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 두 수식을 구분해서 읽을 수 있는가? '2의 e승'과 'e의 2승'.

물론 '승'이라는 표현이 일본식 표현이기에 정확히는 '제곱'이라는 표현이 맞겠지만, 어쨌든 이 두 수식을 구분해서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분명 '부산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자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서 방송인 김제동이 하는 경북 방언. 개그맨 강호동이 구사하는 경남 방언의 미세한 차이점을 잡아낼 수 있다거나, 개그우먼 신봉선이 구사하는 부산 아주머니의 말투와 역시 개그우먼 김신영이 구사하는 대구 아주머니의 말투까지 구분가능하다면 당신은 이쪽 토박이가 틀림없다.

어쨌거나 이 경상도 사투리, 즉 동남 방언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음의 높낮이인 '성조(聲調)'는, 이쪽 지역사람들이 '표준말'이라 불리는 서울말을 익히는 커다란 장애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는 반대로 타지방 사람들이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할 때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타지방 연기자들이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어색하게 구사하는 '부산 말'연기다. 말의 끝에 '~노', '~더', 혹은 '~데이'만 붙이면 부산 말이 되는 줄 아는 몇몇 연기자들의 발연기는, 말끝만 살짝 올리면 서울말이 된다고 믿는 <개그콘서트> '서울메이트'의 콩트와 별반 다를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몰입되지 않는 연기. 공감할 수 없는 드라마. 이는 분명한 비극이다.

그래서 정해봤다. 최근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각종 드라마와 영화가 쏟아지는 이때. 새롭게 떠오르는 배우들과 노력을 요하는 배우들은 누가 있었을까?!

사투리는 역시 네이티브가 최고?

이건 어쩔 수 없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저 말투는 부산 말투다'라고 싶은 배우들은 거의가 부산 지역 출신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러나 말투만 잘한다고 능사는 아닌 일.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기에 묻어나게 하느냐가 관건이라면 적어도 나는 이 배우들에게 10점 만점에 10점을 주련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조진웅']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조진웅'.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조진웅'. ⓒ 쇼박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가장 실감나게, 영화제목대로 '나쁜 놈들' 부산 말을 연기한 배우. 부산 연극판 출신인 조진웅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다른 지역 말투가 전혀 섞이지 않은, 순도 백퍼센트의 깨끗한 악역 부산 건달 말투의 전형이었다.

하정우가 연기한 최형배가 말수가 적고 동작도 작은, 영화 <친구>에서 들어본 적 있었던 조금은 식상한 보스의 말투라면, 조진웅이 연기한 김판호는 타 배우들과의 비교자체를 불허할 만큼 완벽했다.

억양. 몸짓. 태도. 말의 속도와 눈빛까지. 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던 조진웅의 연기는 이제껏 봐왔던 그 어떤 부산 사투리 연기가운데서도 단연 최고라 할만 했다. 특히 '최 사장님'을 '최 사자이-임'으로 발음하는 그 디테일. 대사에 끝에 붙는 '~다'와 '~더'의 중간발음으로 마무리 짓는 그 섬세함. 진짜 살아있었다.

[tvN '응답하라 1997'의 '정은지']

 tvN <응답하라 1997>의 '정은지'.

tvN <응답하라 1997>의 '정은지'. ⓒ tvN


조진웅이 악독한 건달연기의 최고봉이라면 <응답하라 1997>의 정은지는 집에서 말 잘 안 듣는 사고뭉치 부산 여고생의 말투 그대로다. 귀엽지만 어딘지 모르게 반항이 묻어있고, 시끄럽지만 또 어딘지 모르게 애교가 섞여있는 딱 10대 부산 여고생이다.

물론 그녀가 드라마에서 맡은 캐릭터가 있기에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아이돌에 열광하고 친구들끼리 웃고 떠들며, 떼쓰고 시크한 말투에 또 유행에 민감한 10여 년 전 부산 여고생들의 말투는 정말 그랬다.

하지만 조진웅과 마찬가지로 말투를 떠나서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다 알겠지만, 더 대단한 것은 정은지의 자연스러운 연기다. 과연 가수 출신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말로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연기는 앞으로 이 배우의 미래를 궁금하게 할 정도. 

['바람'의 '정우']

 <바람>의 '정우'.

<바람>의 '정우'. ⓒ 싸이더스


<응답하라 1997>이 10여 년 전 여고생 말투라면 영화 <바람>은 10여 년 전 남고생 말투다. 거칠게 없었고, 달리 무서운 것도 없었던 철없이 날리던 그 시절에 거친 남학생들의 단어를 영화 <바람>은 상당히 코믹하면서도 리얼하게 표현했다.

말투도 말투지만 배우들이 내 뱉는 단어에서 <바람>의 배우들은 말 그대로 부산 10대들의 은어, 속어를 여과 없이 들려준다. 덕분에 이 영화는 역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도 많이 남겼는데, 예컨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서른마흔다섯살'. 일대일로 붙자는 '다이다이', 친구를 타이르는 '그라믄 안돼에~' 등이 그것.

