그동안 핌 베어벡 감독 혼자서 두 팀을 모두 맡은 것은 무리한 기획이었다. 선수 구성이 다르고 상대 팀이 다르고 무엇보다 목표가 다른 두 팀을(2006년 말에는 아시안게임까지 맡아 일시적으로는 세 팀) 베어벡 감독 혼자서 맡은 것은 '무모한 도전'이었고 기계적인 일치였다.

그런데 이제 두 팀을 분리한다고 해서 이를 전혀 상관없는 '두 개의 팀'으로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현재의 젊은 선수들은 거의 대부분 두 팀을 오가며 대회를 치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분리하되, 이를 관류하는 체계까지 사라져서는 안 된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을 넘어 2010 남아공 월드컵까지 아우르는 큰 틀의 체계를 수립해 가면서 올림픽 팀 감독을 선임해야 하는 것이다.

축구협회가 해야 할 일

 팀 부활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부산아이파크의 구호들
ⓒ 정윤수

22일의 우즈베키스탄 경기를 위하여 '임시 감독' 체제로 급한 불을 끌 수는 있을 것이다. 김호곤, 박성화, 홍명보 등이 현재의 젊은 선수들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을 맺은 바가 있으므로 이 중에서 누군가가 한 차례를 책임지는 '소방수' 역할을 해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올림픽 최종 예선도 중요하고 우즈베키스탄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아시안컵에서 활약한 젊은 선수들의 호흡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한 경기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당장은 어수선하고 한시적일지라도, 일의 순서를 바로 잡는 일이다. 2010년까지 준비하기 위한 성인대표팀 감독을 물색하여 제자리를 잡고 그의 축구 철학과 시스템을 유기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구조로서 올림픽 팀과 20세 이하 팀까지를 두루 정비하는 것이 '느리지만 가장 빠른' 길이다.

부임한 지 보름밖에 되지 않는 K-리그 감독을 선임하는 것은 오히려 빠른 듯해도 그 파장은 오래 갈 것이다. 축구협회는 지난 해 6월 월드컵이 끝나기도 전에 핌 베어벡 감독을 '한국 선수들을 가장 잘 안다'는 이유로 선임했다. 당시 아드보카트 감독은 서둘러 러시아행 비행기를 타고 말았다. 그런데 1년 만에 베어벡은 하차했고, 이 과정에서 그를 선임했던 축구협회의 그 누구도 온 몸으로 베어벡을 방어하러 나서지 않았다.

급한 불 끄느라 바쁜 탓일까, 이번에 또 새로운 카드다. 역시 '선수를 가장 안다'는 것이 큰 이유다. 틀리지 않은 기준이지만 큰 기획에 의한 선택은 아니다. 무엇보다 부산 선수들의 하반기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부산의 홈구장, 아시아드주경기장을 갈 때마다 느꼈던 공허감이 그 텅 빈 구장만큼이나 크게 느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결정은 '장고 끝의 악수'이다.

박성화 올림픽팀 축구 부산 아이파크 K-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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