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1@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이 개봉했다.

실패한 소리꾼 유봉, 아비에 의해 눈이 먼 채 떠돌며 소리를 익히고 있는 송화,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유봉과 송화를 떠났던 동호 등 <천년학>에는 임 감독의 1993년작 <서편제>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하고 몇몇 장면에서는 <서편제>의 에피소드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임권택 감독은 <천년학>이 <서편제>의 후속작이 아니라고 말한다.

제작 초반 <천년학>은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난항을 겪은 데다가 크랭크인 직전 유봉에 캐스팅되었던 김명곤씨가 문화부장관의 취임해 캐스팅에서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소리와 연기를 겸한' 중견 배우를 찾느라 애를 태우던 감독과 제작진에게 마침 또 한명의 적임자가 나타났으니, 소리꾼이자 연출가인 임진택이다. 특히 임진택은 창작판소리를 열정적으로 작업하여 <오적> <오월광주> 등의 작품을 직접 짓고 소리를 했다.

판소리꾼 이야기로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백만 관객을 동원하고 자신의 100번째 작품으로 다시 판소리꾼 이야기를 만든 감독 임권택과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판소리 다섯바탕에 머물지 않고 이 시대의 이야기로 새롭게 지은 창작판소리를 불러온 광대 임진택이 만나 <천년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성동본동파동렬 그들, 반갑고 감사하다

광대 "감독님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독님의 100번째 영화에 출연해 감독님과 정일성 촬영감독님, 작가 이청준 선생님, 소리꾼 오정해와 배우 조재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 장민호 선생님을 뵙게 된 것도 뜻밖의 기쁨이었습니다. 한국영화사의 한 획을 그을 이번 작업을 함께한 것은 내 인생에 가장 즐거운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감독 "임진택 선생은 직접 시나리오 과정에도 참가하고, 연기자로도 참가했지요. 소리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깊이있게 보고 있으니까 의문이나 알아야 할 것들이 더 많이 생겨났어요(웃음). 아무튼 <천년학>을 완성하는데 그리고 완성도를 높이는 데 임진택 선생이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랬어요."

@IMG2@광대 "감독님으로부터 출연 요청을 받았을 때 정말 반가웠습니다. 우리는 한집안이잖습니까?(웃음) 감독님과 저는 동성동본 동파 동렬이어서(웃음), 저로서는 감독님이 집안의 큰형님 같기도 합니다. 그런 감독님하고 본격적인 배우로서의 첫 영화작업을 했다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먼저 촬영 중 있었던 에피소드가 한 가지 생각납니다. 제 첫 촬영이 어린 송화와 동호를 데리고 선학동에 들어가는 장면이었는데, 촬영 후 일주일쯤 지나서 감독님이 그 장면 다시 찍자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정일성 촬영감독님도 거드셨구요. 저도 다른 장면들을 촬영하면서 '선학동 들어가는 장면이 <천년학>의 첫 장면이 될 텐데 너무 서투르게 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워낙 많은 스태프들이 움직이고 있으니까 다시 찍자는 말을 못하겠더라구요. 정말 걱정스러웠는데 마침 감독님이 먼저 말씀하셔서 다행이었죠."

감독 "처음 찍으면서 속으로 '다시 찍으려니' 하고 생각했어요.(웃음) 영화가 처음이었으니. 우선 현장 분위기 안에 녹아들어가야 하는데 아직 들어오지도 못하고 있지, 연기자 아닌 사람들은 전부 바깥에 있고 눈은 다 쏠려 있지, 세상없는 연기자도 그런 거예요. 처음부터 그렇게 되리라고 예상했던 거지요(웃음). 며칠 지나니까 많이 좋아졌어요. 페이스를 찾고 분위기 안으로 들어왔어요. 그것도 대단한 일이에요."

소리의 리듬, 영화의 리듬

광대 "영화가 완성되고 저는 기술시사와 VIP시사에서 두 번 <천년학>을 봤습니다. 그런데 정작 개봉 후에는 두려운 마음에 영화관을 못가고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 감독님을 뵙자고 한 것은 영화와 판소리 혹은 소리와 영상에 관해 좀더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서입니다. 벌써부터 영화전문지나 신문 등 언론에서 <천년학>에 대해 상당히 많은 평들이 나오고 있고 모두 근래 보기 드문 심도 있는 평가들이어서 눈여겨 볼 대목들이 많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영화 밖에서 본 사람들이고, 저는 영화를 함께 만든 입장에서 좀 더 할 얘기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벌써 10년 전입니다. 1997년, 제가 국립극장에서 완판 장막창극 <춘향전> 총연출을 했을 때 감독님이 오정해씨하고 관람을 오셨지요. 그 날 감독님이 <춘향전>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판소리영화로 말이지요.

