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바자카 감독 & 기자의 모습

한나 바자카 감독 & 기자의 모습 ⓒ 한나 바자카

 
유럽의 마지막 독재국가로 알려진 벨라루스. 얼핏 생각하면 우리에겐 잘 알려진 바 없는 이 나라가 한국 사회와 작은 공통점이라도 있을까 싶다.

하지만 필자는 한국의 인기 넷플릭스 시리즈 < D.P. >를 연상시키는 벨라루스의 다큐멘터리 <마더랜드>(Motherland)를 보고 나서는 징병제 국가인 두 나라에서 폭력이 작동하는 기제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 소련국가인 벨라루스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모든 남성에게 의무적으로 1년 반의 병역 의무가 주어진다. 물론 이는 군대 내 잔인한 폭력 문화를 동반한다. <마더랜드>는 억압적인 독재 사회에서 아들의 의문사를 밝히기 위한 어머니들의 단호한 투쟁과 아울러 입대를 앞둔 젊은 남성들의 복잡한 삶의 단편을 잘 보여준다.

최근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킨 2020년 시민들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도 날실과 씨실로 능숙하게 편집한 이 작품은 놀랍게도 한나 바지아카(Hanna Badziaka)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그는 벨라루스계 우크라이나 감독이자 프로듀서인 알략산드르 미할코비치 (Alexander Mihalkovich)와 함께 공동 연출을 맡았다.

올해 유럽 최대의 다큐멘터리영화제 중 하나인 코펜하겐 다큐멘터리 영화제(CPH:DOX)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 수많은 국제영화제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동유럽 시네마에 주목하는 독일 비스바덴의 고이스트(GoEast) 영화제에서도 비평가협회상(FIPRESCI)을 받았고 폴란드 크라쿠프영화제(Kraków Film Festival)에서는 관객상을 수상했다.

한국의 DMZ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들도 추천한 바 있는 이 작품은 현재 DMZ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마쳤다. 망명 중인 한나 바자카 감독과 지난 17일 서면으로 대화를 나눴다. 아래는 일문일답을 요약한 내용이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폭력, 군에 뿌리 두고 있어"
 
 영화 <마더랜드> 스틸 이미지. 교외 기차에서 군인과 연인의 모습.

영화 <마더랜드> 스틸 이미지. 교외 기차에서 군인과 연인의 모습. ⓒ Siarhiej Kanaplianik

 
- <마더랜드>는 당신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그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나는 (저널리즘을 공부했고) 독립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현재 벨라루스 정부에서 극단주의로 간주하는 유일한 벨라루스 독립 TV 채널 벨삿(Belsat)을 비롯한 독립 미디어에서 일했다. 저널리스트로서 주로 사회 문제와  심층 영상보도-단편 TV 다큐멘터리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지금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규모가 더 커지고 창작의 자유 범위가 달라졌을 뿐이다."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첫 단추는 알략산드르 미할코비치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미할코비치 자신이 벨라루스 군대에서 의무적 군복무를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내부에서 군 폭력에 직면하는 동안, 저는 (외부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그 결과를 목격했고, 사회 전반에 만연한 폭력의 정도가 군 폭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인구의 절반이 폭력에 시달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라는 사실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저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밝히고 싶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기 전에 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전쟁이 영화의 후반 작업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2018년에 촬영을 시작했는데, 그 당시에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나 전쟁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예측할 수 없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은 영화작업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 전환점 중 하나였다. 당시 저희는 우크라이나에서 편집 중이었고 이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되면서 편집에 대해 많이 재고하고 관점을 바꾸게 되었다. 일부 장면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느껴져 잘라냈다. 전쟁 전 벨라루스에서 우크라이나로 도망쳤던 일부 인물들은 현지에서 전쟁을 마주하게 되었다. 저희는 침공 초기에 폭탄 대피소로 변해버린 키이우 지하철역에서 난민 무리와 함께 떠나는 이들을 촬영했다. 하지만 촬영분을 모두 저장해 외부로 반출할 수 없었다. 저희는 이 장면을 영화 구조에 어떻게 포함시킬지 많이 고민했는데 결국 아주 미니멀한 방식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이 영화를 제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저희는 인터뷰이들의 안전에 관해 신경을 써야 했다. (등장인물) 니키타가 군대에 있는 동안 우리는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고, 벨라루스와 가까운 지역에서는 영화의 공개 피칭도 피했다. 물론 그래서 재정적 지원과 공동제작 파트너를 찾는 것이 더 어려워졌지만 결국 모든 것이 잘 풀렸다. 영화 촬영분 등 자료도 안전한 곳에 잘 감춰야 했던 점도 고민거리였다."

-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어머니의 나라, <마더랜드>이지만 모국어인 벨라루스어로 직역하면 '아버지의 나라'다. 얼핏 생각하면 '아버지의 나라'라는 단어가 가부장적인 사회를 묘사하는 데는 더 적당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런 단어 선정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
"본국을 뜻하는 단어로 벨라루스어와 우크라이나어 모두 '파더랜드'를 사용한다. 하지만 저희는 본국에 대한 아이러니한 오마주와 체제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 어머니에 대한 힌트를 결합한 영어 제목인 마더랜드가 가장 완벽해 보였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여성이 있으며, 권위주의 체제에 가장 먼저 의문을 제기한 이들은 어머니이자 여성이었다. 2020년 시위에서도 여성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저희는 벨라루스어로 '파더랜드' 역시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는 유독한 남성성과 가부장적 패턴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벨라루스의 독재자 루카셴코는 '아버지'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널리 사용되지는 않지만 그에게 아첨하는 성격이 분명하며 그의 지지자들이 비공식적으로 홍보하는 단어다."

