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결혼생활 중이다. 부부의 만남은 다른 이들이 그러하듯 평범하면서 특별했다. 여자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첫 작품을 찍던 중이었다. 그러다 지금은 사라진 진보신당의 활동가이자 요리사인 남자를 만난다. 여자는 남자를 좋아했고, 고백했고, 사귀다가, 청혼하여, 결혼에 이르렀다. 여자의 청을 남자는 받았고, 둘은 백년해로의 아름다운 약속을 맺었다.
 
평범함은 둘이 서로 짝이 되어 사랑을 약속하고 결혼하였다는 점이다. 특별함이라면 그 과정에서 모든 결정적 제안이 여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남자는 본래 비혼이었으나 여자의 요구에 뜻을 꺾는다. 그로부터 이들은 한국에서 프랑스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한 아이의 부모가 된다. 이 또한 주도하는 이는 오로지 아내이며 따르는 이는 남편이다.
 
모든 관계를 끊고 먼 타국으로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아내는 프랑스에서 꿈과 목표, 현실적인 계획까지를 모두 갖고 있으나, 남편의 결정엔 아내만 있을 뿐이다. 이들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이야기가 영화, 그것도 사실 그대로를 농축하여 담아낸 다큐멘터리 한 편에 담겼다.
 
제10회 부천노동영화제가 초청해 상영한 <박강아름 결혼하다> 이야기다.
 
박강아름 결혼하다 포스터

▲ 박강아름 결혼하다 포스터 ⓒ 부천노동영화제

 
3000만원 들고 프랑스로 떠난 부부
 
영화의 제목에 쓰인 박강아름은 사람의 이름이다. 제 이름인 아름에 더하여 박과 강이란 성씨를 함께 쓰는 이 감독은 예상하다시피 앞에 언급한 부부 중 아내다. 그녀가 이 영화의 감독이며, 중심이 되는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다.
 
영화는 박강아름과 정성만의 결혼에 얽힌 사연으로 시작하여 삶의 진솔한 내면을 담아낸다. 박강아름은 일찌감치 한국에서의 삶을 원치 않는 듯 보인다. 그녀는 6개월 잠시 어학연수를 다녀온 프랑스를 오랫동안 꿈꾸었고, 수천 만 원에 이르던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고 3000만원을 모은 뒤 터전을 옮기기로 결심한다.
 
박강아름에겐 저 자신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또 비디오아트를 하겠다는 목표가 확실히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작품세계는 한국에선 전혀 먹히지 않는다. 시장이 없다는 판단 아래 박강아름은 프랑스를 택한다. 프랑스에서 공부를 더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녀는 홀몸이 아니다. 남편 정성만과 부부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선 함께 프랑스로 가야만 한다. 그녀는 성만에게 프랑스에서도 요리를 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박강아름에 따르면, 성만은 동의하였다 전한다.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부천노동영화제

 
독박육아에 우울까지... 이 남자의 고단한 삶
 
영화는 박강아름과 정성만의 부부생활을 담아낸다. 처음엔 파리였고, 나중엔 어느 작은 도시다. 둘 다 박강아름의 학교 때문에 결정된다. 박강아름은 학교다 작업이다 정신이 없다. 갈수록 성만의 삶은 집안일에 고정되게 된다. 따로 일이 있는 것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도, 그렇다고 무엇을 시작할 의사소통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자연스레 드러나듯 그는 박강아름과 달리 적극적으로 타인에게 다가서거나 제 속 이야기를 잘 꺼내는 이도 아니다.
 
심지어 이들에게 아이가 생기며 노동과 책임이 증폭되기까지 한다. 자연히 그 몫은 성만의 것이 된다. 영화가 수차례 표현하고 있듯, 독박육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성만이 음식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아이를 키운다. 불어를 할 줄 아는 아내는 행정일을 도맡는다. 영화 내내 얼마 드러나지 않지만 조금 생긴 돈마저 아내의 주머니로 곧장 들어간다는 표현대로 경제권 또한 박강아름이 쥐고 있다.
 
성만은 갈수록 우울해진다.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의미 있는 일도 없는 채로, 익숙한 모든 것을 떠나 타지로 와서는, 일로 바삐 나도는 아내를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결과니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이에 아내는 남편을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집에서 음식을 준비해 손님을 받는 이른바 '외길식당'이 문을 열게 된 것이다. 테이블 하나를 두고 성만이 준비한 집밥을 대접하는 일로, 유학생과 교민으로 시작해 점차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처음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된 성만에게도 조금 화색이 돈다.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부천노동영화제

 
아내 따라 프랑스로... 이 남자의 사정
 
영화 속엔 수차례 외길식당 손님들과 박강아름 부부가 대화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박강아름은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다른 사람과 만나 대화하며 생각을 전환하는 기회를 가지려 한다. 적극적이고 일을 벌이길 좋아하며 추진력이 있는 성격답게 그런 상황이 잘 맞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성만의 목소리가 담기는 날이 있다. 한국 여성과 프랑스 남성의 국제커플로, 박강아름 부부와 비슷한 또래 부부 손님이다. 특히 이 여성은 성만의 고충을 조금쯤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로지 사랑하는 이만 바라보고 낯선 땅에 와서 사는 일이 쉬울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제게도 꼭 그러해서, 에펠탑을 보고는 따로 할 일을 찾지 못했다는 고백이 이어진다. 그로부터 발언의 용기를 얻은 성만은 부엌을 벗어나 서툰 불어로 이야기한다.
 
