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연수.

배우 하연수가 SNS 댓글을 둘러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친필 사과문을 올렸다. ⓒ 이정민


지난달 31일, 배우 하연수가 SNS 댓글을 둘러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친필 사과문을 올렸다. 그리고 이내 전후 맥락을 다룬 관련 내용이 기사로 오르내리며 이슈화됐다. 그러나 이슈의 초점은 해당 댓글에 대한 내용으로부터 점차 사과한 행위 그 자체에 대한 것으로 옮아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친필 사과문을 게시할 정도로 사과가 요구될 만한 사안이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특히 비난을 쏟은 대중의 시점에서 볼 때 해당 배우가 젊은 여배우였기 때문에 사과를 요구해도 될 만한 대상으로 여긴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상당했다.

그리고 이러한 이슈와 관련해 배우 김의성은 자신의 트위터에 "만약 중년 남자 배우가 했어도 저리 반응했을까?"라고 남김으로써 동일한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물론 마땅히 사과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여기는 측도 있다. 해당 배우가 남긴 댓글의 표현이 더욱 공손하지 못했으며 상대에게 불편한 느낌을 주었으니 짚고 넘어갈 만한 충분한 사안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해당 배우의 사과문 게재로 일단락이 되었으니 사과를 해야 할지 말지의 선은 이미 지났다. 다만 지금 여진처럼 남은 이야기는 사과를 굳이 해야 했는지 혹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지 되짚어 보는 견해들의 충돌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미 여러 기사를 통해 양산된 견해들을 반복 생산하기보다는 사과라는 행위를 둘러싼 이야기를 한 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사과를 요구하는 대중의 이중적 잣대

눈물흘리는 AOA 설현, 더 잘할게요! 걸그룹 AOA의 설현이 16일 오후 서울 광장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네 번째 미니앨범 <굿 럭> 발매 쇼케이스에서 역사지식과 뮤직비디오 논란에 대해 사과의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눈물흘리는 AOA 설현, 더 잘할게요! 걸그룹 AOA의 설현이 16일 오후 서울 광장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네 번째 미니앨범 <굿 럭> 발매 쇼케이스에서 역사지식과 뮤직비디오 논란에 대해 사과의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정민


사실 연예인의 사과 행위가 굳이 필요할 정도로 영향을 끼친 사안이었느냐의 논란은 지난 5월에도 있었다. AOA 멤버 설현과 지민이 안중근 의사 잘 알지 못했던 것은 물론, 장난스럽게 안 의사를 언급하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이는 설현과 지민의 역사의식 부재 논란으로 번졌고, 결국 두 사람은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때문에 이번 SNS 댓글 표현에 대한 사과를 둘러싼 이슈를 다루면서 5월에 있었던 아이돌 그룹의 사과도 재차 언급되었다. 그리고 이처럼 흘러간 이슈가 재조명된 배경에는 대중의 이중적 잣대에 대한 반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댓글의 쟁점을 성별 이슈만으로 단정 짓기엔 아직 이르다고 해도, 연예인의 소셜 게시글을 바라보는 잣대가 일정하지 않은 점만은 꽤 분명한 것 같다, 그 잣대의 하한선이 올바른 것인지도 따져볼 사안이고 말이다"와 같은 언급도 대중의 이중적 잣대와 관련된 입장에서 조명한 것이었다. (관련 기사: 유아인은 되고, 하연수는 안 되는 이유가 대체 뭔가)

연예인의 SNS 게시물에 대한 대중의 잣대 언급이 나왔으니 한번 되짚어 보자. 과연 대중이 들이대는 잣대를 일원화할 수 있을까? 혹은 언급된 대로 하한선이라는 것을 제시할 수 있을까? 물론 대중의 잣대는 일원화할 수도 없고 하한선을 그을 수도 없다는 논리를 펴기 위해서 묻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질문들을 연이어 던져야 문제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다. 이는 곧 다음과 같다.

"대중은 사과를 요구할 정도의 이슈 소재를 어떠한 기준으로 선정하는가?"
"대중은 왜 유사 맥락의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사과를 촉구할 정도로 이슈화시키는 대상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다시 구별 짓는가?"
"사과를 요구할 대상이 혹시 대중이 지닌 힘의 크기와 견주어 결정되지는 않는가?"

결국 연이어 던지는 질문의 종착점은 바로 대중과 당사자 사이에서 견주어지는 힘의 크기다. 바꿔 말하면, 사과 행위를 둘러싼 근본 핵심은 힘의 논리에 있다. 생각해 보라. 작금에 이슈화된 사안도 젊은 여배우가 아닌 중년 남자 배우였다면 다른 맥락이지 않았겠느냐는 지적도 역시 단지 당사자가 지닌 힘의 크기에 변형을 가한 가정이지 않은가?

일상 속에 만연한, 사과 행위를 둘러싼 힘의 논리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와 같이 사과 행위를 둘러싼 힘의 논리가 비단 대중과 연예인 사이의 관계에 국한된 일은 아닌 것 같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과 행위가 사과의 본질적인 의미 그대로 과오에 대한 시인과 원만한 관계로의 추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지만, 앞서 추론한 대로 힘의 논리를 따르는 경우도 매우 많다.

"사과의 대상은 자신이 잘못한 대상이 아니라 자신보다 강한 상대여야 했다. 경쟁의 시대에 사과는 마음의 논리를 따르기보다는 힘의 논리를 따르게 된 셈이다. 이는 국제 정치, 혹은 정당 정치의 역학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흐름과도 같다." - 김태선 <유감의 정치와 사과의 기술>(2015) 중

예를 들면, 몇 년 전부터 심심치 않게 사회적으로 이슈화 된 소비자의 갑질 행위와 해당 영업장의 사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힘의 논리라는 프레임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 사이의 역학 관계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이유를 불문한 사과를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굳이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라는 관계의 구도를 이번 SNS 사과 사태에 비추어보자면, 연예인과 대중의 관계가 이와 동일한 관계이기 때문에 발생한 상황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힘의 논리에 따르는 사과 행위에 대한 잣대는 대단히 상대적이다. 왜냐하면 자신과 마주하는 대상이 지닌 힘과 견주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판단할 때 주로 강제적인 사과의 요구가 비집고 들어서기 때문이다. 즉, 원만한 관계를 위한 본질적 의미의 사과 행위가 아니라 힘의 서열을 관철하기 위해 사과 행위를 도구적으로 사용하는 셈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왜 대중은 이토록 작은 일에 분노하는지에 대해 토로하는 입장에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중의 입장을 생각해 보게 된다. 정작 부당함을 지적하고 사과를 요구해야 할 대상들이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고 있는 대중의 시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사실 대중이 지닌 시선의 끄트머리에는 마주하는 대상이 지닌 힘의 크기를 가늠해보다가 그 힘에 짓눌려 흔들리고 있는 눈동자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부당함에 대한 불쾌감과 불편함이 있음에도 마주하는 힘을 비집고 나올만한 여력이 없으니 눈을 질끈 감는 것이다. 때문에 상대를 골라가며 사과를 요구하는 사회가 되고 만 것이다.

정리하자면 힘의 논리가 좌지우지하는 사과 행위와 그러한 사회의 일면을 정당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때때로 일관적이지 못한 우리의 행동이 무엇 때문에 이토록 나부끼게 되는지 그 힘에 대해 드러내 놓고 함께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분명히 우리의 바탕을 뒤흔드는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양산하는 미세한 떨림이 큰 파동을 일으킬 것이므로.

하연수 SNS 댓글 사과 사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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