벨라루스에서 가정폭력 비율이 높은 이유
 
 영화 <마더랜드> 스틸 이미지. 2020년 대선 부정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막는 수도 민스크 정부청사앞 전경들.

영화 <마더랜드> 스틸 이미지. 2020년 대선 부정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막는 수도 민스크 정부청사앞 전경들. ⓒ Siarhiej Kanaplianik

 
- 영화에서 한 아버지 캐릭터가 아들이 군복무를 통해 '착하고 (모나지 않은) 평균적인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이것은 벨라루스 사회가 가진 일반적인 믿음인가?
"기성세대에게는 충분히 흔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은 소련의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벨라루스는 소련으로부터 폭력적인 의식과 함께 군대 시스템을 물려받았다. 동시에 이런 접근 방식은 자신의 아들들이 병역을 피할 수 있도록 하려는 부모들의 시도와 기이하게 결합된다. 예를 들어 부모는 아들이 어린 시절부터 군대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도록 가짜 의료진단을 받으려고 애쓴다. 일부는 군 복무를 해야 할 적령기에 아들을 해외로 보내기도 한다. 잔인한 군대 경험이 소년을 남자 성인으로 만드는 일종의 입문이라는 (긍정적인) 믿음과 아울러 한편으로는 여기(군대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무의식적인 (부정적인) 이해가 결합된 것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

- 아들의 의문사에 맞서 정의를 위해 싸워온 어머니들의 용기가 인상적이다. 그들은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나? 
"언제부턴가 정부는 정적, 활동가, 국민의 대다수인 2020년 시위 참가자들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벨라루스의 억압적 메커니즘은 강력하고 잘 정비되어 있지만 지금은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평시에 사망했던 군인들의 어머니들은 현재 정부의 초점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투쟁의 환경은 변화했다. 수년 전 주인공 스뱌틀라나는 아들을 괴롭힌 가해자들 중 일부가 징역형을 선고받도록 했지만, 더 이상 법적 수단은 통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거리에서 항의하는 것이라면 법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벨라루스의 가정폭력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고 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본인이 유추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
"처음부터 저희는 엄청난 수준의 가정 내 젠더폭력을 영화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관시켜 생각했다. 폭력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 남성들은 가정을 포함한 시민 생활에 폭력을 가져온다. 더욱이 정부는 이런 가정 폭력을 '전통적 가치'의 일부로 간주하고, 이에 대응하는 법안 통과를 거부해 왔다."

- 벨라루스의 시민들이 지금 이 영화를 볼 수 있을까? 아니면 비밀리에 보는 것만으로도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나?
"현재 벨라루스에서는 사회의 모든 과정이 정부와 경찰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에 비밀리에 영화를 상영하는 것조차도 절대 불가능하다. 저희가 촬영을 시작했을 때도 상황이 나쁘긴 했지만 지금보단 훨씬 더 나았다. 적어도 현재 버전에서는 온라인 상영도 불가능하다. 현 정권은 (과거 2020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더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기 위해 공개된 사진이나 동영상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시위대에 대한 이런 정보는 새로운 것도 아니고, 정부도 자체적으로 시위 참가자들을 광범위하게 촬영했지만,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사람들을 더 겁주기 위해 이러한 사례들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많은 벨라루스인들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2020년 이후 탈출한 사람들은 30만 명에서 100만 명으로 추정된다. 벨라루스의 전체 인구는 약 9백만 명이었다. 적어도 저희는 해외 거주 벨라루스 관객에게 다가가려고 하지만 전반적인 상황은 아주 힘들다."

"가장 큰 어려움은 영화인들이 고립됐다는 것"
 
 영화 <마더랜드> 스틸 이미지. 폭력적인 군부대에서 아들을 사샤를 잃은 어머니 스뱌틀라나는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을 찾아 그 경험을 기록하고 부당한 현실에 맞선다.

영화 <마더랜드> 스틸 이미지. 폭력적인 군부대에서 아들을 사샤를 잃은 어머니 스뱌틀라나는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을 찾아 그 경험을 기록하고 부당한 현실에 맞선다. ⓒ Siarhiej Kanaplianik

 
- 최근 벨라루스 영화인들의 80%가 망명 중이라고 들었다. 올해 '벨라루스 영화 아카데미'의 창립은 유럽영화아카데미에서도 공식적으로 환영받았지만 국제 사회에서 야권, 반체제 영화인들에 대한 지원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현재 심각한 독재 아래 있는 벨라루스 영화인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일단 저는 큰 지원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아울러 국제사회가 우리 영화계를 국제 영화 커뮤니티에 통합하고 벨라루스 의제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 또한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요즘 가장 큰 어려움은 지원 금액이 아니라 벨라루스 영화인들이 대부분 자국으로부터 고립되어 있고 벨라루스 내에서 전혀 촬영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들에게는 더욱 극적인 상황이다."

- 한국 관객들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 관객들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진지한 시네필로 유명하기 때문에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게 될 거라는 생각에 설렜고 어떻게 반응할지가 궁금했다. (한국 대사관의 비자 발급 거부로) 상영회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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