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배우>에서 장성필 역의 배우 오달수가 25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달수는 영화 <대배우>에서 장성필 역으로 첫 단독 주연을 맡았다. 맡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연극배우의 삶을 연기하는 배우의 심경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 이정민


박찬욱 감독의 조감독이었던 석민우 감독은 영화 <박쥐>(2009)를 한창 찍을 당시인 2008년 겨울 영두 역의 오달수에게 지나가는 투로 나지막이 말했다. "저 선배님 영화 만들고 싶습니다." 신인 감독의 다짐을 오달수는 굳은 약속으로 여겼고, 6년이 지나 그는 약속을 지켰다. 시나리오를 보지도 않은 채 석민우 감독과 술 한 잔 한 직후 바로 "하겠다"고 의사를 표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대배우>가 상영 중이다.

지난달 2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오달수는 "몇 개월 전에 제의가 왔다면 참여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작품"이라고 고백했다. 혹 영화의 시나리오가 별로라서?

오달수의 걱정

 영화 <대배우> 한장면

영화 <대배우> 한장면. 장성필(오달수 분)은 20년 연기 경력을 가졌지만 가족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무명 배우다. 오달수는 "영화가 극적으로 묘사돼서 그렇지 실제 이 정도 경력이면 굶진 않을 것"이라 자신했다. ⓒ 리틀빅픽처스

오달수의 걱정은 단 하나였다. 20년 넘게 대학로 무대를 전전하면서 직접 겪고 만나온 배우들의 삶이 '우울하고 비루하게' 묘사됐을까봐. 선 수락 후 분석을 하면서 오달수는 "무겁지 않게 잘 만져주어 마음이 놓였다"고 생각했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오달수는 <대배우> 속 20년 경력의 무명 연극배우 장성필이 돼갔다.

"대학로에서 20년 연기를 했다면 아무리 무명이라도 영화든 드라마든 어딘가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을 거예요. 연기로 먹고 살 수 있는 아르바이트도 충분히 있을 것이고. (영화 속처럼) 그렇게 고되고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진 않을 겁니다. 장담할 수 있어요. 극이니까 다소 독하게 묘사한 부분은 있지만 실제 배우의 삶은 그렇지 않거든요. 대학로 배우들 다들 자기 일에 긍지를 가지고 기분 좋게 하고 있습니다. 극소수라도 우울하고 암울한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캐릭터를 자유롭게 입고 벗어온 오달수라지만 배우를 '연기'한다는 설정이 녹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음악가나 미술가였으면 괜찮았을텐데 연기하다 보면 내가 한번쯤은 겪었던 일들이 생각나 실제 오달수가 튀어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무명 배우가 돼야했던 천만 요정의 하소연 아닌 하소연이다. 극중 후배에게 무대 위에서 조언하는 장면에서도 너무 몰입한 나머지 대본에 없던 대사를 수 분 가량 내뱉기도 했다. 평소 애드리브를 잘 하지 않는 오달수 스스로서도 생경한 경험이었다.

밝음 되찾기

1년 전 인터뷰에서 그는 대학로 무대에 대한 마음의 짐을 고백한 바 있다. 연극 무대로 시작했다가 영화계에 진출한 이후 마치 고향을 떠난 것 같은 미안함이 있었다. 2000년경 자신의 극단 신기루 만화경을 운영하기 시작했을 때부턴 그 짐을 좀 덜었다지만, 한동안 그는 "대학로 대로변을 피해 골목만 골라 다니기도 했"다. 요즘도 대학로 인근 술집에서 술 먹는 후배들을 발견할 때마다 조용히 술값을 계산하고 나오는 게 그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다. 2년 전 연극 <템페스트> 공연 때 오달수는 본인의 출연료는 물론이고 거기에 300만원을 더 보태 함께 고생한 스태프 및 배우들을 위해 썼을 정도다.

그래서 그는 연기에 대해 말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 디자인을 전공했다가 연극에 투신했고, 그 이후 한 길만 걸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서 무수히 고뇌했을 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질문했다. "어려움이야 당연히 있지요"라며 묵직한 어조로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공평하다는 거예요. 행복과 만족감 둘 다 줄 수 없거든요. 또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게 다를 수도 있는 것이고. 근데 결국 어려움을 겪어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처음엔 뭔가 하나는 버려야지. 그러다보면, 그렇게 오랫동안 버티면, 자기가 버렸다고 생각했던 게 자연스럽게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걸 발견할 수 있어요.

 영화 <대배우>에서 장성필 역의 배우 오달수가 25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배우>에서 장성필이 후배 배우에게 조언하는 장면은 결국 통편집됐다. "순간 장성필이 아닌 내 모습이 나오더라"며 "캐릭터와 오달수 사이에서 많이 왔다갔다 했다"고 그가 고백했다. ⓒ 이정민

예전에 제가 날 잡아 잡수시오! 하고 바쳤더니 연극이 은혜를 갚았다고 한 적 있죠? 여전히 그 말이 유효합니다. <대배우>의 미덕이 바로 밝다는 것에 있는데, 청년실업 문제 등 빡빡하게 사시는데 있는 그대로의 밝음은 잃지 않았으면 해요. 영화에 보면 장성필이 자해를 하면서까지 영화에 출연하려 하잖아요.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그렇게 암울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물론 많은 부분이 구조적으로 채워지지 못하는 게 있는데 시스템에 대한 문제잖아요. 그런 건 함께 고민하면서도 청춘 특유의 밝음은 좀 되찾았으면 좋겠어요. 영화에 나오는 극단 단원들이 풍족하진 않지만 해방감을 누리며 살잖아요. 누구는 또 그걸 이기심으로 볼지는 몰라도 자기가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죠."

