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데사국제영화제에 참가한 영화인들 제 14회 오데사국제영화제 (체르니우치)에 참가했던 영화인들, 자원봉사자들, 심사위원들이 무대에서 함께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 오데사국제영화제에 참가한 영화인들 제 14회 오데사국제영화제 (체르니우치)에 참가했던 영화인들, 자원봉사자들, 심사위원들이 무대에서 함께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 OIFF

 
"당신의 DNA에 새겨진 시네마! (Cinema in your DNA!)" 

지난 달 31일 막을 내린 우크라이나 오데사국제영화제(OIFF)의 공식 슬로건이다. 우크라이나는 작년 2월 시작된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국가와 국민 전체가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했지만 영화에 대한 애정만큼은 남달라 보였다. 

한때 '흑해의 할리우드'라고 불리기도 했던 우크라이나의 영화 전통을 지키기 위해 전쟁 중에도 현지 영화인들은 많은 노력을 해 왔다. 8월 1일부터 한달 간 여러 도시에서 열린 14회 오데사국제영화제는 우크라이나 영화계의 강건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간 매년 우크라이나의 흑해를 배경으로 여름에 열렸던 오데사국제영화제(OIFF)는 작년 전면전 발발로 현지에서 개최되지 못했지만, 영화제 주최 측과 다른 영화제들과의 협업 덕분에 다수의 타국 영화제에서 다양한 OIFF의 프로그램이 선보일 수 있었다.

포르투칼, 독일, 폴란드, 아일랜드 등 유럽의 많은 영화제들은 OIFF 프로그램팀이 선정한 탁월한 우크라이나 영화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개발, 촬영, 편집중인 우크라이나 영화 프로젝트들의 피칭행사도 주최했다.

특히 체코 칼로비바리국제영화제에서는 <우크라이나전이 국제 영화업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패널토론이 열리기도 했고, 작년 10월 라트비아의 '발트해다큐멘터리영화제 (Baltic Sea Docs)에서는 전쟁 중 다큐멘터리 필름메이커의 정신건강에 대한 긴급토론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문화는 제2의 최전선"
 
 안나 마추흐 오데사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왼쪽)과 프로그래머 알리크 슈필류크 (Alik Shpilyuk)씨의 기자회견 모습.

안나 마추흐 오데사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왼쪽)과 프로그래머 알리크 슈필류크 (Alik Shpilyuk)씨의 기자회견 모습. ⓒ oiff

 
이 토론회에 함께 자리했던 OIFF의 집행위원장 안나 마추흐 (Anna Machukh)는 영화제 마지막 날인 8월 31일 영화제를 개최한 동기를 묻는 질문에 "오데사에 사는 시네필들의 자국 영화에 대한 소비 욕구를 충족하고 우크라이나 영화업계의 생명줄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답했다. 아울러 그는 "문화는 제 2의 최전선"이라며 러시아 정부의 대 우크라이나 정보전에도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마추흐 집행위원장은 전쟁 중 영화제를 진행하며 마주했던 장벽들과 관련, "이전엔 해외 게스트들이 많이 참가했었는데 올해는 안전문제로 20명에 그쳤다"면서 "아쉽지만 충분히 이해된다"고 답했다. 

오데사국제영화제는 8월 1일부터 31일까지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 오데사와 남부도시 체르니우치, 폴란드의 북부도시 그디니아(Gdynia)에서 프로그램을 나눠 진행했다. 약 100편의 자국영화 및 해외 영화들이 소개되었다. 오데사에서는 8월 한달간 영화제가 열린 가운데 12일부터 17일까지는 '메이드 인 오데사' 작품들이 선보였다. 

올해는 특별히 영화제의 주요 행사가 루마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남부 도시, 체르니우치(Chernivtsi)에서 열렸다(19일-26일). 체르니우치는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제일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곳이다.

이 도시에서 영화제의 개-폐막식을 포함한 중요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해외 심사위원 및 감독들도 참가했다. 심사위원으로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되었고, 오스카상 최우수 국제 장편 부문의 우크라이나 공식 출품작<클론다이크 Klondike>를 연출했던 마리나 에르 호르바치(Maryna Er Gorbach) 감독, 최근 신작 < The Happiest Man in the World >을 다수 영화제에서 선보이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북마케도니아 출신 테오나 미테프스카 감독 등이 참여했다. 

체르니우치 버전의 OIFF프로그램으로는 자국 및 해외 경쟁부문, 인더스트리 프로그램 (film industry office), 회고전, 특별상영전, 영화교육프로그램 (film summer  school) 등이 관객을 찾았다. 8월 28일-31일에는 발트해연안의 항구도시 그디니아에서 '다큐멘터리 인더스트리 데이즈'라는 이름으로 우크라이나 영화인들의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피칭, 워크숍, 토론행사가 열렸다.  
  
우크라이나의 국경도시 체르니우치 거리 풍경 ‘작은 비엔나'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국경도시 체르니우치에서는 오데사영화제가 선정한 46편의 영화들이 상영되었다.