그 때 제가 연출한 5시간짜리 장막창극은 공연시간이 판소리 완창시간하고 딱 일치하는 작품이었어요. 원래의 판소리를 거의 손상시키지 않고 최대한 살리면서 거기에 극을 입혀가는 방식으로 했던 거지요. 그런데 나중에 감독님의 판소리영화 <춘향전>을 보니 조상현 명창 소리에 화면이 함께 가는 방식으로 만드셨더라구요.

저는 그 영화가 완판 장막창극과 똑같은 미학적 근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편제>로부터 시작해서 <춘향전>으로 그리고 이번 <천년학>으로 이어진 감독님의 판소리영화 얘기를 먼저 들려주시죠."

감독 "내가 <서편제>를 영화화하고자 할 때, 사실 판소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덤볐어요. 생각해보니 우리 판소리 중 완창을 들어본 적도 없었고. 그런 공연이 흔치 않았던 것 같아요. 헌팅을 하러 다니면서 '그래도 하나는 들어야 한다'고 해서 조상현 명창의 춘향전을 몇 시간을 들으면서 가는데, 너무 깜짝 놀랐어요. 내가 판소리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으면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그런데 그때는 <서편제>를 덮으려야 덮을 수도 없는 게, 이미 출연료니 뭐니 다 나간 판이었으니까요.

@IMG3@그 때 조상현 선생 판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만약에 이것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 봤어요. 그 당시에는 영화 배경에 가요나 음악을 입히는 것 이상은 내가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춘향전> 어디를 잘라서 두 시간으로 만든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고, 소리를 관객이 알아듣기 쉽게 배경으로 넣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곤 속으로 덮어버린 거죠. 명색이 감독이라는 사람이 판소리라는 것 뒤에서 네 시간, 다섯 시간 필름 입히는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누가 하자고 할 사람도 없을 테고 그런 생각이었죠. <서편제>를 끝내고 '<동편제> 하자, 뭐 하자' 별 유혹이 많았지요. 그게 다 철없는 소리예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춘향전>을 나도 한번 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싹트면서 완판창극 <춘향전>을 보러 간 거지요."

광대 "저는 그 때쯤 감독님이 절더러 함께 하자고 연락이 올 줄 알았죠. 한참 기다리고 있었는데 <춘향전>이 개봉을 하더라구요(웃음).

저는 오랫동안 마당극을 하고 판소리를 창작해 온 입장에서 '우리 고유의 영상미학은 없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만다라>와 <서편제>을 보면서 그러한 궁금증을 푸는 것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전통연희에는 영화라는 기술이 없었잖아요? 그렇다고 옛사람들에게 영상적 감각이 없었던 것은 아닐 텐데요. 영상 기술이 없었다는 것이지, 시지각의 오묘함을 옛사람들이라고 안가지고 있었을 리 없지요. 옛사람들의 그림을 보더라도 분명 그러한 다양한 시지각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천년학>을 계기로 우리가 앞으로 더욱 중요하게 포착하고 천착해야 할 것이 '한국적인 고유한 영상미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님이 100편의 영화를 통해 보여준 독특하고도 고유한 영상미학을 자산으로 앞으로 후학들이 더욱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내야 할 거라고 봅니다."

감독 "내가 <춘향전>이라는 얘기를 판소리에 붙여 영화화해야겠다고 한 이유는 그 전 영화들이 그것을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동안 열 몇 편의 영화 <춘향전>이 있었지만, 내 기억으로는 판소리가 갖는 맛과 감흥이 배제된 채 찍은 것들이죠. <춘향전> 하면 판소리가 바로 떠오르는데 어떻게 판소리 한번 안 들어본 사람들이 <춘향전>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내가 소리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다 하더라도, 판소리가 주는 감흥에 대해서는 저 깊은 속에서 울리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판소리로부터 받은 감동을 <춘향전>이라는 얘기에 같이 섞고자 시도했던 겁니다.

