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그 이상의 클럽, FC 바르셀로나

클럽 그 이상의 클럽, FC 바르셀로나 ⓒ 바르셀로나 공식 홈페이지


1990년대 미국 프로농구 NBA는 마이클 조던을 필두로 뛰어난 슈퍼스타들의 출현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래리 버드, 스코티 피펜, 존 스탁턴, 패트릭 유잉 그리고 마이클 조던까지 모두가 기라성 같은 존재들이었다. 1992년 7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언론은 슈퍼스타들이 한데 모인 미국 대표팀을 두고 '드림팀'이란 호칭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들보다 먼저 꿈의 조합을 실현한 이들이 있었다. 바로 카탈루냐의 자존심이자 클럽 그 이상의 클럽, FC 바르셀로나다.

라 퀸타 델 부이트레의 대항마가 등장하다

1980년대 중반 라리가의 판세는 '백곰 군단' 레알 마드리드가 주도했다. 당시 레알은 '라 퀸타 델 부이트레(독수리 군단)'라고 불린 특급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리그 5연패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에밀리뇨 부트라게뇨, 마누엘 산치스, 라파엘 바스케스, 미첼, 미겔 파르데사가 바로 그들이다. 독수리 군단의 활약 속에 마드리드 시민들은 승리의 달콤함에 빠졌지만, 바르샤 시민들은 라이벌의 성공에 이를 갈아야만 했다.

 1980년대 중반, 레알은 부트라게뇨를 중심으로 한 독수리 군단으로 라리가 판도를 지배했다.

1980년대 중반, 레알은 부트라게뇨를 중심으로 한 독수리 군단으로 라리가 판도를 지배했다. ⓒ 레알 마드리드 공식 홈페이지


이에 바르샤는 라이벌에게 빼앗긴 주도권을 찾기 위해 반격에 나선다. 예전부터 그랬듯 외부의 힘에 대항하는 오뚝이 기질이 강했던 그들은 독수리 군단에 맞서기 비한 꿈의 조합을 준비한다. 바르샤의 '타도 레알'의 첫 번째 선택은 요한 크루이프 감독이었다.

'타도 레알' 선봉대장의 등장- 요한 크루이프

익히 알고 있듯 크루이프는 선수 시절 바르샤에서 활약한 레전드다. 1973년, 외골수인 크루이프가 레알 대신 대항마의 이미지가 강한 바르샤를 선택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바르샤에 입단한 크루이프는 1973-1974시즌 레알에게 뺏긴 라리가 타이틀을 되찾음과 동시에 발롱도르를 수상해 클럽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바르샤는 레알에게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크루이프를 감독으로 임명한다.

바르샤는 레알에게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크루이프를 감독으로 임명한다. ⓒ 바르셀로나 공식 홈페이지


특히 크루이프는 해당 시즌 레알의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5-0 대승의 주역으로 맹활약해 라이벌의 콧대를 제대로 눌렀다. 이처럼 바르샤는 선수 시절 불구대천의 원수 레알에게 주도권을 뺏어온 경험이 있는 크루이프에게 다시 한 번 기대를 걸고 있었다.

드림팀 vs. 라 퀸타 델 부이트레

1988년, 크루이프가 바르샤 감독으로 부임하자 누네스 회장은 공격적인 투자를 시도해 그에게 힘을 실어준다. 유스 출신인 호세 과르디올라를 필두로 호세 마리 바케로, 미카엘 라우드롭, 로날드 쿠만,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호마리오, 게오르게 하지 등이 크루이프 감독과 함께 황금기를 구현한 영광의 얼굴들이다.

당시 카탈루냐 군단의 스쿼드를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스페인과 덴마크를 대표하는 플레이메이커 바케로와 라우드롭이 같이 필드를 누빈다는 것 자체가 꿈의 조합을 보여준 단적인 예였다.

전력을 구축한 바르샤는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한다. 레알이 독수리 군단의 활약에 힘입어 라리가 5연패를 이뤘다면, '드림팀' 바르샤는 라리가 4연패(1991~1994)로 레알의 파죽지세에 제동을 걸었다. 스페인을 정복한 블라우그라나(바르샤 유니폼 색상인 파란색과 빨간색을 뜻함)는 이후 유럽으로 눈길을 돌린다.

삼프도리아와의 숙명적인 대결

크루이프 감독이 선수로 활약했을 당시에도 바르샤는 빅이어(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다. 1986년, 카탈루냐 군단은 결승전에서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를 만나 사상 최초로 유러피언컵 우승을 거둘 절호의 기회를 가졌으나 아쉽게 승부차기에서 패배했다.

1989년, 바르샤는 삼프도리아와 UEFA컵 위너스컵 결승전서 자웅을 겨룬다. 지금은 세리에A에서 중하위권 팀으로 전락한 삼프도리아지만,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까지 로베르토 만치니(전 인테르 감독)와 비알리를 필두로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강팀으로 통했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으나 바르샤는 삼프도리아를 2-0으로 물리치고 우승 트로피를 가져온다. 그 후 3년 뒤 바르샤와 삼프도리아는 다시 한 번 외나무다리에서 맞닥뜨린다. 바로 유러피언컵 결승전이다.

 크루이프의 드림팀은 바르샤 사상 최초의 유러피언컵 우승을 달성했다.

크루이프의 드림팀은 바르샤 사상 최초의 유러피언컵 우승을 달성했다. ⓒ FC 바르셀로나 공식 페이스북


바르샤는 16강 카이저슬라우테른 전(3:3 원정 다득점으로 진출)을 제외하면 결승까지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3년 전 수모를 되갚기 위한 삼프도리아의 저항에 적잖이 고전했다. 결국 두 팀은 전·후반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연장전에 돌입한다. 두 팀은 후반전까지 일진일퇴를 거듭했으나 연장전에 돌입하자 승부를 결정짓는 골이 터졌다. 주인공은 바르샤의 '프리킥 달인' 로날드 쿠만이었다. 연장 112분, 쿠만이 오른쪽 골대 구석으로 강력히 날린 슈팅은 팔류카 골키퍼의 손을 외면했다. 바르샤 사상 최초의 유러피언컵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이 모두가 바르셀로나 그 자체

라리가 4연패, UEFA컵 위너스컵 우승 1회, 유러피언컵 우승 1회 등 눈부신 업적을 이룬 크루이프 감독은 1996년까지 팀을 이끌고 물러난다. 이후 드림팀 멤버들 역시 하나둘 팀을 떠나며 바르샤는 소강상태를 맞이한다.

하지만 곧 새로운 영웅들과 함께 다시금 깃발을 휘날리기 시작했다. 90년대 후반 루이스 피구, 루이스 엔리케, 히바우도, 클루이베르트가 그랬고, 현재는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리오넬 메시를 필두로 네이마르, 수아레즈 등과 함께 찬란한 역사를 창조하고 있다.

 크루이프의 원조 드림팀과 오버랩 되는 과르디올라의 드림팀

크루이프의 원조 드림팀과 오버랩 되는 과르디올라의 드림팀 ⓒ FC 바르셀로나 공식 페이스북


21세기 들어 가장 페이스가 좋은 구단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세계 축구계 중심에 있는 바르샤다. 크루이프가 볼 포제션에 바탕을 둔 토털풋볼로 유럽을 정복했다면, 그의 수제자인 과르디올라는 '티키타카'라는 혁명적인 패싱 축구로 유럽을 삼켰다.

90년대 초반 원조 드림팀과 새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현재의 드림팀. 묘하게 오버랩 되는 두 팀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이 모두가 바르셀로나 그 자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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