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5 11:49최종 업데이트 23.12.25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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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은 2023년을 마무리하는 기획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도전, 실패, 인물 등 한 해 동안 일어났던 일들 가운데, 꼭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편집자말]
2023년 한 해 동안 인터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기사에 담았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 혹은 사건을 하나 뽑아달라는 말에 '올해를 무엇으로 기록하면 좋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선택은 책 <이탈리아로 가는 길>을 펴내 "한국은 포퓰리즘 약속의 땅 이탈리아로 가고 있다"고 진단한 조귀동 작가와의 인터뷰다(관련 기사: '무능의 아이콘 윤석열'... "한국은 이탈리아로 가고 있다" https://omn.kr/25csd). 2023년은 한국이 대중영합주의, 포퓰리즘 전성시대로의 가속 페달을 밟은 해로 기억될 것이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미등록 체류자 탄압 앞장선 한동훈 법무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정책의원총회에 참석해 '출입국 이민관리청 신설 방안'에 대해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 남소연

 
먼저, 한동훈 장관이 이끄는 법무부의 미등록 체류자 단속 및 추방이다(관련 기사: "가장 미련한 방법... 이걸 자랑하는 한동훈 법무부 한심" https://omn.kr/260zv).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이주민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에 기반한 이 정책은 '트럼피즘'과도 맥을 같이한다. 법무부는 12월 14일 '지난 10월 10일부터 이달 9일까지 시행된 3차 단속 기간에 미등록 체류·취업 외국인 총 7255명을 적발했다. 올해 정부 합동 단속으로 역대 최다 인원인 미등록 체류자 3만8000여 명을 적발했다'고 자랑스레 밝혔다.

지난달 11월에는 법무부 직원이 이주여성노동자의 목을 팔로 조르며 작업장 밖으로 끌어내는 장면이 촬영된 영상이 떠돌기도 했다. 댓글에는 '잘했다'거나 '더 강하게 단속해야 한다'는 요구도 많았다. 법무부 훈령인 '출입국사범 단속과정의 적법절차 및 인권보호 준칙'을 어긴 과잉 단속이었음에도 해당 직원이 처벌받았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법무부는 '불가피했다'고 설명했고 사과는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한신대학교는 우즈베키스탄 유학생 22명에게 외국인등록증을 수령하러 가야 한다고 속여 버스에 태운 뒤 그대로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해 강제 출국시켜버리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유학생들이 법무부의 체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비자 연장을 받지 못하고 불법체류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았고, 개인과 학교 모두를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 한신대의 해명이다. 변명일 수 있으나, 법무부의 정책 방향과 이는 무관할 수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최저임금 미적용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민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보다 적은 돈을 주고 그들을 고용하자는 것이다. 이주민 노동자들이 왜 '불법 체류자'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왜 그들은 우리보다 못한 처우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에 대한 논의와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그들을 어떻게 이용할지만 골몰하는 포퓰리즘의 시대다.

사적 제재 위험성... 대중 분노 앞에 무력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6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총리 서울공관에서 당정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고위당정협의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관련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중대 범죄자 신상 공개 확대 방안 등을 논의했다. ⓒ 연합뉴스

 
범죄자 신상공개 또한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다. 현재 대통령실과 여당은 신상공개 범위의 대폭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월 18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정부와 여당은 신상공개 대상 범죄를 ▲ 아동 성범죄 ▲ 불특정인 대상 무차별 범죄 ▲ 내란·외환·테러·마약 등의 중대 범죄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아울러 현재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신상공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피고인도 공개 대상에 포함하기로 하고, 관련 입법을 신속하게 추진하기로 했다. 

신상공개 및 엄벌주의가 범죄예방에 효과가 없음은 수많은 연구로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범죄율도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신상정보 공개 제도가 성범죄자의 재범을 억제하는 효과가 없었을뿐더러 인구 10만 명당 범죄율도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피해자를 생각한다면 전폭적인 지원, 범죄의 구조적 요인 제거와 재발 방지 대책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현명하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범죄가 횡횡하는 사회를 바꾸고, 가해자가 출소 뒤 보복하는 행위를 불가능하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럼 이 신상공개에 남은 건 뭘까. 그저 '저 나쁜 놈 얼굴에 침 한번 뱉어보자'는 욕구뿐이다. 대중들의 이러한 욕구를 제대로 활용해 신상공개를 주도하는 한 유튜버는 현재 1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고, 일부 정치인은 그의 주장에 호응하며 여러 미디어에서 그를 직접 초대하거나 인용해 보도를 이어간다. 대중의 관심과 분노 아래 조던 피터슨도 경고한 사적 제재의 위험성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지방캠 혐오' 열풍 올라탄 총학생회 선거본부
  

지난 11월 2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학생회관 앞 게시판. 총학생회 후보들의 공약이 게재돼 있다. ⓒ 박수림


대학도 거대한 흐름에 동참한다. 지난 11월 말 치러진 연세대 신촌캠퍼스(서울)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두 선거본부는 모두 서울-원주 캠퍼스 간 소속 변경 제도(전과)를 손봐야 한다는 공약을 내놨다(관련 기사: "소변 폐지" "교류 아님"... 연세대 총학선거에 지방캠 혐오 봇물 https://omn.kr/26hxo).

신촌캠퍼스의 많은 학생들은 자신들보다 낮은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한 미래캠퍼스의 학생들이 신촌캠퍼스로 오는 것에 불만을 품는다. 대학별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연세대 신촌캠에는 미래캠퍼스 학생들을 향한 차별 발언이 쏟아지고, 그런 내용을 담은 게시물이 많은 추천을 받아 '실시간 인기글'에 오르기도 했다.

총학 선본의 공약은 이들은 요구를 충실히 반영한 것이다. 연세대·고려대 간 교류 축제인 '연고전(고연전)'을 전후로도 축제에 참석하는 지방캠 학생들을 조롱하는 글이 서울캠 커뮤니티에서 인기를 끌었다. 기자도 해당 학교에 다니는 친구의 휴대전화 앱을 통해 직접 본 글들이다.

이렇듯 포퓰리즘은 다른 모든 가치들을 오염시키며 우리 사회를 빠르게 망가트리고 있다. 폭력과 혐오, 정의감 중독으로 무장한 강성 지지자들을 앞세운 '팬덤 정치'도 정당 정치의 질서를 완전히 무력화시킨다. 이탈리아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대한민국이 이대로 포퓰리즘의 광풍에 휩쓸려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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