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인터뷰가 끝났다. 문득 '곽진언'이란 이름이 묘하게 다시 보였다. 만약 '진언'이란 이름의 한자 뜻이 '진실한 말'이라면, 인터뷰 내용과 완벽한 일치라고 생각했다. 한자 뜻을 물었다. 참 진(眞), 말씀 언(言)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묘하다. 곽진언은 이름대로 살고 있었다.

다음의 일문일답을 따라가다보면 왜 곽진언이 자신의 이름대로 살고 있단 건지 알게 될 것이다. 혹, 성격 급한 독자들을 위해 살짝 힌트를 준다면, 곽진언의 음악에선 무엇보다 가사가 중요하단 사실을 잊지 마시길.

자, 그럼 싱어송라이터 곽진언을 만나러 가보자. 참, 오는 10일 곽진언은 데뷔 앨범 <나랑 갈래>를 발표한다. 즉, 이 인터뷰는 그에게 있어서 <슈퍼스타K6>(아래 <슈스케>) 결승 경연을 앞두고 있었을 때만큼 설레고 떨리는 상태에서 진행됐다는 말이다.

<슈스케> 우승 이후 1년 6개월

 곽진언

곽진언의 노래는 대부분 우울하다. 이에 대해 곽진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울한 노래를 좋아한다. 우울증에 대해 생각을 해보자면, 저는 그걸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충분히 우울한 감정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게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생각이 자기에게만 굽어져서 모든 문제의 시발점을 자신에게서 찾는 건 안 좋은 것 같다. 저도 그랬던 적이 있고. 특히 앨범을 만들 때, 잘 안 되는 부분의 원인을 저한테로 다 돌리니까 힘들었다. 이젠 좀 안 그래야지." ⓒ 뮤직팜

- 지난 2014년 11월 엠넷 <슈스케> 우승을 차지한 후 자그마치 1년 6개월 만에 데뷔 앨범을 낸다. 대중에 잊힐까봐 두렵지 않았나.
"조급했다. 조급했지만 그것보다 큰 마음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규앨범으로 데뷔하고 싶단 마음이었다.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을 못하는 스타일이다. 2015년 3월부터 앨범 작업을 시작했으니 12개월을 꼬박 매달렸다. 징징대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준비하면서 힘들었다."

- 어떤 게 힘들었나.
"아무래도 녹음을 해본 적이 없어서 모든 게 낯설었다. 초행길이라 많이 헤맸다. 자꾸 욕심이 생겨서 노래에 계속 살을 입히고 더 예쁘게 보이려고 하고... 그러다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과 점점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욕심을 버렸다면 더 빨리 완성했을 것이다.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기가 힘들었다."

- 결국 욕심 버리기에 성공했나.
"이번 주제곡 '나랑 갈래'는 녹음을 세 번이나 했다. 곡의 분위기가 세 번 다 달랐다. 욕심을 버리고, 덜어낼 것을 덜어낸 마지막 버전을 앨범에 담았다. 욕심이 얼마나 많았냐면, 이 앨범은 20곡을 녹음하고 그 중 11곡을 추린 것이다. 리메이크 곡도 6곡 중에 2곡만 추린 거고. 해보고 싶었던 게 많았다. 제 입장에선 데뷔를 위해 천천히 준비하는 과정에서 욕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 그 욕심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아무래도 부담감에서 비롯된 것 같다.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통기타 가수 이미지보단 곡을 만들고 편곡도 하는 싱어송라이터 이미지가 있어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 데뷔앨범은 제가 전곡 프로듀싱했고 리메이크곡 두 곡을 제외하곤 전곡 작사 작곡했다."

- 욕심이란 단어와 곽진언은 잘 안 어울린다. 기자가 곽진언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노래 안에 욕심이 없어서다. 특히 '자랑'이란 노래를 좋아한다. 참 따뜻한 곡인데.
"항상 노래에 나의 경험을 쓰려고 한다. '자랑' 같은 경우는 생각하는 것을 말로 풀어냈다. <슈스케> 할 때 숙소에서 썼던 거다. 숙소에서 가만히 앉아 기타를 치다가 떠올라서 쓴 곡이다."

- 오디션 경쟁의 절정에서 결승을 눈앞에 두고 쓴 곡인데, 어째서 노래 안에 우승에 대한 욕심이 느껴지지 않는지 그게 신기했다. 우승이 욕심나지 않았나.
"합숙소 분위기 자체가 그랬다. 서로가 경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랑'은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써진 곡이다. 노래를 만들 때와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진심으로 하려고 한다. 무대에서 뻥치면 관객들이 안다고 생각한다."

진심과 욕심

 Mnet <슈퍼스타K6> 마지막 무대에서 곽진언이 자작곡 '자랑'을 부르고 있다.

