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싶더니 어느새 추워지고 있다. 슬슬 월동 준비에 돌입할 때다. 지금 이대로 행복한데 남친이나 여친을 사귈리 없다. 그래도 올해 가기 전에 진한 멜로 한번 겪고 싶다. 바로 그럴 때, 극장 상영중인 멜로들이 별로다 싶기도 할 때, 이 세 작품을 보도록 하자. 나쁘지 않다. 

<러브 레터>... 하늘이 내린 명작 멜로 '사랑이란 이런거야'

 <러브 레터>의 한 장면.

<러브 레터>의 한 장면. ⓒ Fuji Television Network


이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 한 여자가 누워있다. 온통 눈밭이다. 잠시 후 숨차 하는데 일부러 호흡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그러고 있었던 곳은 그녀의 연인이 등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산이었다. 산속 어딘가에 그러고 있었을, 죽은 연인과 호흡하기 위해서 자신의 호흡을 참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게 사랑 아닐까. 상대방의 마음을 알기 위해 자신을 작게나마 희생해보는 것 말이다.)

사람의 상처는 자신과 공유하는게 있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치유된다는 이야기다. 주연 나카야마 미호가 조신한 와타나베 히로꼬와 와일드한 후지이 이츠키 두 사람 연기를 혼자 했다. 말이 1인 2역이지, 실제로 하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호연이 참 고맙다.

이 영화는 참으로 명작이다. 흔치않은 이야기를 흔치않은 모양새로 만들어냈다. 요즘 영화들이 하나를 잘 하면 다른 하나가 부족한데, 이 영화는 부족한 점이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늘이 내린 명작 멜로라고 할수있다.

영화를 안보고 레미디오스(이 영화의 음악 감독이다)의 연주곡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계속 듣고 있어보자. 계속. 몸 어딘가 열이 나면서 어느새 울고 싶어질수도 있다. 그러다가 미소 짓게 된다. 기자처럼 누군가 떠나보낸 적이 있는 솔로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렇다. 그 사람이 생각나서 두근거렸던 것이다. 나는 행복하지만, 그 사람도 행복할까 울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래, 내가 행복하면 그 사람도 결국 행복하겠지 싶어서 미소 짓는 것이다. 사랑이란게, 그런 것 같다.

<8월의 크리스마스>... 남자, 죽음을 앞두고 진짜 사랑을 하게 되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 우노필름


다시 봐도 꿀꿀해지는 건 여전하다. 하지만 분명 좋은 멜로 영화다. 이 영화가 좋은 이유는 허진호 감독의 말에서도 알수 있지만 워낙 공을 들였다. 어떤 잔기술보다 자연스러움을 위해 제작진이 매 장면에 신경 썼다. 이 영화를 끝으로 작고한 유영길 촬영 감독도 신흥 감독의 걸작을 위해 자신의 노력을 다했다.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사람들이 힘을 모으니 보통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불치병에 걸린 젊은이의 사랑 이야기가 뻔하지 않게 완성되었다. 사실 이 영화는 보통 '불치병 멜로'와 달랐다. 남자 주인공이 어둡지가 않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허허 하며 잘 웃고, 특히 여자 주인공을 만날때면 참 밝은 모습으로 행복해한다. 그 당시 멜로 영화로서는 흔치 않은 '밝음'이 오히려 관객들에게는 아름다움으로 비춰졌던 것이다.

또한 이 영화가 호평 받은 건, 죽음을 앞두고 욕심없는 사랑을 하는 남자 주인공의 사랑이 진짜 우리가 하고 싶어하는 좋은 사랑에 가까웠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이 영화를 보면 여러가지 시대적 디테일은 차이가 있지만,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사랑을 하는 커플은 여전히 있기에 그 점이 시의적절한 것 같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나이차 많은 커플을 이상하게 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런 커플이야말로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이 영화에 등장한 사진관은 창고를 헐고 만든 세트였다고 한다.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리고 한석규가 부른 주제가는 이후 중년남의 노래방 애창곡이 되었었다.

<첨밀밀>... 장만옥과 여명의 멜로 포스에 비하면 <건축학개론>은 아직 '애기'

 <첨밀밀>의 한 장면.

<첨밀밀>의 한 장면. ⓒ UFO


첫 장면부터 끝내준다. 흑백인데 열차가 역에 들어오고 있다. 마치 <카사블랑카> 같은데, 기자 생각에는 그보다 더 낫다. 같은 아시아인이 만든 영화라서 그런가. 아무튼 이 열차 안에 졸고있는 남자 주인공(여명)이 보인다. 곧 잠에서 깨 관객에게 얼굴의 정면을 보여주는데 거 참, 자알~ 생겼다. 이 정도면 여성 관객들은 안심하고 볼 수 있겠다 싶은 것이다. 그렇다. 그런게 멜로다.

이 영화는 멜로의 정석(定石)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내용이 멜로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만남-열애-이별-그리움-재회', 이 5단계를 말이다. 두 남녀가 같이 완당을 먹고 나누는 대화는 <건축학개론>의 승민과 서연 저리가라의 '멜로 포스'를 지닌다.

중요한 건 이 영화가 <건축학개론>보다 10년 이상 앞섰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도 참 순진하면서도 못됐다. 여자 마음도 모르고 여자 주인공이 잘 잠그지 못하는 단추를 자기가 손수 잠궈준다. 설거지할때 그렇게 가슴뛰게 손잡아 놓고선 말이다.

물론 그 다음에 남자 주인공은 정신을 차린다. 무슨 얘긴지는 영화를 보면 안다. 등려군의 노래가 유명했던 영화이지만, 특히 이 영화를 살린건 여자 주인공 역의 장만옥이었다. 후반부에 자전거 타고 가는 남자 주인공을 부르며 대도시의 번화가를 누비는 그녀의 모습은 완전 감동 그 자체다. 이런게 사랑 영화 아니겠는가.

'그대는 물었었지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 그대 생각해 보오, 그대 가서 보시오 / 저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하오' 하는 등려군의 노래가 흐르며 두 남녀 주인공이 교차되는 신은 이 영화의 백미 중에 백미다. 아 망할. 우라질. 13년째 솔로인 기자가 멜로 명작 세 편을 이어서 보니 다시 미친듯이 사랑이 하고 싶어진다. 당신도 그러시길 은근히 바라면서, 부족한 기사를 마쳐본다.

러브 레터 8월의 크리스마스 첨밀밀 멜로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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