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최영필은 사실상 백수였다. FA미아가 된 그는 멕시칸리그와 일본 독립리그를 전전했다. 수입도 변변치 않았다. 지난해 그의 나이 서른 여덟. 그만 둘 법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야구공을 놓을 수 없었다. 야구선수로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0시즌이 끝나고 최영필은 FA 신청을 했다. 그해 그의 성적은 1승 4패, 평균자책점 7.45. 누구도 그가 FA신청을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소속구단 한화도 마찬가지였다. 예상대로 협상은 결렬. 다른 팀들 역시 까다로운 FA 보상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삼십대 후반의 한물간 투수를 데려갈 팀은 없었다. 그는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지는 듯 했다.

2012 시즌을 앞두고 그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전 소속팀이던 한화가 대승적 차원에서 최영필에 대한 FA 보상권리를 포기한 것이었다. 때마침 불펜 투수 보강이 시급했던 SK가 최영필을 영입했다. 최영필은 그렇게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한 줄기 희망을 이어갔다.

연봉 7000만원에 SK와 계약한 최영필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15일 경기 전까지 그의 성적은 승패없이 3홀드 평균자책점 0.68. 이승호와 정대현이 빠져나간 상황에서 엄정욱과 박희수, 정우람에 의존하던 SK 불펜에 큰 보탬이 되는 활약이었다. 불혹을  앞둔 그의 구위가 갑자기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2년 전에 비해 한결 날카로워진 제구력을 바탕으로 지난 1년간 남몰래 겪어야 했던 설움에 담긴 투혼과 노련미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다.

시즌이 두 달 이상 지난 15일, 2-2 동점상황에서 8회초 그가 마운드에 올랐다. 상대는 친정팀 한화. 뭔가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탓일까. 그는 선두타자 장성호에게 2루타를 허용한데 이어, 최진행에게 볼넷을 내주며 무사 1,2루의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고동진의 희생번트가 포수 파울 플라이로 잡히면서 분위기는 SK 쪽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이대수를 2루 땅볼로 잡아낸 최영필은 이날 멀티히트를 기록하던 한상훈마저 삼진으로 잡아내고 위기를 넘겼다.

SK 타선은 8회말, 김강민의 2타점 2루타로 최영필에게 2년만의 승리투수 요건을 만들어줬다. 9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최영필은 한때 자신과 배터리를 이뤘던 신경현에게 안타를 허용했지만 오선진을 2루 땅볼로 잡아낸 뒤 마운드를 박희수에게 넘겼다. 박희수는 언제나처럼 나머지 두 타자를 깔끔하게 잡아내고 팀과 최영필의 승리를 지켜냈다. 4-2 SK의 승리. 최영필은 자신의 시즌 첫 승이 확정되는 순간 자신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서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2년만의 승리투수. 평균자책점은 0.61까지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에겐 눈 앞의 1승과 0점대 평균자책점보다 더욱 중요한 목표가 있다. 현재 제물포고 1학년에 재학중인 아들 최종현군과 함께 프로무대를 서는 꿈이다. 현재까지 국내 프로무대에서 부자(父子)가 선수로써 함께 그라운드를 누빈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의 소망이 이뤄지기 위해선 종현군의 프로입단이 가능한 2015년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2015년이면 최영필의 나이는 마흔 두 살이 된다. 하지만 1년 전 최영필이 FA 미아가 됐을 때도 그가 한국무대에서 다시 뛸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2년만의 시즌 첫 승은 최영필 자신뿐만 아니라 아빠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아들에게 지금으로부터 꼬박 10년 전, 상암벌을 수놓았던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카드 섹션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는 값진 1승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블로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최영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