Mnet <슈퍼스타K6> 마지막 무대에서 곽진언이 자작곡 '자랑'을 부르고 있다.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나의 품이 포근하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 사랑을 나눠줄 만큼 행복한 사람이 되면 / 그대에게 제일 먼저 자랑할 거예요." 곽진언이 만든 가사는 이처럼 단순하고 직설적이며 진실하다. ⓒ Mnet

- <슈스케>에서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왜 사람들은 곽진언의 음악을 좋아했을까?
"무대 할 때만큼은 솔직하게 하려고 했다. 오디션도 무대니까. 방송에서 일상생활을 찍을 땐 나를 꾸밀 수도 있겠지만, 무대 위에서만큼은 '척 하지' 않으려 했다.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그 진심이 전달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 진심…. 그러게, 곽진언의 음악은 그 진심이 장점이다. 그래서 위로를 주는 것 같다. 음악의 힘이 뭐라고 생각하나. 위로?
"공연을 할 때 오히려 내가 관객들로부터 에너지와 위로를 많이 받는다. 쓸쓸하고 처지는 음악이지만 공연하고 나면 기운이 난다. 그 공간의 분위기 자체가 좋아진 것에 위로를 받고 위로를 드릴 수 있다. 공연에선 관객과 미묘한 감정의 교감이 일어난다. 제 노래는 무언가를 제가 자꾸 빌고 해달라고 하는 어투다. 공연장 안에서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 대화를 나누듯 감정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음악의 힘이 단지 위로를 주는 것 뿐만은 아닌 것 같다."

- 곽진언에게 음악이란? 굳이 정의를 내린다면?
"무언가…. 주고받는 것이 음악이라 생각한다. 소통? 교감이라고 할까? 아무래도 제가 하는 음악의 장르적인 특성 때문에 집중되지 않으면 산만해진다. 공연할 때 저와 관객을 집중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가사 전달에 신경을 쓴다. 가사가 잘 들려야 집중이 잘 된다."

- 가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 나는 가사가 제일 중요하다. 김광석, 이문세 선배님의 노래처럼 나도 가사 안에 무언가를 담아서 잘 전달하고 싶다. 그렇게 하기엔 통기타 음악이 가장 적합하고. 전달을 하려는 무언가가 생기면 가사로 표현해내려 한다."

- 가사, 그리고 멜로디는 어떻게 써지나.
"학교에서 배우기로는, 음악 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씩 조울증이 있다는데, 울에서 조로 갈 때 영감이 나온다고 하더라.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나 또한 감정의 폭이 커질 때 악상이 나온다. 예를 들면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감정이 미묘해지면서 곡이 떠오른다."

 곽진언

5월 10일에 발매되는 곽진언의 데뷔 앨범에는 총 11곡이 실린다. 앨범 <나랑 갈래>는 곽진언이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함으로써 곽진언식 음악적 지평을 연다. 그의 음악을 기다려온 팬들에게 이번 데뷔 앨범은 확실한 보상이 될 것이다. ⓒ 뮤직팜

- 울에서 조로 갈 때?
"그렇다, 조증으로 갈 때. 물론 조증에서 울증으로 갈 때 곡이 떠오를 때도 있지만, 되짚어보니 조증으로 갈 때 무언가 반짝 생각날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제가 주변에 폐를 끼칠 만큼 울다가 갑자기 웃는 그런 조울증은 아니고. 아무튼, 예전엔 그냥 가만히 멍 때리고 있다가도 생각나는 것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별로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그가 겪은 신세계

- 요즘은 그런 일이 왜 없을까?
"아무래도 소재고갈이다. 아직 삶이 어떻다고 노래하기엔 제가 어리다. 가짜로 노래하지 않고 솔직한 것을 전달하려면 결국 지금 제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사랑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데 연애한지 오래 돼서…."

- 그럼 연애하라. 소재고갈을 막기 위해서라도. 소개팅은 해봤나.
"연애 해야지. 소개팅은 해본 적 없다. 하기로 했다가 마지막에 안 나갔다. 낯을 가려서…. 난 좀 방어적인 것 같다. 평소에 돌려 말하는 게 있는데,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내 마음속에 커튼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너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지 말자고 요즘 생각한다."

- 음악에선 소통을 중요시 하는데 실제로는 낯을 가린다니, 무언가 반대되는 모습 같다.
"낯을 가리기 때문에 음악으로 소통하는 거다. 음악이 내겐 자연스러우니까. 노래할 때는 당당하게 표현이 된다. 무대 위에선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게 전혀 부끄럽지가 않다. 말로 하는 것 보다 편하다."

- 그러니까, 표현하고 싶은 게 없어서 말수가 적은 게 아닌가보다.
"표현하고 싶은 건 엄청나다."

