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페렌츠 푸스카스, 프란시스코 헨토와 함께 1950년대 레알 마드리드의 역사적인 유러피언컵(UEFA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 5연패 달성에 기여한 레몽 코파가 지난 3일(이하 한국시각) 투병 생활 끝에 향년 8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 언론 '레퀴프'를 비롯한 유럽 유수의 언론들은 '레알 마드리드와 프랑스의 전설' 레몽 코파의 별세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광산에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까지

1931년 프랑스 뇌레맹에서 태어난 레몽 코파는 폴란드계 이민자의 자손이었다. 그의 본명은 레몽 코파세프스키였는데, 이름이 너무 길어 줄여 부른 것이 레몽 코파로 굳었다.

17살에 프랑스 앙제SCO에서 데뷔한 레몽 코파는 신체조건을 중시하는 당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165cm밖에 되지 않는 작은 키로 프랑스 리그를 평정해 나갔다.

어린 시절을 광부로 보낸 레몽 코파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강한 다리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성장환경 덕에 뛰어난 드리블 능력을 선보일 수 있었다. 또한 그는 경기를 진두지휘하는 데 독보적인 재능을 보여 프랑스의 1세대 플레이 메이커로 남았다.

스타드 드 랭스 시절, 첫 번째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레몽 코파는 경기 직후, 레알 마드리드의 이적 제의를 받고 팀에 합류한다. 1956년부터 1959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에 몸담은 레몽 코파는 세 번의 유러피언컵 우승과 두 번의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당시 활약상은 디 스테파노나 푸스카스 같은 전설적인 골잡이들에게 가려졌지만, 그의 명성이 빛을 발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쉬웠던 레블뢰, 영광스런 발롱도르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낸 클럽 커리어는 성공적이었지만, 레몽 코파에게 국가대표 커리어는 아쉬움 그 자체였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 득점왕인 쥐스트 퐁텐과 함께 조국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을 견인하려 했지만, 좋은 결과물로 이어지지 못했다. 프랑스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조별 예선 탈락의 쓴 잔을 마셔야 했다.

이어진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쥐스트 퐁텐과 레몽 코파의 압도적인 활약으로 준결승까지 진출했지만, 펠레가 이끄는 브라질의 벽을 넘지 못했다. 프랑스는 3, 4위 결정전에서 서독에게 6:3 승리를 거두어 최종 성적 3위로 대회를 끝냈다. 이후 레몽 코파는 1962년 헝가리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팀을 은퇴하면서 월드컵과는 거리를 두게 되었다.

다만 프랑스의 대회 성적과는 무관하게 1958년 월드컵 3위와 그 해 레알 마드리드의 유러피언컵 우승을 견인한 공로 덕에 레몽 코파는 생애 첫 발롱도르 수상의 영애를 거머쥘 수 있었다. 여기에만 그치지 않고 발롱도르가 제정된 해와 그 이듬해에는 연속해서 3위에 이름을 올렸고, 발롱도르 수상 후 한 해 뒤인 1959년에는 디 스테파노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렸다.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진 않았지만, 4년간의 발롱도르 순위를 통해 당대 레몽 코파의 입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프랑스 최초의 발롱도르 수상 외에도 레몽 코파는 프랑스 출신 선수가 기록할 수 있는 굵직한 업적에 일순위로 이름을 올렸다.

레몽 코파는 나폴레옹 1세가 정치, 경제, 문화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프랑스 최고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은 최초의 축구 선수다. 재밌는 사실은 그의 선수 시절 별명이 '나폴레옹'이었다는 점이다.

또한 레몽 코파가 선수로 활약한 1950년대는 국외 이적이 활발한 시기가 아니었는데, 그는 프랑스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해외 리그로 이적한 선수였다. 당시 프랑스 국민들은 프랑스 리그에서 뛰지 않는 레몽 코파를 배신자라 불렀지만, 그는 '내 유일한 잘못은 시대를 앞서 나간 '선구자'라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당대 축구팬들의 불만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60년 전 함께한 동료들 곁으로 떠나다

1959년 스타드 드 랭스로 복귀했지만, 레몽 코파는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인상적인 활약과 별개로 팀을 강등의 수렁에서 구해내지 못했다.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던 스타드 드 랭스는 레몽 코파가 은퇴를 선언한 1966-67시즌에 강등을 면치 못하며 안타까운 결말을 맞아야 했다.

그리고 지난 2017년 1월 7일, 프리메라리가 17라운드를 앞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85세의 레몽 코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나우두, 루이스 피구, 마이클 오언도 함께 등장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발롱도르 4회 수상을 기념하기 위해 레알 마드리드에서 뛴 발롱도르 수상 선수들을 초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행사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볼 수 있었던 레몽 코파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지난 3일 레몽 코파는 세상을 떠났다. 그보다 먼저 세상을 뜬 옛 레알 마드리드 동료들이 하늘에서 그를 반겨주었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어마루 기자의 블로그(http://blog.naver.com/dhxnakfn)에도 중복 게재 되었습니다. 오마이 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이 기사는 류일한님(http://blog.naver.com/ryuilhan1993)의 자문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레몽코파 레알마드리드 발롱도르 프랑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