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포스터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포스터 ⓒ (주)마운틴픽쳐스

제목이 너무 부정적이라 미안하다. 하지만 이 글에서 언급할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는 반짝이는 청춘영화가 아니다.

영화 속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 '키리시마'는 분명 청춘영화의 주인공 같은 남학생일 것이다. 잘 생기고 성격 좋고, 운동 잘하고, 어쩌면 공부까지 잘할지 모른다. 그런 주인공 같은 인물이 빠진 영화임을 감안하고 보시라.

심지어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불편하다. 자꾸만 잊고 싶은 지난 학창시절을 떠올리라고 부추긴다. 등장인물에게 과거의 '나'를 대입하게 된다. 

학생들은 끼리끼리 논다. 잘 생기고, 운동 잘하는 (걸로 추정되는) 키리시마나 그의 절친 히로키 같은 킹카는 얼짱 리사나 사나 같은 여학생과 커플이다. 가스미는 중학교 동창이자 같은 반 친구인 료야와는 인사도 하지 않는다. 학교 상위계급(얼짱)은 하위계급(오타쿠)과 말을 섞지 않기 때문이다. 밴드부 부장 아야는 히로키와 자신이 결코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상위계급은 하위계급과 연애하지 않으니까.

영화부 담담 교사는 료야와 부원들에게 '반경 1미터' 이내에서 시나리오 소재를 찾으라 한다. 우정이나 청춘의 연애 같은 것으로. 하지만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의 되는 자신들에게 우정이나 연애 따윈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자신들이 숭배하는 조지 로메로의 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에 나오는 좀비가 더 현실적이다.

그런데 동아리인 배구부를 탈퇴하고, 심지어 모두가 신뢰하는 '절대 캡틴'임에도 지역대표로 선발돼 전국대회 출전을 앞두고 있던, 교내 '킹카' 키리시마가 학교에서 사라졌다. 잘 나간다고 행복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의 절친 히로키도 마찬가지다. 키리시마의 잠적으로 히로키는 주변을 볼 수 있게 된다. 

"될 놈은 뭘 해도 되고, 안될 놈은 뭘 해도 안된다"라며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히로키도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야구·축구·농구…, 종목 불문 스포츠 만능에다 키 크고 잘 생겨 인기도 많다. 하지만 그런 그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도통 알지 못한다. 담임이 나눠진 진로희망조사서 제출기한이 지났는데 아직 한 줄도 못썼다. 동아리인 야구부? 연습에 안 나간지 한참이다. 재능이 너무 넘쳐도 매사가 시시한 법이다.

그런 킹카 히로키가 키리시마의 행방을 좇다가 오타구 료야와 맞닥뜨린다. 더럽고 불편한 8미리 카메라 렌즈를 통해 묻는다.

"영화 감독이 됩니까? 아카데미상을 탑니까? 여배우랑 결혼합니까?"

료야는 담담하게 답한다. 자신은 영화감독이 되지는 못할 거라고. 단지 영화를 찍는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와 연결되는 느낌이 들어서 즐겁기 때문이라고.

우리 대부분이 이런 자각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오늘날에 이르지 않았을까? 별 재능도 없고 인기가 많지도 않은 '평범한 존재'로 그 시절을 보내지 않았나? 그래서 잘 나가고 인기 많은 학생을 부러워하면서도 하루하루 열심히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불편한 긴장감은 이것 때문이었다. 상위에 속하는 몇 명보다 '좀비' 같은 존재인 료야나 아야에 자꾸만 자신을 투영해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학교) 세계와 싸웠고, 그 세계에서 살아남았다. 

만약 키리시마가 등장했다면 이 영화는 반짝거리는 청춘영화가 됐을 거다. 키리시마·히로키·리사 등 잘 나가는 애들이 주인공이 돼 사랑과 희망을 노래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청춘, 우리 주변 반경 1미터 내에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 이 영화는 '진짜' 청춘영화다.

[덧붙임1] 키리시마가 왜 동아리활동을 그만뒀는지 궁금한 분은 원작 소설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를 읽어보시길 권한다. 친절한 답변은 없지만 해답의 실마리가 소설 곳곳에 숨어 있다. 하지만 읽는내내 영화보다 더한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덧붙임2] 안타깝게도 이 영화 상영관이 서울에선 단 한 곳뿐이다. 일본에서 개봉 당시 초반엔 흥행 베스트10위 안에도 들지 못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8개월 간 롱런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입소문 흥행의 뒤를 잇기를. 

[덧붙임3] 이 글을 쓰는 동안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의 결혼 기사가 떴다. 대부분의 '료야'는 영화감독도 되지 못하고 여배우와 결혼도 못하겠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김태용 감독의 학창시절이 궁금하다.  

키리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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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영상번역작가. 인터뷰를 번역하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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