"저한테는 프랑스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땅으로 성만이 건너온 이유는 무엇인가. 오로지 아내, 박강아름 때문이다. 결혼 전 비혼주의자임을 밝힌 성만, 그 이야기를 듣고 펑펑 울었다는 박강아름, 그리고 마침내 생각을 바꾼 것은 성만이었다. 박강아름은 다시 얼마 되지 않는 돈이 마련되자마자 프랑스 유학을 계획했고 성만은 제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땅으로 떠나오기를 선택했다. 그곳에서 우울을 겪으며 가정일과 독박육아를 하며 버텨나가고 있는 것이다.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부천노동영화제

 
아내중심의 서사 속 드러나는 남편의 고통
 
그로부터 영화엔 이들의 갈등이 담기기 시작한다. 본디 말이 많지 않은 성격이기도 하거니와 감독은 철저하게 성만의 서사며 심정을 담아내지 않기로 작정한 듯 저의 서사와 감정선, 결정의 사유를 녹여내는데 집중한다.
 
그중 하나의 갈등을 따로 떼어 언급할 만하다. 적은 돈을 들고 온 데다 벌이도 좋지 않고 학업에 아이까지 키우게 된 부부다. 생활고에 시달릴 건 명약관화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를 선택했고 자연히 쪼들리는 삶을 산다. 거리 카페에서 3유로 짜리 커피를 마시는 걸 사치라고 표현하는 이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성만이 장을 보고 오고, 경제권을 쥔 박강아름은 영수증을 확인한다. 목록엔 제법 비싼 체리포도인가 하는 과일이 포함돼 있다. 그녀는 어째서 이렇게 비싼 과일을 샀느냐고 그를 타박한다.
 
그날 성만은 모든 일을 멈추고 집을 비운다. 그가 비운 집, 먹을 것이 없자 박강아름은 그가 사온 과일을 혼자 먹는다. 이쯤 되면 관객은 아연하게 된다. 영화 속 국제커플이 언급하는 것처럼 서비스의 질이 상대적으로 낮은 프랑스로 터전을 옮긴 것도, 아는 이도 없고 일도 없고 성격도 맞지 않은 도시로 와서 가사를 전담하는 것도, 저의 사유가 아닌 이유로 쪼들리는 삶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모두 박강아름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성만은 큰 불평 없이 이를 감당하지만 수시로 성향 강한 아내와 부딪치게 된다.
 
흥미로운 건 이 같은 답답하고 분노하게 되는 상황이 도리어 영화의 의미와 닿는다는 점이다. 박강아름과 성만의 관계를 뒤집으면 그대로 그간 한국사회에서 보통의, 평범하다 여겨져온 가정상이 드러난다. 물론 프랑스라는 낯선 지역에서 살 것을 강요하는 수준까지는 가지 않은 집이 많겠으나 적어도 아내의 가사노동을 당연시하고, 아내에게만 경력단절과 독박육아, 가정에서의 결정권 상실을 겪도록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이 현실이 아닌가. 박강아름보다는 윗세대가 주로 겪어온 문제이긴 하겠으나 영화 속 그녀가 오늘의 성향을 갖게 된 데 영향을 미친 아버지와의 기억을 통하여 내다볼 수 있듯이 영향마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부천노동영화제 포스터

▲ 부천노동영화제 포스터 ⓒ 부천노동영화제

 
뒤집으면 발견되는 가부장제의 폭력
 
그런 의미에서 박강아름의 일방적이며 가부장적인 태도는 지난 시대의 가부장제의 폐해를 생각하게 한다. 내성적인 남편의 희생과 그로 인한 고통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는 그 결말부에서 이를 흥미롭게 잡아낸다. 덩케르크 해안으로 관광을 왔지만 날씨가 돕지 않아 빗줄기가 내리는 날이다. 다른 관광객도, 주민도 오가지 않는 춥고 비바람 몰아치는 해안에서 박강아름은 남편을 끌고서 바닷가로 나간다. 남편이 싫은 소리를 하자 그만 좀 투덜대라고 다그치기까지 한다. 비가 오잖아 하는 불평에도 바다를 보러 왔으니 바다에 가야한다고 잡아끈다. 어찌됐든 이들은 바닷가로 나아간다. 강풍에 뒤집힌 우산을 쓰고 남편의 힘에 의지하여 겨우겨우 유모차를 들어서는 아무도 없는 덩케르크 해변으로 간다. 멀리 둔 카메라엔 아마도 다툼일 게 분명한 모습이 흐릿하게 찍힌다.
 
영화의 어디까지가 진솔한 모습일지 짐작하기 어렵다. 영화를 가만히 보자면 박강아름이 부부를 떠나 인간으로서 너무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영화 속 제작비 지원 현장에서 이 영화가 사실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관객은 믿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모습을 관객 앞에 꺼내놓기로 결정한 그 용기를, 영화 속 울먹이는 순간마저 카메라를 켜서 담으려 하는 그 성미며 욕구를 인정할 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좋은 사람인지는 몰라도 좋은 감독의 자질을 갖춘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진실 하나가 있다. 부부의 일은 오로지 부부만이 안다. 어리석은 이만이 부부의 일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영화 한 편이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으리라고, 성만이 오로지 박강아름에 의하여 이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리라고 나는 믿고자 한다. 적어도 그는 성인이고, 선택하지 않는 것도, 끌려가듯 따르는 것도 모두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한국사회가 가부장제의 폐해를 극복하길 바라듯이.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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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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