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영태(박송열)-정희(원향라) 부부의 이야기. 아르바이트로 일상을 전전하지만 저녁에는 술 한잔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영태(박송열)-정희(원향라) 부부의 이야기. 아르바이트로 일상을 전전하지만 저녁에는 술 한잔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 필름다빈


넓지 않은 부엌 바닥에 불판을 깔고 부부가 앉아 고기를 구워 먹고 있다. 아내 정희(원향라)가 먼저 묻는다. "우리 전세 곧 끝나 가는데 집주인이 전셋값 올릴까?" 남편 영태(박송열)가 쌈을 입 안에 넣으면서 말한다. "모르지." 고기를 먹으며 소주잔까지 기울이지만 얼굴에서는 근심이 먼저 보인다. 그때 영화 타이틀이 스크린에 뜬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정희는 초등학교 강사 지원 메일을 보낸다. 영태는 학교 선배에게 카메라를 빌려준다. 일하냐는 선배의 말에 "배달 뛰다가 오토바이 넘어져서 망가지고 쉬고 있다"고 답한다. 맞다. 이 부부는 실직 상태다. 대신 영태는 대리운전, 정희는 교사 아르바이트와 배달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수입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저녁에는 함께 밥을 먹으면서 하루를, 서로를 위로한다. 둘에게 직장을 잡을 기회가 오는 듯싶다가도 이어지진 않는다.

영태는 카메라를 빌려 간 선배로부터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친척'이 하는 회사를 소개받는다. 같이 일을 하자는 고교동창의 제안도 받는다. 실제로 만나보면 신통치 않다. 정희는 학교 동기 덕분에 초등학교에서 일일 강사로 일하지만 큰 인상을 주진 못한다. 이 부부의 일상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낮잠을 자거나 방에서 늘어져 있는 모습이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한 장면.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한 장면. ⓒ 필름다빈

 
누구도 이런 이야기에서 한 번쯤은 자유롭진 않을 것이다. 실직 때 늘 공존하는 불안함. 당장의 오늘 저녁밥을 고민하고 전기세와 수도세를 걱정하고 조금 멀게 대출 이자를 떠올리는 일.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영태-정희 부부가 놓인 상황이 그렇다.
 
하지만 실직 상태라는 불안한 정서가 이 영화를 감싸고 있음에도 처연하지 않은 게 이 영화의 특징이다. 일상은 다소 궁핍해도 둘은 서로를 향한 의지와 응원의 눈빛을 공유한다. 지금 당장은 부족해도 어떻게든 일어설 것 같은 끈끈함이 엿보이는 이유다.
 
무엇보다 이들은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키려고 한다. 이번 달 생활비가 부족하다며 "보일러를 아껴 쓸 걸 그랬나"라는 정희의 말에 "우리 삶의 질도 중요하니까"라는 영태의 대답처럼 인간다움이라는 건 경제적인 부분을 뜻하기도 한다.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가면 이들에게 더 중요한 건 각자의 온전한 삶을 보존하는 일이다. 자존감을 지키고 불명예를 얻지 않는 일이 그것이다.

돈만 벌 수 있다면 자본주의 삶 속에서 개인의 자존감이란 언제든 쉽게 지워지기 마련이다. 영태의 말마따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을 '모실' 때는 자신의 존재를 잊어야 한다. 하지만 영태는 진상 손님을 만났을 때는 짜증을 크게 낸다. 자존감을 지키는 법이다.

영태는 자신이 실질적 피해를 보아 상대방으로부터 작은 이익을 얻지만 가만히 고민하다 자신만큼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상대방을 다시 떠올리기도 한다. 자신이 얻어낸 작은 이익은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불명예를 얻고 싶지 않다.

각자를 지켜내는 삶의 방식을 취해서 그런지 이 부부는 웬만해서는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지 않은 채 삶을 영위한다. 경제적 위기를 겪는 보통의 영화 속 인물들과 다른 노선을 취한다. 이렇게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삶을 마주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한 장면.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한 장면. ⓒ 필름다빈

 
하지만 삶은 늘 예상 밖이다. 세상은 이 부부를 늘 시험에 빠뜨린다. 영태의 말처럼 "우리도 먹고살려면 서로 주고받고 교류라는 걸 해야" 하지만 어째 영태를 도와줄 것처럼 접근하는 이들은 시원찮기만 하다. 교류하면 할수록 스트레스 지수만 높아진다.

다행히 이 영화는 그런 순간마다 유머를 흘려 긴장감을 풀어낸다. 영태와 정희는 자주 침묵하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으며 때로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이런 태도가 처량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두 배우의 탁월한 연기 덕분이다. 그래서 이 부부를 둘러싼 세상은 꽤 재미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메가폰을 잡고 연기도 한 박송열과 프로듀서이면서도 연기를 한 원향라, 이 영화의 제작자이자 실제 부부인 이들의 '케미'를 바라보는 점도 흥미롭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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