- 겉으론 과묵한데 마음 안에 하고 싶은 말들이 많다?
"처음에 노래했던 계기도 무언가를 말하고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원래는 노래가 아니라 드럼을 쳤다. 재즈를 전공하려고 입시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다. 나는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 하는 게 너무 즐거운데 드럼, 재즈를 하면서 뭔가 하나가 부족하단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재즈는 연주하는 사람들끼리는 즐거운데 관객과 소통이 잘 안 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통기타를 들고 버스킹을 하면서 관객과의 소통이 바로 내가 갈증을 느낀 대상이란 걸 깨달았다."

- 그래서 드러머에서 가수로 전향했나. 그게 언제였고, 처음 버스킹 할 때 기분이 어땠나.
"한 마디로 신세계였다. 20살 쯤 처음 했는데, 버스킹을 하면 피드백이 바로 오니까 너무 좋았다. 저는 드럼 할 때 소통 문제가 힘들었던 거다. 단지 10명을 앞에 놓고 노래하더라도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가사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 표현의 자유가 생긴 거다. 사람들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니까 소통 부재가 사라졌다. 이게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 하고 느꼈다. 그래서 그 후 홍대클럽에서 자작곡으로 공연하기 시작했다."

"낯을 가리기 때문에 음악으로 소통하는 것"

 곽진언

정규앨범을 내면 주제곡 이외의 수록곡이 묻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곽진언은 답했다. "절대 묻힌다고 생각 안 한다. 들으시는 분들은 다 듣는다고 생각한다. 싱글앨범을 내든 정규앨범을 내든 어쨌든 한 장의 앨범을 내는 거고. 한 장의 앨범 안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차게 채우면 되는 일이다." ⓒ 뮤직팜


- 버스킹 할 때 구경하는 사람은 많았나?
"꽤 많았다. 의정부에서 생목으로 몇 시간 동안 하는데, 돈이 모이면 새벽에 그 돈으로 맥주를 사서 그때까지 버스킹을 봐주신 사람들과 술 한 잔 하면서 놀고 그랬다. 벌이도 괜찮게 됐다. 많이 모일 땐 3시간 하면 10만원까지 모일 때도 있었으니까."

- 자작곡은 언제부터 썼나.
"버스킹 할 때 새벽에 사람이 없을 때 살짝 '제 자작곡 들어보실래요?' 하고 들려줬다. 곡이 생기고 난 후로 홍대 클럽공연을 한 거고. 거기선 자작곡만 불렀다. 22살 때부터 홍대서 공연을 시작했고, 23살 때 학교에 들어가면서 구체적으로 싱어송라이터란 꿈이 생겼다. 그렇게 1년 학교 다니고, 24살 때 휴학하고 <슈스케>에 나갔다."

- <슈스케>엔 왜 나갔나.
"미래가 두려워서. 나는 음악을 너무 사랑하고 음악이 내 직업이 됐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한 달에 100만 원 벌어서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겠다 싶었다. 결혼도 하고 싶고.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탄다. 가족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30대에는 결혼을 할 텐데 애도 생기면 어떻게 먹여살리나 걱정이 됐다. 가족을 힘들게 하면서 음악을 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터닝포인트라고 생각하고 한 방을 걸어본 것이다."

- 끝으로, 아까 영화나 책을 보며 영감을 찾는다고 했는데 주로 어떤 책을 보나.
"제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건 아니고. 책 중엔 시집을 제일 많이 읽는다. 2~3달에 한 번씩 서점에 가는데, 가면 시집을 사서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할 일 없을 때 꺼내본다. 시 속엔 예쁜 말들이 많고,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이 많다."

- 어떤 시인을 좋아하나.
"요즘은 백석을 다시 읽는다."

- 백석의 시와 곽진언 노래의 느낌이 많이 닮았다. 쓸쓸하고 외롭고 우울하고, 무엇보다 따뜻하다. 혹시 시가 곡을 쓰는 데 도움을 주나.
"시집을 읽고 악상을 떠올리진 않는다. 가사를 쓸 때, 저는 직설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그게 전달에 용이하니까. 문을 열었다고 하면 되는 것을, 살포시 문을 열었다고 하는 건 무언가 꼬는 것 같다. 내 가사에는 시적인 표현이 거의 없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두 단어가 선명히 윤곽을 드러냈다. '진심'과 '전달'.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곽진언은 말(가사)을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진실한 언어로 진실한 마음을 전달하려는 바람과 그의 이름의 한자 뜻 - 참 진(眞), 말 언(言)이 운명처럼 어울린다.

 곽진언

곽진언의 평소 스타일을 묻자 "기획하고 계획하는 스타일이 아닌, 마음가는 대로 하는 스타일"이라고 답했다. 우승 후 대중에 잊힐 것이 두려웠지만 1년 6개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 앨범을 준비한 이유는 "단지 음악을 오래 하고 싶어서"였다. 수식어가 붙으면 음악을 오래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는 곽진언은 정규앨범을 선보여 '오디션 우승자'란 수식어를 뛰어넘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싱글이 아닌 정규앨범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 뮤직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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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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