이것은 판소리가 주는 리듬까지 포함하고 있는 얘긴데요, 서양 리듬과는 다른 우리 가락이 갖는 리듬과 거기서 나오는 감흥을 카메라 워킹과 배우의 연기와 어떻게 하나로 어우러지게 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물론 판소리가 가장 중심에 있으면서 우리 자연과 한국인의 삶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잘 조합하고 조화롭게 융화시켜 판소리가 갖는 속도감이나 리듬을 영화로 드러내느냐 하는 목표가 있었어요. 실제로 드러났는지는 모르겠으나 목적은 거기 있었지요."

@IMG4@판소리는 영화다

광대 "영화의 패스트 모션과 슬로우 모션은 판소리의 휘모리 장단이나 진양조 장단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예를 들어 <춘향가> 중 '십장가' 장면에서는 장단이 느린 진양조로 바뀌면서 극한적인 고통이 표현이 되는데, 저는 이 대목 판소리를 들으면서 영화의 슬로우 모션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흥보전>에서 박속에서 나온 쌀로 밥을 지어먹는데, 자식들이 모두 밥 속에 들어가 '던져놓고 받아먹고, 던져놓고 받아먹고' 하는 대목에서는 패스트 모션의 장면이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제가 판소리를 한창 연구하고 창작할 무렵 '판소리는 그림이다' 또는 '판소리는 연속되는 그림이기 때문에 결국은 영화다'라고 규정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판소리의 영화적 미학이랄까, 영화의 판소리적 미학이랄까, 판소리적 구조가 원리로 작동하는 영화, 판소리와 같은 리듬을 타고 가는 영화, 이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많이 느꼈습니다. 이를테면 <서편제>는 판소리와 소리꾼을 담은 판소리 영화이지만, 영화를 전개하는 원리는 판소리적 미학을 구현하는 작품은 아니라고 볼 수 있지요. 그래서 판소리적 미학을 구현하는 작품이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 <춘향전>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감독 "나는 <춘향전>에서 소리가 갖는 리듬하고 영상이 갖는 리듬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해봤어요. '방자 춘향이 부르러 가는 대목'이 그와 같은 경우인데, 지금 임진택 선생이 말한 소리 전반에 대해, 소리가 갖는 어떤 흐름 자체를 영화로 표현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어설픈 짓을 했다가 소화불량이 되면 영화 자체가 이상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오늘 얘기를 듣고 보니까, 판소리의 리듬과 소리를 좇는 작업을 훌륭하게 해낸다면 대단한 영화가 될 수 있을 것도 같네요. 아쉽게도 그것은 내가 넘을 수 있는 그런 세계는 아닌 것 같아요. 내가 아직 소리 안에 깊게 들어가 있지 못하다는 것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성창순 선생이 '임 감독은 소리를 깊이 듣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아마 소리가 갖는 감흥과 보이는 영상이 일치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데서 온 것 같아요. 그 이상은 언감생심이라는 것을 알지요."

@IMG5@광대 "감독님 영화에는 해설자가 등장해 설명해주는 방식이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화의 서사 밖에 있는 객관적 해설이라기보다 등장인물의 대화나 대사에 녹아있는 해설인데, 언뜻 평이하게 보일 수도 있는 방식이지요. <천년학>에서도 많은 분량을 대화식 해설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부분이 판소리 전개구조의 기본이라는 거죠. 판소리에서는 소리만 내내 하는 것이 아니고, 아니리와 소리가 교차하면서 전개됩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긴장과 이완'이라고 하기도 하고, 이야기적 방식과 판소리의 입체적 방식이 교차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감독님은 다른 감독들이 꺼려하는 판소리적 기본구조를 많이 취해왔다고 보거든요."

감독 "그것을 내 영화의 흠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웃음)."

광대 "한국적인 고유한 미학을 담고 있는 것에 판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취화선>을 보면서는 영화를 한 폭의 그림으로 만들겠다는 감독님의 의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림이 연속되어 영화를 만들고 영화가 다시 큰 그림을 만든다는 그러한 생각이야말로 감독님이 <취화선>에서 한국적인 고유한 영상미학을 추구할 수 있게 한 바탕이 아니었겠는가 생각해봅니다. <천년학>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구요."