물론 속어, 은어가 많다는 점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강한 남자를 동경하고, 어떻게든 남들보다 위에 서보이고 싶었던 피 끓는 청춘들의 철없는 시절 말투와 연기를 <바람>의 정우는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사실 돌이켜 보면 영화 <친구>에 유오성과 장동건이 연기한 부산 고등학생들은 멋지긴 하지만 너무 형님들 같았다.

이 정도면 굉장히 만족, 신선함에 더 큰 점수를!

다음은 위에 세 배우들처럼 10점 만점은 아니지만, 현재 경상도 사투리 연기를 충분히 멋지게 소화하고 있는 배우들이다.

무엇보다 이 전에 부산 말로 연기했던 배우들과는 달리, 조금은 다른 각도로 신선함을 안방극장에 전하고 있는 배우들. 노력과 열정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은 연기자 들이다.

[MBC '골든 타임'의 '송선미']

 MBC <골든 타임>의 '송선미'.

MBC <골든 타임>의 '송선미'. ⓒ MBC


앞서 말한 배우들이 캐릭터에 맞춰 '연기하는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했다면 '골든타임'의 송선미는 말 그대로 '현실적인 부산 말'을 확실하게 재현한다.

실제로 부산에는 연령별, 세대별로 억양이나 자주 사용하는 단어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데 송선미가 <골든 타임>에서 연기하는 부산 말은 실제 20~30대 부산 여성들이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말투다. 이러한 송선미의 말투가 어색하게 들리는 것은, 그동안 미디어에서 비춰진 부산 말이 억센 악센트로 심하게 과장돼 연기되었기 때문.

그래서인지 <골든 타임>의 송선미의 말투는 굉장히 신선하다. 지금 당장 생각해봐도 이렇게 과장을 빼고 자연스럽게 부산에 생활 말투를 드라마에서 구사하는 배우의 연기는 본 적이 없었다. 다만, 말투는 그렇다 치더라도 앞선 배우들보다 연기력이나 극중 비중이 낮은 것이 조금 아쉽다.

[MBC '골든 타임'의 '엄효섭']

 MBC <골든 타임>의 '엄효섭'.

MBC <골든 타임>의 '엄효섭'. ⓒ MBC


<골든 타임>의 최인혁을 연기한 이성민은 단박에 경상도 출신이라는 점을 눈치 챘고, 김민준 과장을 연기한 엄효섭도 처음엔 당연히 그럴 거라 믿었다. 더욱이 <골든 타임>의 김민준 외과과장이 뿜어내는 카리스마에 눌려서, 엄효섭이라는 배우가 부산 말을 배워가면서 연기하고 있다는 점을 초반에는 전혀 눈치 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네이티브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엄효섭은 정확한 부산 말을 구사하는 극중 외과 레지던트를 부러워하는 장면이 메이킹 필름에 찍히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이 베테랑 배우가 지금 얼마나 많은 노력으로 연기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증이다. 새삼 감탄하고 말았다.

억양이나 말투에서 조금은 어색한 부분이 비춰질 때도 있지만, 탁월한 연기력과 성실함은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말투보다 더 위에 존재하는 것은 역시 연기력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한방.

[KBS '해운대 연인들'의 '조여정']

 <해운대 연인들>의 '조여정'.

<해운대 연인들>의 '조여정'. ⓒ KBS


사실 말투를 고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서울로 올라간 경상도 사람이, 아무리 서울말로 이야기를 해도 듣는 순간 경상도 억양이 섞여있다는 것을 서울 사람들은 단박에 눈치를 챌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말투에 민감하고, 억양에 섬세하다.

이는 역설적으로 이제껏 서울말만 써왔던 사람이 사투리로 연기를 할 때, 얼마나 힘들게 연기를 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해운대 연인들>의 조여정은 그래서 불리하다. 캐릭터상 억센 부산 말을 구사해야 하는 그녀는, <골든 타임>에 송선미처럼 부산의 커리어 우먼 마냥 억양의 높낮이나 악센트를 줄일 수가 없다. 실제로 자갈치 시장에서 사용되는 아주머니들의 강한 말투는 이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익히지 않는 이상 흉내 내기도 힘들다.

덕분에 조여정이 드라마에서 구사하는 말은 경상도도 아니고, 충청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북한의 서북 방언도 아닌 말투가 종종 들린다. 악센트를 줘야하는 부분과 높낮이의 패턴을 대사와 연기를 하면서 그녀 스스로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에 주연이라면 이 부분은 분명 시정되어야 할 점이지만, 그 어려움만큼은 충분히 공감한다. 아울러 힘든 역할을 맡은 것만큼, 성취하고 인정받았을 때 더 큰 기쁨이 오리라 믿고 조여정의 건승도 함께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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