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30 19:27최종 업데이트 23.12.30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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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은 2023년을 마무리 하는 기획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도전, 실패,인물 등 한 해 동안 일어났던 일들 가운데, 꼭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수원, 인천, 대전, 세종, 광주, 창원, 김해, 제주...

여느 해보다 현장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쓰레기 문제를 다루는 환경 활동가의 현장은 어디일까? 선별장에 가서 우리가 버린 재활용품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보기도 하고, 무포장 소비가 가능한 제로웨이스트숍을 방문하기도 한다. 방치된 쓰레기가 있는 갯벌이나 바다를 가기도 하며 과대포장된 물건이 즐비한 대형 마트, 일회용품 사용이 많은 카페나 식당도 빼놓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올해의 가장 중요했던 현장은 '일회용품이 많이 발생되는 곳'이었다. 일회용품 규제가 적용되는 곳은 제도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제도의 사각지대라면 그곳의 문제는 어떠한지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회용품이 넘쳐나는 현장들

"헉... 이렇게 버려도 되는 거야?"

쓰레기통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쓰레기통 밖으로 넘칠 정도로 많은 쓰레기의 양과, 종류와 무관하게 버려진 모습을 보곤 할 말을 잃었다. 주변엔 나처럼 당황해 하는 시민도 있었고, 쓰레기를 버리려다가 망설이는 시민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을 당황시킨 공간은 바로, 야구장이었다. 대표적인 인기 스포츠로 올해 810만 명의 관중을 경기장에 모은 프로야구는 명실상부한 국민스포츠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경기 후 버려진 쓰레기 문제는 프로야구에 큰 숙제를 남겼다.

지난 여름, 10개 프로야구단이 운영하는 9개 홈구장을 직접 찾았다. 대부분 야외구장이라 한여름 무더위를 피할 순 없었지만 탁 트인 경기장이 주는 시원함은 야구 경기의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일부 활동가들은 야구 경기를 즐기면서 일도 할 수 있어 좋겠다며 '이 출장'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야구팬이 아닌 활동가 입장에서는 이 일도 쉽지 않았다고 고백해 본다. 사실 누가 안타를 치는지, 점수가 나는지보다 경기가 언제 끝나는지가 더 중요했다. 경기가 끝나야 쓰레기 문제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

역시나 야구장은 스포츠경기시설 중 가장 많은 쓰레기를 배출한 곳이라는 통계자료를 입증하듯 전국 프로야구 경기장에서는 많은 쓰레기가 배출되고 있었다. 종이, 캔, 플라스틱, 비닐봉투 등의 쓰레기가 하나의 쓰레기통에 분리 배출없이 버려진다는 점도 큰 문제였다. 심지어 음식물 쓰레기도 그것들과 함께 버려졌다. 이런 문제에 대해 10개 구단에 개선에 대해 질의했으나, 6개 구단은 묵묵부답이었다. 계속 이렇게 버려도 괜찮다는 것일까(관련기사 : 팬들도 고개를 저었다... 야구장의 두 얼굴 https://omn.kr/249wt)
 

경기 후 쌓인 쓰레기들.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 녹색연합

 
야구장이나 축제에서는 현행법상 일회용품 사용할 수 있다. 올해도 전국에서 1100여 건의 축제가 열렸다. 지자체가 여는 축제 외에도 대학, 혹은 기관 등에서 여는 축제까지 합하면 2000여 건 이상이 될 것이다.

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식. 어떤 축제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축제를 즐기는 대표적 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제 이후 버려진 쓰레기 문제도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특히 올해 100만 명이 몰린 여의도 서울세계불꽃축제는 축제 후 버려진 쓰레기로 여의도가 '쓰레기 산'이 되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일회용품 규제가 적용되는 곳은 어떠할까

"비닐봉투 안 주셔도 돼요."
"일회용 컵 안 주셔도 돼요."
"영수증 안 주셔도 돼요."


언제까지 시민들의 자발적 실천에만 기대어 일회용품을 줄여야 할까. 2018년 쓰레기 대란 이후 일회용품 줄이기와 관련된 제도와 시스템들이 정비되고 개선되고 있었다. 주요 카페 등의 매장에서는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고, 매장 밖으로 가지고 갈 때는 보증금을 적용하는 등 일회용컵 수거와 재활용을 위한 제도들이 차근차근 준비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모든 것이 거꾸로 가기 시작했다. 자원재활용법에 따라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전국에서 시행되었어야 했지만, 환경부는 세종과 제주에서만 시행했다. 제주에서는 올해 2월만 하더라도 1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2040 플라스틱 제로'라는 목표를 위한 제주특별자치도의 노력과 대상 매장의 협력으로 여름이 지나면서 컵 반환율이 70%까지 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제도가 안착되고 있었지만 환경부는 1회용컵 보증금제도 '자율 시행을 검토하겠다', '종이컵 사용을 허용하겠다'란 입장을 내면서 있는 제도마저 무력화시켰다. 환경 규제를 지자체 자율로 선택할 수 없거니와 현행 법률을 개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환경부는 정확하지도,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내용들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해 혼란을 키웠다. 
 