감독 "물론 그 연장선상에 있고, 좀더 나은 그림이 그려진 게 아닌가 싶네요.(웃음) 나는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일상적인 삶의 편린들, 그 안에서 배어나오는 사람들의 어떤 삶의 양태, 이런 것들이 점점 모아져 하나의 총체적인 삶, 하나의 큰 그림을 찍고자 해 왔습니다. <천년학>을 보면 여러 풍류스러운 것들이 있지요. 알게 모르게 드러나는 흥(興)스러운 것, 맛스러운 것들까지 모두 포함한 총체적인 느낌이 그 자체로 큰 한국화가 아닌가 싶어요. 이런 느낌으로 찍은 영화가 바로 <천년학>이지요."

광대 "많은 사람들이 그런 느낌을 받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한국화를 얘기하더라도 산수를 중심으로 하는 그림이 있고, 인물이나 풍속을 중심으로 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또 산수를 말할 때도 진경산수가 있고, 자연풍경과 그 안에 있는 인간 생활의 모습을 어떻게 대조시키느냐에 따라 유파가 달라져왔다고 하는데, 감독님의 작품에서는 산수와 인물과 풍속이 다 살아나는 독특한 경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서편제>와 <취화선>에서 그러한 경지를 계속 추구해오셨다고 봅니다. 이번 <천년학>은 그동안 추구해온 한국적 그림의 양식, 한국적 시지각의 미학 그런 것들을 종합해내고 완결해내는 영화가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감독 "과찬이네요. 기왕에 지금까지 해오면서 '무엇을 해야겠다' 하면서 보여왔던 것이 사실이지요. 그런 미흡이 쌓이고 쌓이면서 그중에 가장 덜 미흡한 것이 <천년학>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천년학>을 얘기하다

광대 "유봉 역할을 맡게 되면서 저는 <서편제>와 <천년학>은 무엇이 달라야 할까, 유봉을 어떻게 다르게 설정해야 할까, 별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서편제>에서는 유봉의 성격이 유랑지향적이고 난봉꾼 기질도 있고, 도덕적 윤리감이 적은 인물이었다면, <천년학>에서 유봉은 다르게 가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딸을 붙잡아두기 위해 눈을 멀게 했다는 설정, 눈을 멀게 해서 모든 감각이 소리로만 집중하게 했다는 설정은 저 자신이 공감하기 어려웠거든요. 판소리사에서나 판소리계의 일화 중에 그러한 사례가 없다는 거죠.

저는 딸의 실명이 악의적인 것이거나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영화에서는 가난으로 표현되고 있는데요, 그 점이 더 강조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송화의 출생지가 제주로 설정돼 있고 4ㆍ3항쟁이 바탕에 깔려있는데, 송화에게 그런 과거가 있다면 동호 또한 과거가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상황을 바탕에 깔아놓기만 해도 오누이의 소리와 북을 통해 우리 민족사의 상흔을 더욱 아프게 그려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감독님께 이 말씀을 드렸더니 감독님께서는 그렇게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죠."

@IMG6@감독 "동호가 어떻게 고아가 되었느냐를 설명한다면, 실패한 소리꾼 유봉의 우여곡절을 <서편제>에서 했던 것처럼 다시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 생겨나지요. 나는 소리꾼 일가가 떠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순탄치 않은 삶, 어려운 삶을 지고 간다고 생각했어요. 넉넉지 못한 삶 속에서 고아들과 소리품 팔면서 살아가는 아버지의 삶은 미루어 생각해보면 굳이 설명을 안 해도 이들의 불행한 내력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어요. 대신 누군가 하나는 연유가 드러나야 나머지를 미루어서 생각할 수 있겠다, 딸의 사연을 보면 동호인들 뭐 그리 대단한 환경에서 곤두박질쳐 들어왔을 것인가 라고 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죠.

제주도 4ㆍ3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화면 안에 담을 것이냐 말 것이냐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었어요. 이를테면 4ㆍ3에 연유되었던 가족사나 이런 것에 무게를 두고 가다보면, 소리로 평생을 살아가면서 사랑한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오누이의 속앓이 사랑 얘기가 축이 될 수 없다는 거죠. 너무 큰 얘기가 중간에 들어오면 자칫 우리가 가고자 하는 사랑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건데요, 4ㆍ3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깊이 들어오면 영화의 총체적 흐름에 장애를 줄 우려가 많다고 봤어요."

