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나은진 역을 맡은 배우 한혜진.

최근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 SBS <따뜻한 말 한마디>의 한 장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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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공중파부터 케이블까지 주요 드라마들을 점령하다시피 했던 불륜이라는 소재. 이제는 하도 많이 거론돼서 지긋지긋할 정도다. 막장이라는 수식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다. 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불륜이라는 소재를 드라마 등의 문화상품으로 소비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을 비난하는 콘텐츠를 언론기사 등으로 소비하느냐는 것이다. 국내에서 불륜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며 무한 반복되고 있는 이러한 순환 고리에 어떤 문제는 없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기원전 신화에도 등장하는 불륜...정말로 막장일까?

따져보면 불륜이라는 소재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인류의 역사에 빠지지 않는 이야기 거리로 소비되어 왔다. 일례로 브래드 피트, 에릭 바나 등 인기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며 영화로도 제작됐던 트로이 전쟁을 꼽을 수 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기원전 3200년 경 발생해 무려 10년 동안 진행된 것으로 전해지는 이 거대한 전쟁의 빌미는, 다름 아닌 트로이 왕자가 스파르타 왕비를 꾀어내어 저지르는 불륜이다. 두 사람의 무모한 사랑 놀음 때문에 트로이라는 국가가 그리스 대군의 공격을 당하며 무너지고, 수많은 양민들이 학살당하고 노예로 팔려간다는 끔찍한 이야기다.

 영화 <트로이> 스틸컷

영화 <트로이>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


신화 속 불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신들도 바람을 피운다. 유대인들의 성경에도 신의 총애를 받으며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다윗에 대한 막장 스토리가 기록되어 있다. 나중에 다윗이 유대인들의 왕이 되자 직접 신하를 전쟁터로 내보낸 후, 아름답기로 소문났던 그의 아내를 빼앗았던 것이다.

또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남긴 몇몇 작품들에도 불륜이 주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안나 카레니나>는 남편과 아이가 있는 유부녀가 젊은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불륜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역시 불륜이 중심소재로 등장한다. 중산층 가정주부들의 외도와 갈등을 그린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은 이미 시즌 8편까지 제작됐다. 걸작으로 꼽히는 고전소설은 물론이고 영화나 드라마에도 불륜은 대중적인 소재로 등장해 온 것이다.

이처럼 불륜에 대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대중에게 어필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와 드라마를 집필하는 작가들의 카페에 질문을 던져봤다. 그러자 쏟아져 나온 답변들 가운데 주목할 만한 두 가지가 있었다. 우선은 '인간의 본능'을 건드리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대상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불륜의 심리학>, 불륜은 본능...하지만 고통의 악순환 초래

 게르티 젱어의 <불륜의 심리학> 표지.

게르티 젱어의 <불륜의 심리학> 표지. ⓒ 소담출판사

불륜이 인간의 본능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작가들의 의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이자 치료 전문의인 게르티 젱어는 환자들의 상담을 진행하면서 다년간 불륜 사례들을 추적 연구한 후 <불륜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그는 이를 통해 외도가 인간의 본능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연인이나 부부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삼각관계나 불륜이 왜 발생하는 것인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실제 사례들의 다양한 유형에 진화 생물학 등을 접목시킨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적인 특성인 종족번식을 위해 유전자를 더욱 많이 퍼트리고 싶은 충동에 이끌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랑의 감정 역시 시들해지고 변화를 겪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때문에 파트너와 불화를 겪고 있을 때 이상형으로 보이는 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이유들로 불륜을 정당화 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불륜 상대와의 사랑 역시 변하게 되고 마찬가지의 위기와 불화를 겪게 된다는 점에서, 불륜이라는 행위가 끊임없는 고통의 악순환을 이룬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책의 말미에는 불륜의 유혹을 극복하거나,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들을 따로 정리해 두었을 정도다.

그런데 이처럼 불륜이라는 행위가 인간의 본능과 깊은 관련이 있다면, 이것을 단순히 특정 시대만의 반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수많은 고전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상은 불륜 드라마보다도 그것을 막장이라고 비난하는 행동에 더욱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소재 자체보다, 흥미위주로 다루는 가벼움 비판해야

불륜이라는 소재가 불쾌감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혼인 상태를 유지하는 상대방에 대한 몰염치한 배신이자 고통을 주는 행위로서 신뢰의 원칙과 미풍양속에 저해되기 때문이다. 불륜의 부작용은 단순히 약속을 깬다는 행동이 주는 불쾌감을 훨씬 뛰어 넘는다. 가족이나 연인으로부터 배신당한 사람의 고통은 때로는 인생이 뒤흔들릴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이기적이고 올바르지 않은, 때로는 정의롭지 못한 행동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로 불륜이라는 소재가 작품에 쓰이지 못할 이유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살인이나 다른 각종 범죄들이 소재로 사용되는 것을 허용한다면, 불륜에 대해서도 창작과 표현의 자유라는 원칙이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륜 드라마들을 막장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은 제작비로 가장 자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돈을 벌어들이려는 방송사들의 무성의함과 지나치게 흥미위주인 가벼운 설정 등이 원인일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드라마 속의 불륜은 별다른 성찰과 고민 없이 미화되어 왔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륜 드라마가 마치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것처럼 비난 받는 것은 옳은 일일까? 우리는 언론 기사를 통해 드라마보다 더욱 막장 같은 수많은 사건들을 접하며 살아간다. 문제는 작품 속 가상세계가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양심이다.

수많은 언론사가 기사와 칼럼 등으로 불륜 드라마들이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하면서도 정작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나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사건에는 눈감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을 향한 편 가르기와 증오의 확산이 국가 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기반을 뒤흔들고 있음에도 몇몇 언론을 제외하면 별다른 비판을 찾아보기 힘들다.

불륜 드라마가 성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지점은 분명히 있지만 그것은 사실 소재의 다양성과 작품성에 대한 것이어야 타당하다. 도덕의 잣대를 작품에 들이대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나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불륜 드라마는 언론 매체들이 도덕적인 비판을 쏟아내기에 가장 만만한 대상일지도 모른다. 정의를 외면하고 국가의 원칙과 신뢰를 뒤흔드는 불의에 침묵하는 세태야 말로 우리 사회를 무너뜨리는 진짜 막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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