▲ 우크라이나의 국경도시 체르니우치 거리 풍경 ‘작은 비엔나'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국경도시 체르니우치에서는 오데사영화제가 선정한 46편의 영화들이 상영되었다. ⓒ andersbanke

 
특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했던 역사와 건축물 양식 등으로 인해 '작은 비엔나'로 불리는 체르니우치에서는 46편의 영화들이 상영되었다. 자원봉사자 관리를 담당했던 타냐 바슈첸코 (Tania Vashchenko)는 9월 1일 필자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체르니우치는 우크라이나 영화계의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도시"라며 "오데사국제 영화제가 (저명한 배우이자 감독이었던) 이반 미콜라이추크의 이름을 딴 이반 미콜라이추크문화예술센터에서 열린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략 5천 명의 시민들이 영화제를 찾았으며 영화 크레디트가 끝날 때까지 관객들이 자리를 뜨지 않았다"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또한 "아시다시피, 시네마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자 필터이기 때문에 영화제 프로그램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영화들이 포함된 것이 놀랍지 않다"라며 "이런 작품들이 제작되고 상영되어야 하며,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의 영화산업이 건재하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바슈첸코씨는 현재 이반 미콜라이추크 문화예술센터 부대표직을 맡고 있다.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거야 (We Will Not Fade Away)영화 포스터 올해 오데사영화제에서 인권상과 최고 감독상은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거야 (We Will Not Fade Away)>를 연출한 알리사 코발렌코 감독에게 수여되었다. 이 작품은 2014년부터 전시상황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십대를 보내는 다섯 명의 일상을 관찰한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9월 14일 개막하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한국 관객과도 만날 예정이다.

▲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거야 (We Will Not Fade Away)영화 포스터 올해 오데사영화제에서 인권상과 최고 감독상은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거야 (We Will Not Fade Away)>를 연출한 알리사 코발렌코 감독에게 수여되었다. 이 작품은 2014년부터 전시상황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십대를 보내는 다섯 명의 일상을 관찰한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9월 14일 개막하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한국 관객과도 만날 예정이다. ⓒ Serhiy Stetsenko

 
올해 오데사영화제에서 인권상과 최고 감독상은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거야 (We Will Not Fade Away)>를 연출한 알리사 코발렌코 (Alisa Kovalenko)감독에게 수여되었다.

이 작품은 2014년부터 전시상황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십대를 보내는 다섯 명의 십대 일상을 관찰한 다큐멘터리다. 절망적인 순간에도 미래에 대한 열정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충실히 삶을 살아가는 십대들의 꿈과 고민을 섬세하고 담백하게 담아냈다.  

코발렌코 감독은 9월 2일 필자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전면전에도 문화 생활이 계속되는 것은 중요하다"면서 "올해 재정적 지원이 부족해 OIFF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알고 있지만, 그래도 훌륭한 축제를 개최한 것을 축하한다"라고 전했다.  
  
또한 알리사 코발렌코 감독은 수상소감을 묻자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영화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특별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라며 "속깊은 질문을 가진 남다른 감수성의 관객이 많았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아울러 아픈 사적인 경험도 들려주었다.

"이 상을 (자원병으로 참전했을 당시 고향이 체르니우치였던 전우) 지휘관에게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휘관이 제 아들 또래의 어린 두 아이를 남겨두고 작년 11월 전사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우리나라를 건설할 새로운 세대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 그들이 전선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의 신작은 이달 한국에서 개막하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우크라이나 기획전: '정착할 수 없거나 떠날 수 없는: 너무 많이 본 전쟁의 긴급성'>를 통해 한국 관객과도 만날 예정이다. 

체르니우치에서 <스칸디나비아와의 공동제작 토론회>에 참가했던 스웨덴 감독 안데르스 방케 (Anders Banke)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여겨지지만 여전히 전쟁 분위기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며 "건물 엘리베이터에 지하 방공호 표시, 희생된 시민자원군을 기리는 표지판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영회는 미사일 공습 경고를 받지 않고 무사히 진행됐다"라고 전했다.

그는 또한 "내년에는 다큐멘터리 이외에 개봉되는 우크라이나 장편 영화가 아주 드물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안데르스 방케 감독의 데뷔작이었던 뱀파이어-호러-코메디 영화 <프로스트비튼 Frostbitten>(2006년)은 수많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으며 북한의 평양영화제에서 상영한 첫 호로영화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가 연출한 <체르노빌- 익스클루시브 존 (Chernobyl - Exclusion Zone)>(2014년)은 그 해 러시아내 최고의 시청률과 평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안나 마추흐 집행위원장도 방케 감독처럼 우려를 나타냈다. 마추흐 집행위원장은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가 영화업계에 지원하는 액수가 제로라는 점, 많은 영화인들이 전선에 참가하고 있거나 해외 피난 중에 있는 상황, 전쟁으로 인한 잦은 정전과 미사일 공격으로 촬영이 어려운 상황 등을 언급했다. 

그는 "유럽의 약 15개 영화단체들이 협력해 우크라이나 영화를 위한 유럽연대기금(ESFUF: European Solidarity Fund For Ukrainian Films)을 만들었으나 이는 후반작업과 개발에만 지원하고 있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데사국제영화제 O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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