광대 "감독님은 어린 시절 역사의 상흔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태백산맥>과 같은 작품에서 그 흔적을 담아내고자 했으면서도 지금은 또 그것이 부질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어떤 심정의 변화랄까, 달관하고자 하는 그 풍모가 영화속에 배여나는 것이라 보여집니다."

감독 "나는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이 아니더라도 영화감독으로서 내가 체험했던 시대를 영화로써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무슨 의무 같은 것이 있었어요. 내가 겪은, 내가 살아온 것을 뒤돌아보면서 한국전쟁에 천착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에서는 '우리 가족사가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힘든 세월에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지겨워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시대에 대한 내 나름의 평가, 시선을 영화에 드러내고 얼른 빠져나가자 하는 생각이 앞섰던 것 같아요. 그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난 그렇게 하기 싫었어요. 사실 제주가 판소리 고향도 아니고, 우리가 다룬 판소리와도 다른 곳이잖아요? 제주라는 곳을 찍긴 찍어야겠는데, 그 산하에다 판소리를 꼭 입혀봐야 하겠는데, 그래서 제주를 고향으로 한 것인데, '왜 생뚱맞게 제주냐'하는 소리도 듣기 싫어 그런 얘기로 슬쩍 지나간 거지요. 그런데 그것이 제주사람들은 또 불만인 것 같아요. 4ㆍ3을 했으면 구체적으로, 분량을 더 많이 하지 하는 마음이 있었나 보더라구요."

@IMG7@광대 "<서편제>에서는 유봉과 송화, 동호 세 사람 이외에는 여타 인물들의 비중이 없었고, 이들 세 사람의 관계와 갈등이 중심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천년학>에서는 세 역할이 꽤 분화되고, 여러 인물들이 추가됐다고 볼 수 있죠. 유봉의 경우 <서편제>에 비해 비중과 역할이 상당히 축소되는데, 양적 축소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과거로 돌아간다는 느낌이었어요. 의붓남매인 송화와 동호의 만남과 헤어짐, 사랑함과 사랑할 수 없음의 문제는 현재의 문제로 오고, 아버지와의 관계는 과거의 일로 지나갔다는 점에서, 양적 문제라기보다 시간의 질과 관련해 확실히 다른 시점을 얘기하고 있거든요.

참 홍보 포스터가 두장이 나왔던데요, 하나는 송화와 동호가 소리꾼과 고수로 앉아있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 송화와 동호를 데리고 가는 유봉의 뒷모습이더군요. 저는 '두 포스터가 함께 있어야 <천년학>을 설명을 하겠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두 포스터가 같이 걸려 있어야 영화 전체를 얘기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감독 "처음에는 나도 생각을 못했는데, 보니까 그렇게 됐더라구요."

광대, 백사노인을 질투하다

광대 "구체적인 인물을 볼 때 백사노인은 단순히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우연히 만난 노인이라기보다 부성과 관련해 어쩌면 유봉의 또 다른 모습이거나, 송화의 마음속에 있는 관계의 다른 양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송화가 어릴 적 유봉이 가르쳐준 '새타령'을 나중에 백사노인 품에서 불러주는 장면이 있지요. 사실은 백사 역을 맡은 장민호 선생님 촬영이 저보다 먼저 진행되었고, 이 화면을 보고 제가 감독님께 어린 송화에게 새타령을 불러주는 유봉 장면을 제안했었지요. 이처럼 송화를 둘러싸고 중첩된 장면이 나오면서 송화에게는 유봉과 백사노인이 다른 사람이면서 동일인이지 않겠는가 생각했던 거죠."

감독 "그 장면은 좋은 제안이었어요. 사실 친일을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모은 백사의 호사스러운 죽음을 찍으면서 나는 그 삶 자체가 크게 보면 얼마나 부질없는 삶이냐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부질없다는 것으로부터 백사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찍어갔는데, 친일파의 죽음을 어찌 보면 비애스럽게 그리고 굉장히 아름답고 장대한 느낌으로 찍었지요. 그런 것을 통해 욕구면 욕구, 욕망이면 욕망 등 세속적인 틀 안에서 놓여나는 죽음 자체에 대한 장엄하고 비탄스러운 모습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 비탄스러움 안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움을 죽음으로부터 놓여나는 비상하는 학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날아다니는 학을 통해 세속에서 벗어나는. 얼핏 연결이 안 될 것 같지만, 꽉 조여진 세상에서 놓여나는 오누이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학이 나는 것을 보면서 후련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찍었어요."

