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싱의 레전드 홍수환, 유명우가 지난 11일 일본 원정경기에서 값진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이재성을 만나 승리를 축하하고 격려했다.

한국복싱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기억될 홍수환과 유명우는 현역시절 '일본선수 킬러'로도 정평이 났었고, 일본선수와의 전적에 관한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일본선수에게 홍수환은 10명, 유명우는 5명을 이겼지만 1번씩 패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 패배를 안긴 선수에게 앙갚음을 멋지게 해 결국 일본 선수 모두에게 패배를 안기며 전승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홍수환, 유명우가 이재성을 격려하고 있다

홍수환, 유명우가 이재성을 격려하고 있다 ⓒ 이충섭


홍수환은 신인 시절인 1970년 하라다에게 홈링의 텃세로 패배했었지만 1972년 다시 대결해서 패배를 갚아주었다. 일본 선수와의 마지막 대결도 극적이었다. 홍수환은 1977년 11월 27일 4전5기 역전KO로 카라스키야와 혈전을 벌인 뒤 불과 2개월 4일만인 78년 2월 1일 가사하라 류와 일본에서 1차 방어전에 나선다.

KO패를 하게 되면 선수보호차원에서 최소 3개월 이상 시합을 하지 못하는 규정이 있다. 홍수환의 경우 이기긴 했어도 4번 다운되느라 KO패와 다름없는 대미지를 입었지만 가사하라 측은 이를 오히려 기회로 생각하고 승리를 다짐했다. 가사하라는 기자회견장에서 "몇 달 전 돌아가신 아버지 무덤에 챔피언 벨트를 바칠 각오로 싸우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보였지만, 홍수환은 "내 할아버지는 일본경찰 고문에 맞아 돌아가셨다"며 맞불을 놓았다.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 홍수환은 2라운드, 5라운드, 9라운드 2번, 10라운드 총 5번을 가사하라를 다운시켰다. 사실상 끝난 경기인데도 카운트를 천천히 세서 15라운드까지 몰고 갔다. 11라운드로 접어드니 홍수환의 체력은 바닥이 났다. 이제 한 번이라도 쓰러지면 일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쓰러지면 4전5기로 따온 타이틀을 일본놈에게 5전6기 신화로 뺏긴다는 생각에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판정승을 거둔다.

이재성의 통괘한 원정경기 승리... "멋진 경기 펼치겠다"

 항상 붉은색 트렁크에 태극기를 달고 경기했던 홍수환, 가사하라를 다운시키고 있다

항상 붉은색 트렁크에 태극기를 달고 경기했던 홍수환, 가사하라를 다운시키고 있다 ⓒ 홍수환


유명우 또한 히로끼 이오까에게 37연승, 17차 방어기록이 끊기며 타이틀을 뺏겼다. 그의 생애 첫 패배였다. 이렇게 은퇴할 수는 없었다. 유명우는 은퇴를 미루고 1년 동안 와신상담 끝에 다시 원정 경기에 나선다. 기자회견장에서 유명우는 이렇게 말했다. "1년 동안 타이틀을 뺏기지 않고 잘 지켜줘서 고맙다. 내가 무조건 다시 찾아간다." 그의 호언장담대로 홈 링의 텃세마저 잠재우며 보란 듯이 타이틀을 다시 찾아왔고, 일본의 유이치 호소노를 상대로 1차 방어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이랬던 한국복싱이 지난 5년 3개월간, 그것도 한국 챔피언들이 번번히 일본 원정경기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그 연패의 사슬을 이재성이 통쾌하게 끊어내고 왔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았겠는가? 귀국한 다음날 홍수환 체육관으로 인사 온 이재성에게 두 챔피언은 아낌없는 격려를 보냈다.

"복싱은 길어야 10년 동안 선수생활 한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하는 동안 집중하고 절제해서 나처럼 단명하지 말고 유명우처럼 롱런하는 챔피언이 되어라."
"너는 홍수환 선배님이랑 체급도 같고 선생님처럼 잽과 원투 스트레이트가 일품이다. 홍 선배님의 현란한 기량과 근성을 꼭 재현하기 바란다."

이재성은 "미국에서만 경기하다가 일본에서 처음 하는 경기라 긴장했지만, 홍수환 선배님처럼 붉은색 트렁크를 입고 힘을 냈다. 앞으로 더욱 더 열심히 훈련해서 이들처럼 멋진 경기를 펼치겠다" 며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이재성의 다음 경기를 기대해본다.

▲ 이재성 vs 마츠모토 시합 ⓒ 이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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