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스틸컷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스틸컷 ⓒ 넷플릭스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언제나 독창적이고 재기발랄하다. 아름다운 외양과 달리, 누군가의 음침한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 심연은 고약하다. 앤더슨의 영화가 오늘날 돋보이게 된 것은 시대적 영향과 맞물려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OTT 콘텐츠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면서 연극은커녕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사람들의 발길도 드물다. 앤더슨은, 쇠락해가는 연극에 동화적 상상력을 불어넣어 전혀 다른 유형의 영화를 제작함으로써 작가의 직인을 확고히 다지기 시작한다.

지난 9월 27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의 이야기> 외 <백조> <독> <쥐잡이 사내> 4편의 단편은 웨스 앤더슨이 줄곧 선보여왔던 '작가성'이 전작들 대비 두드러지게 나타난 작품이다. 언제나 연극과 영화 사이에 아슬한 줄타기를 시도해왔던 그는, 이번에는 연극에 더 큰 무게를 싣기로 한 모양이다. 인물의 표정은 한층 경직됐고, 획일적으로 움직이는 동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속사포 같은 대사들은 이 4편의 단편들이 마치 하나의 연극인 것 같은 기분이 들도록 한다. 특히 하나의 이야기 속에 서사를 이끌어가는 두 명의 인물이 동시에 등장하는 이중 액자식 구성을 띤다는 점에서 전작들과 차별성을 보인다.

앤더슨의 경계 허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극 중 로알드 달이 관객에게 이야기를 읽어주고, 작은 이야기 안에서의 이야기꾼이 각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를 해설한다는 점에서는 동화, 내지 소설의 형식을 띠며, 내용상에는 쥐의 형상을 스톱모션이 활용된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내는 등 작품 전체가 제목 그대로 기상천외한 동화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이중, 소설의 구조는 한번 짚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일반적으로 텍스트는 작가의 의도를 명쾌하게 드러내는 데 존재의의가 크다. 그런 점에서 텍스트는 이미지의 한계를 보완해주는 측면이 있다. 작가의 글은 작품의 지시 방향이 되고, 자연스레 독자의 초점으로 맞춰진다.

앤더슨은 통념을 따르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텍스트가 텍스트로서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넘치는 대사와 감정 없는 읊조림은 오히려 극의 몰입을 방해하고, 기관총처럼 쏘아대는 '말들'는 OTT 문화에 익숙한 관객들로 하여금,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 다시 한번 대사를 확인하도록 이끈다. 텍스트로 포섭된 이미지들은, 이미지로 재분해되어 잘게 해체될 뿐이다. 이미지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서사를 전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이는 <쥐잡이 사내>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사내와 쥐가 대립하는 과정 전체가 정지된 이미지로 조각조각 파편화되어 표현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말한 '거리두기' 내지는 '부조리극'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의 이야기> 외 4편의 이런 면모는 되레 장점으로 작용하는 듯 보인다. 의미가 명확한 것만이 좋은 작품은 아니다. 때로는 몰입이 방해될지라도, 그 방해를 뚫고 의미를 건져내는 과정을 통해 한 사람의 온전한 사유가 전개된다. 수동적으로 떠먹여주는 스낵컬쳐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영화 전체가 따분하고 당혹스러운 플롯의 연속일 테지만, 거대 미디어 산업이 주도하는 트렌드에 서서히 실물을 느낄 즈음인 관객에게는 이번 앤더슨의 단편선은 색다른 경험으로 각자의 상상력을 불어넣는 기폭제가 된다. 한마디로 이미지와 텍스트의 불협화음은 의미 전달에는 미흡할지라도, 그런 흠결은, 관객의 능동적인 사고로 전환됨으로써 새로운 사유의 형태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런 형식적 요소는 자연스레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메시지로 이어진다. 모든 것이 이미지로 파편화되어가는 현시대에 웨스 앤더슨은 텍스트 읽기와 더불어 이미지 읽기를 함께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독>에서 화면을 양분해 마치 책을 읽는 듯한 프레임을 짜맞춘 연출이나 삼각대가 아닌 핸드헬드로 촬영했다는 점은 텍스트와 이미지가 혼재된 상황을 암시한다. 극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모두 실화에 바탕을 두는데, 단순히 뉴스에 나온 사실을 짜깁기하진 않았다. 객관적 '사실'은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리면서 하나씩 살이 덧붙여지고 급기야 하나의 '소설'로 탈바꿈된다. 이미지와 텍스트에 상상력이 더해져 새로운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탄생한다.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의 이야기>를 비롯한 4편의 단편에 모두 서로 다른 동물이 등장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에는 사람이, <백조>에는 조류인 백조가, <독>에는 파충류인 뱀이, <쥐잡이 사내>에는 설치류인 쥐가 중심 소재다. 서두를 떼는 헨리의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헨리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뒤에 닥칠 세 편의 이야기를 지칭하는 걸로 볼 수 있는 다소 과한(?) 해석도 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해당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 게재돼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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