@IMG8@광대 "저는 유봉 역을 맡은 사람으로 백사노인에게 큰 질투를 느꼈습니다.(웃음)"

감독 "유봉과 백사노인이 유사한 삶을 살았다면 그렇겠지만 두 인물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았고 유봉에게 그런 죽음을 시킬 수는 없었지요.(웃음)"

광대 "저는 장민호 선생님의 모습과 연기의 힘이 작동함으로 해서 그 장면이 엄청나게 큰 반향을 주고 있다고 느꼈어요. 이게 배우의 힘이구나, 정말 장민호 선생님은 가만히 앉아있거나 누워있어도 굉징히 큰 연기가 나왔어요. 질투를 느꼈다는 게 그런 부분이지요."

감독 "찍으면서 우리도 놀랬어요. 다른 연기자가 들어왔으면 이렇게 장대한 죽음으로 비칠까 하는."

광대 "<천년학>에서는 죽음을 맞는 이들이 많이 나옵니다. 유봉, 백사노인, 조명창 등 구세대의 죽음이 있었고, 동호와 단심 사이 아들의 죽음도 있었지요. 저는 <천년학>에서 감독님께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감독 "내 나이에서 비롯된 것인가? 나이 때문인 것도 같네요. <천년학>에서 죽음은 뭔가 어둡고 칙칙한 느낌의 죽음이 아니라 죽음 자체가 남기는 맛이 밝고 아름다운 느낌의 죽음이에요. 이것이 영화의 큰 장점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영화가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몇 안 되는 연기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너무 빛나게 연기하고, 죽거나 사라졌다는 것이죠. 배우들이 이렇게 빛을 발하면서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영화가 그리 흔치 않은데 이번에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IMG9@'100' 이라는 숫자 이상의...

광대 "감독님의 100번째 영화에 함께 참가했다는 것을 저는 인생의 큰 기억으로, 가문의 영광으로 삼을 것입니다.(웃음)"

감독 "나도 가문의 영광이 될 것 같네요.(웃음) 사실 나는 100번째라고 해도 후딱 넘어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100번째를 가볍게 숨어서 가지 않은 것은 너무 잘한 것 같아요. 100번째라는 것 때문에 스태프들도 더 열심히 하고, 그래서 영화가 더 단단해진 것들이 보입니다. 내 영화인생에서 오래 기억되는 영화 가운데 <천년학>도 들어갈 수 있다면, 100번째라는 것이 내 영화인생에 큰 것을 남긴 것 같습니다."

광대 "101번째 영화로는 작은 작품을 한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101번째가 아니더라도 판소리와 영화, 혹은 소리와 영상, 그리고 빛의 예술인 영화 안에서 소리와 북, 소리와 빛을 다룬 영화로서 <심청가>가 어떨까 추천하고 싶습니다. <서편제>나 <춘향전> 그리고 <천년학>을 잇는 또 한번의 기회가 있다면 <심청가>를 택하면 정말 좋겠습니다."

감독 "내가 언제까지 영화를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고요, 그리고 내가 소리 안에 더 깊이 들어가고 더 깊은 이해가 생기기 전에는 그런 영화는 감히 생각을 못하겠어요. 나는 깊은 이해는 있든 없든 무조건 소리를 좋아합니다.(웃음) 그것이 영화를 세편씩이나 하게 만든 것 같아요.

유럽 사람들이 처음 우리 판소리를 접했을 때 굉장히 생경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천년학>에 대해서 '판소리가 너무 많지 않은가'라는 말이 있지만 반면 그들의 귀에 우리의 소리가 '맛있게 들린다'는 얘기도 있어요."

광대 "앞으로 해외영화제 등에서 <천년학>이 좋은 반응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구요, 좋은 말씀 더욱 감사합니다."

감독 "나도 오늘 좋은 얘기 많이 들었어요.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컬처뉴스>(http://www.culturenews.net)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대담 천년학 임권택 임진택 소리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