뒤이어 그가 덧붙인 말은 "젊은 사람들이 좀 어깨를 펴고 살았으면 좋겠다"였다. 단순히 나이 든 사람이 내뱉는 뻔한 가르침이 아니었다. 그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진짜 원하는 걸 찾아온 구도자이지 않나. 그래서 그의 말은 스쳐지나가는 어른의 말이 아닌 길동무의 응원 내지는 먼저 걸어본 자의 겸손한 조언으로 다가온다.

"어차피 세상은 단순해요. 복잡하게 생각할수록 인생은 꼬이거든요. 뭔가를 일단 해보세요. 그러다 아닌 거 같으면 다른 걸 하고, 마음이 싫어하면 내 마음에 더 좋은 걸 찾아 하고. 힘들 때일수록 이것저것 해보는 거죠. 젊음과 청춘이 있는데 뭐가 두려워요? 무엇에, 또 어떤 가치에 날 바칠 건가가 우선이지. 지금 내 빚이 얼마고 형편이 이렇고… 그런 것부터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해요. 이것저것 하다가 자신이 평생 바칠 것을 찾으면 됩니다."

"아픔과 힘듦은 잊을 수 있겠더라"

반신반의하며 그에게 물었다. 분명 힘들었고 아팠다고 고백하면서도 그렇게 버틸 수 있던 그 동력이란 게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무엇에 자신을 바쳐야 할지 갈피를 못잡으며, 자기가 뭘 원하는지조차 모르고 사는 요즘 아닌가.

"순수한 것에 바쳐야 하지 않을까요. 거기에 날 바칠 때 아픔도 물론 있어요. 힘들기도 하죠. 그 아픔과 힘듦은 지나고 보니 잊을 수 있겠더라고요. 근데 추억과 그 전율은 길게 남아요. 그래서 아픔을 가지고 신세한탄을 하거나 타령은 안 하게 되더라고요. 희한하죠.

극단 생활할 땐 토큰 두 개 들고 공연이 끝난 밤 11시부터 2인 1조로 공연 포스터를 붙이며 하염없이 걷곤 했어요. 출발할 때 하나, 첫 차 타고 돌아올 때 하나 쓰는 거죠. 남들이 다 자는 그 시각에 서로 부모 얘기, 꿈 얘기 나누던 그 기억이 참 소중해요. 돌이켜 보면 그런 기억들이 지금까지 날 버티게 해준 힘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7년 됐습니다. 생전엔 엄마가 그렇게 당신께 시집살이로 고생했다고 하시더니, 돌아가신 이후엔 일절 그런 말씀을 안 해요. 오히려 제게 아버지의 소싯적 이야기를 그렇게 하시죠. 마을에서 인기가 그렇게 좋았다며(웃음). 얼마나 그 기억이 아련하겠습니까. 그런 거 같아요. 나중엔 다 웃으면서 이야기 할 때가 오니까 걱정 붙들어 매시고 바치세요!"

이쯤에서 반론을 제기해봤다. 영화 <올드보이>, 그러니까 배우 오달수를 상업적으로 뜨게 한 작품을 만나기 전과 그 후가 많이 달라지진 않았는지. 즉, 인지도를 얻기 전과 후 세상을 보는 관점이 변하진 않았는지 말이다.

"30대까진 겁 없이… 아, 이건 비겁한 단어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면, 이젠 왜 그럴까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건 있어요. 불합리한 것마저도 생각해요. 왜 그럴까. 그런 게 분석이 돼야 잘 판단할 수 있어요. 과거엔 그냥 씨부렸다면, 이젠 생각 해가면서 판단하는 거지요(웃음).

제가 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자도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예술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물으신다면, 세상을 향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냐 때문인 거 같아요. 배우는 그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보다 일종의 대변자로서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세상에 던지느냐가 중요해요. 명확성이랄까요. 저 역시 그런 걸 찾아가고 있습니다."

은사로부터 배우라는 호칭을 받기까지

그리고 그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 하나. 대배우의 조건이었다. 이 물음에 그가 살며시 미소를 보였다. '아차' 싶었다. 그 우문에 "차암 많지요~ 해외 포함해서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라고 그가 특유의 익살을 보탰다.

"배우라는 말을 듣는 자체가 굉장히 영광스럽죠. 유럽에선 배우(actor)라는 호칭을 아무에게나 붙이지 않아요. 브로드웨이도 마찬가지고. 제 은사님인 이윤택 선생께서 언젠가 본인의 희곡집을 한지로 묶어서 택배로 제게 보내주셨어요. 제일 앞 장에 '배우 오달수에게'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선생님의 인장과 함께. 그때 감동이 참 컸어요. 배우… 신중히 써야할 칭호인 거 같습니다."

은사로부터 오달수가 배우라고 불렸을 때는 바로 2010년.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이며, 그가 연기를 시작한지 20년이 지난 후였다. 그 호칭의 무게감이 절로 실감나기 시작했다.

 영화 <대배우>에서 장성필 역의 배우 오달수가 25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달수의 경력이면 대부분의 연기를 편하게 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오산이다. 오달수는 "<대배우>를 보고 나서 내가 어색하게 연기한 몇 부분을 찾았다"고 말했다. "복기, 복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연륜이 느껴졌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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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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