홍대입구역 주변에 버려진 일회용컵들. 1시간만에 250여개의 일회용컵을 수거했다. ⓒ 녹색연합

 
11월 7일 환경부가 발표한 종이컵 규제 허용에 대한 내용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종이컵 사용을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고 했으나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 이미 시행하거나 시행예정이라는 있는 것이 불과 몇 분만에 밝혀졌다. 또 발표자료엔 푸드트럭에서 붕어빵과 어묵을 판매하는 상인의 사례가 담겼는데, 종이컵이 규제대상이 되면 더 이상 어묵은 판매할 수 없으니 붕어빵만 팔겠단 내용이었다. 이것이 환경부의 발표자료라니... 너무 부끄러웠다. 왜냐하면 푸드트럭에서 판매하는 음식은 포장과 배달로 적용되어 일회용품 규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회용품 사용량 감축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 매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컵 사용 금지 유예(22.4.1)
- 1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유예(22.5.20) 
-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계도로 전환(22.11.1) 
- 1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지역 축소(22.12.2)
- 1회용컵 보증금제 지자체 자율 시행 검토(23.9.12) 
- 매장 내 일회용 종이컵 사용 허용 (23.11.7) 


윤석열 정부는 임기 1년 6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유예하고, 축소하고, 철회하는 행정을 펼치면서도 환경부 장관은 일회용품 사용 감축 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니, 황당할 따름이다. 

또 다른 문제는 규제 완화 발표 또한 졸속으로 진행됐단 것이다. 제도 시행일을 불과 2~3주 앞두고 일회용품 규제에 대한 원칙을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 환경부의 이런 결정은 정책의 후퇴뿐 아니라 정책의 신뢰도까지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이제는 환경부가 무슨 말을 해도, 어떤 정책을 내놔도 믿지 않겠다는 의견이 줄을 잇는다. 법과 제도를 잘 지키면 피해를 본다라는 신호를 준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환경부는 정부의 규제가 아닌 시민의 자발적 실천을 통해 환경 정책의 효과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감축하고, 시민이 노력해서 우리가 원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면, 환경부가 왜 필요한가? 환경부는 부처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공동의 규칙을 정하고 책임을 나누어야 하는데, 그것이 곧 법과 제도이다. 그리고 공동의 규칙은 모두에게 적용된다. 생산자에게는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생산을 규제하는 것이고, 소비자에게는 최대한 사용하지 않도록 하되, 사용 후에는 재활용을 해서 자원 절약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 않은가.
 

식당에서 사용하는 일회용품들. 물티슈, 생수, 종이컵 등 다양하다. ⓒ 녹색연합

 
2024년에는 좀 나아질 수 있을까? 

종이컵 사용을 허용하겠다는 환경부의 발표 하루 만에 식당과 카페에서 종이컵을 봤다는 인증샷이 쏟아졌다. 관련 법령이 정비되지 않았지만 정책의 효과는 현장에서 빠르게 확인된다. 종이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제도를 정비해 왔던 15년의 시간이 와르르 무너진다는 생각에 너무 안타깝고 허탈했다.

최근에는 홀더 대신 종이컵을 이중으로 사용하는 매장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종이컵이 홀더보다 가격이 더 저렴하다는 이유다. 가격이 더 싸고, 사용에 불편함이 없다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상황이 이러니, 환경을 생각한다면 사용을 제한할 강력한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제도가 있어도 강력한 이행 의지가 없는 행정부라면, 환경보다 산업을 대변하는 환경부라면, 지금과 같은 규제완화 정책의 기조가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가 일회용품 규제를 더욱 강화하더라도, 우리나라에 쓰레기 대란이 다시 한번 오더라도 제도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민들의 목소리와 힘은 더욱  커질 것이다. 환경부가 제 할 일을 못 찾고 있다는 것을 아는 시민이 많아질 것이고, 시민들의 힘으로 정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시민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며, 일회용품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더욱 강력한 제도를 만들기 위한 시민의 행동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래서 희망을 갖는다. 서로를 응원하자.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사회'는 누구나 긍정하는 우리 사회의 지향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녹색연합 홈페이지와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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